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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식량 '찔끔 지원' 명분 쌓기 '착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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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식량 '찔끔 지원' 명분 쌓기 '착착'

통일부, 이상한 여론조사…국정원은 '심각한 위기 아냐'

시민단체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대북 식량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식량을 보내더라도 '시늉'만 내고 마려는 눈치가 역력하다.

"그럭저럭 지탱할 수 있을 것"

정옥현 국가정보원 1차장은 23일 올해 북한에서 부족한 식량은 120만 톤이라면서 "90년대 중반과 같은 대규모 아사자 발생이 우려되는 심각한 식량위기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전 차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같이 보고하고 "그러나 금년 10월말 추수기까지 중국이나 WFP(세계식량계획) 등으로부터 30여만 톤이 제공되고, 미국이 북한에 주기로 합의한 50만 톤 중 20만 톤 정도가 추가로 도입될 것으로 예상돼 그럭저럭 지탱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식량 부족분에 대한 국정원의 판단은 통일부, 외교통상부 등 다른 부처들과 같다. 하지만 '그럭저럭 버틸 것'이라는 평가는 대북 식량지원의 시급성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호소를 무력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북 긴급 지원 운동을 펴고 있는 한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재를 뿌리고 있다"며 "세계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통계(166만톤 부족)를 보면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 국제기아대책기구 등으로 구성된 대북식량지원 긴급행동 회원들이 2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북한동포 돕기 가두모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순되는 지원 원칙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3대 원칙을 내놓고 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지난 19일 △순수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북핵 등 정치적 문제와 관계없이 보편적 인도주의 차원에서 추진하며 △북한이 지원을 요청할 경우 이를 검토해서 직접 지원하고 △북한 주민의 식량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확인되거나 심각한 재해가 발생할 경우 식량지원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몇 가지가 추가됐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21일 대북 식량지원에는 △대남 비방 정도 등 북한의 태도 △국내 여론 △북한의 정확한 식량사정 등 3가지가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북한은) 도와주면 고맙다는, 그 마음이 없는 것이 좀…"이라고 말해 식량 지원에 대한 사의 표명 여부를 사실상의 전제조건으로 포함시켰다.

북한의 지원 요청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심지어 사의까지 표명해야 한다는 태도는 식량지원 자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수많은 전제조건을 내놓는 것도 '조건없는 인도적 지원'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식량 상황이 심각할 경우 지원을 추진할 수 있다는 조건은 '그럭저럭 버틸 것'이라는 판단에 의해 기각되고 있다. (☞관련 기사 : "냉온탕 오갈 바엔 탕 밖으로 나오라" ; "YS때도 6.25 45주년에 대북 쌀지원했다")

통일부, 대결 시대로 돌아가나

한편 통일부는 지난 19일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국민들의 뜻을 파악하겠다며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경향신문> 23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 여론조사에는 특정한 답변을 얻기 위한 유도성 질문이 포함되어 있어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이번 조사에는 "최근 북한이 남한을 계속비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는 게 좋겠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응답자들의 53.2%가 식량지원에 반대한다고 답했고, 찬성한다는 의견은 44.0%로 9.2%포인트 적었다.

또한 통일부는 북한 언론매체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한 사례를 샅샅이 찾아내 22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이상의 움직임을 종합해 보면 이같은 결론이 내려진다. '북한의 식량 사정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북한은 식량지원을 먼저 요청하고 있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방은 계속된다. 국민 여론도 부정적이다.'

이는 식량지원을 하지 않거나, 최대한 미루거나, 지원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의 기근을 외면한다는 국내외의 비판을 피할 정도로 최소한만 하겠다는 정부의 의중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전직 통일부 당국자는 "통일부가 일을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대남 비방 사례를 모으고 이상한 여론조사를 하는 등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라고 비꼬며 "남북 대결시대 대결의 논리를 만들어 주던 역할로 다시 돌아갔다"고 개탄했다.

다른 소식통은 "청와대에 진출한 뉴라이트 인사들 사이에 대북 식량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라며 "남북관계에 대한 그들의 진짜 시각에 비한다면 지금의 대북정책은 오히려 순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지렛대 안 되겠지만 관계 악화는 막을 것"

대북 지원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이렇다 보니 식량을 지원한다고 해도 남북관계를 푸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22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정부가 쌀 지원을 남북관계 개선의 지렛대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라며 "오히려 쌀을 주고 감정을 악화시켜 남북관계를 더욱 어렵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연철 교수는 "정부가 선택할 유일한 길은 아무 조건 없이 쌀을 인도적으로 지원하고 추후 상황을 보는 것"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은 안 되겠지만 더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6월 초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식량 제공 의향을 표시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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