전문가들은 특히 정부가 사고 원인 규명 전에라도 밝힐 수 있는 게 있는데 왜 입을 닫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200톤급 대형 초계함이 왜 수심이 얕은 백령도 부근에 접근했는지 등과 같은 문제들은 지금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이번 사고가 북한에 의한 공격에 따른 것이라는 추측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배가 낡았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참수리호 등을 타고 서해에서 오래 근무했던 서상권 전 제독(예비역 해군 준장), 군사·외교 전문지 <D&D 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 군사평론가 김성전 씨의 말을 차례로 들어 봤다.
▲ 백령도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한지 이틀째인 28일 오후 사고현장인 백령도 장촌포 앞 해안이 수색작업으로 분주하다. ⓒ연합뉴스 |
■ 서상권 전 해군 제독
- 침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내부적인 사고에 의한 것 같다. 군함은 안전장치가 상당히 잘 돼있어서 사고가 나기 쉽지 않지만, 또 역설적으로 배라는 건 사고가 날 위험을 엄청나게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배는 안전이 엄청나게 요구되는 특수 기구다.
일단 배는 어디선가 모르게 물이 조금씩 들어온다. 구멍이 여럿 있다. 예컨대 수중에서는 레이더 전파가 안 통하기 때문에 음파를 쏴서 적의 잠수함을 식별하는데, 그 구멍이 있다. 그런 곳으로 물이 들어오면 침몰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수많은 탄약도 위험 덩어리다. 탄약고 부분도 안전장치가 잘 돼 있지만 그렇다고 터지지 말란 법은 없다. 배의 공간이 굉장히 좁아서 탄약을 이곳저곳에 분산 배치해 놓고 있는데, 그런 곳에 충격이 가면 터질 수 있다.
유류 탱크도 안전장치가 잘 돼있고 휘발성이 높지 않은 디젤을 쓰지만, 그 역시도 열을 받아 기화되면 불이 붙는다. 배에는 엄청난 양의 기름이 있다. 탱크 안에서 스스로 타면서 압력이 생겨 터지면 철판도 뚫을 수 있다. 그런 요인들이 작용해 폭발이 난 것 같다.
- 북한 관련성에 대해서는?
관련성이 없다고 본다. 북한의 잠수정이 어뢰 공격을 해서 격파시켰다는 건데 사고 해역은 수심이나 여러 조건을 볼 때 잠수정 침투가 불가능한 곳이다. 거기서 근무해 봐서 잘 안 다. 만약 반(半)잠수정으로 들어왔다면 공격 후 식별이 가능했을 것이고, 통신감청으로도 적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공격했다면 나름대로 뭔가 생각이 있었고, 남북관계 때문에 그랬다면 공격 후에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했으니까 앞으로 잘 하라'는 엄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 아무런 메시지도 안 보낼 거였다면 뭣 때문에 공격했겠나.
- 1200톤급 큰 초계함이 백령도 부근까지 간 것은 무리한 작전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무작정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령도와 대청도에 있는 레이더에서 배의 움직임을 다 보고 있기 때문에 함장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 어떤 필요에 의해서 갔을 텐데, 그 점을 앞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 너무 낡은 배를 내보냈다는 지적이 있다.
잠수함 수명은 20년, 수상함은 30년인데 그건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시한을 얘기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50년도 쓴다. 물론 새 무기를 사고 만드는 데에 우선 관심이 가고, 이미 확보한 배에 대한 관리를 소홀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배를 운용하다 보면 수리, 훈련, 작전에 각각 3분의 1의 시간을 투여할 정도로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 사병들이 주로 실종되고 지휘부는 다 구조됐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침실 위치 때문이지 큰 의미는 없는 얘기다. 사병 취침실은 함미 부분에 있고, 지휘부는 대부분 지휘소가 위치한 상갑판에서 생활한다. 취침을 준비하는 9~10시에 사고가 났는데 폭발 때문에 함미가 떨어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 실종자 가족들이 불만이 대단하다
가족들의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조금 침착하게 기다려 보자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무엇보다 사고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면 책임자가 처벌도 받게 될 것이다. 실종자 수색 작업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어쨌든 정부와 군은 가족들이 궁금해 하는 사항을 최대한 신속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불필요한 의혹이 없어진다.
- 해군에서 무슨 일을 했나
소령 시절이던 1980년 서해에서 참수리호 정장을 했었고, 88년 중령 때는 이번에 침몰한 천안함과 같은 급인 백구PGM이란 배의 함장을 했었다. 천안함처럼 대청도 같은데 나가서 경비하면서 임무 수행했다. 배는 다 타 봤고, 2005년에 준장으로 예편했다.
■ 김종대 <D&D 포커스> 편집장
- 정부 대응을 평가한다면?
정부가 북한 관련설을 차단한 건 잘 한 일이다. 보수 세력들은 대단히 불만스럽겠지만, 불필요한 긴장이 고조될 수 있었는데 초기부터 거리를 뒀다. 그러나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수차례나 개최하고 외국에 있는 여당 대표가 급거 귀국하는 등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전시 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건 과도하다. 북한 연관성이 없다고 한 것과 맞지 않는다. 사고라면 사고에 맞게 사고대책본부를 수립하면 되는 것이다.
- 정부와 군이 무엇을 밝혀야 하나?
왜 그렇게 큰 배가 수심이 낮은 백령도 부근까지 기동했는지에 대해서는 사고 원인 규명 전이라도 말할 수 있는데 그 얘기를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통상적인 기동이 아니라 작전 기동인 것 같은데 어떤 작전적 판단 때문에 갔는지 밝혀야 한다. 특수 정보가 있었을 걸로 보이는데, 정보 당국이나 해군 수뇌부의 운용 사항이 안 나오고 있다.
수리 받은지 며칠 만에 급히 출동했다는 점, 통상 넓은 바다에서 초계활동을 하는 배가 섬까지 근접했다는 점 등은 이번 기동이 정상 상황에서 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뭐가 그리 급해서 거기까지 들어갔을까? 특수한 사정이 있었는지, 안이한 기동이었는지 향후 지휘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책임 공방이 예상된다.
-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할 부분이 있다면?
사고 원인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하는데 왜 폭발했느냐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전투기가 떨어졌고, 육군 헬기가 떨어졌고, 초계함이 침몰했다. 육·해·공군에서 다 사고가 난 것이다.
이런 사고에는 공통적인 원인이 있다. 군이 무기를 사는 데에만 예산을 집중하고 사 놓은 무기를 관리하고 운용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제한된 예산을 무기를 사는데만 쓰고 정비 예산은 인색하게 운용하니까 사고가 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인재 요인도 배제할 수 없다.
■ 김성전 군사평론가
북방한계선(NLL)에서 너무 밑으로 내려온 수역이기 때문에 북한 어뢰에 의한 공격설은 말이 안 된다. 여러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레이더에 새떼가 관측되어 발포를 했다는데, 그런 상황이 벌어지니까 초계함이 고속정을 엄호하려고 급하게 올라 가다가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배가 낡아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들은 실제로 배를 인양하면 다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앞서갈 필요가 전혀 없다. 원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논점을 흐릴 수 있다. 문제는 군 내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철저히 입을 맞추면서 지방선거까지 '원인 미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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