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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984년'과 '정오의 암흑'의 단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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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984년'과 '정오의 암흑'의 단면들

[서평] 20년만에 재출간된 김충식 씨의 <남산의 부장들>을 읽고

김충식 씨의 <남산의 부장들>(폴리티쿠스 출판사, 교보문고 eBook 동시간행)을 뒤늦게 이번에 처음 읽었다. 20여 년 전 동아일보에 연재되고 책으로 나왔으나, KCIA(중앙정보부, 나중에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지금은 국가정보원) 이야기는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대충 알고 있는 것이기에 읽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새삼 개정증보판을 읽으니 대충 알고 있던 이야기이지만 그 세부묘사가 흥미가 있어 빠져들어 가듯 전부 읽었다. 정치학 책 몇 권을 읽는 것보다, 이 한 권이 정치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충식 씨의 훌륭한 취재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당시 동아일보의 배경이 아니고는 그만한 연재물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도 된다. 동아일보의 명성과 편집진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죄악과 위험의 세계는 (살만이 아니고) 뼈까지도 깎는 위험"이 있다고 말하여지는 스파이 조직을 다루는 일이 아닌가.

▲ 남산의 부장들 ⓒ폴리티쿠스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김학준 박사와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김종필 씨가 일종의 '충돌'을 한 해프닝이다. 몇 년 전 주일대사를 지낸 고려대 최상용 교수의 정년 및 출판기념회가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다. 축사에 나선 사람이 정동영 의원, 최장집 교수, 김학준 박사, 김종필 씨 등 호화멤버였다.

김학준 박사는 축사에서 자기가 옛날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생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축사에는 걸맞지 않게, 중앙정보부의 횡포를 규탄하는 연설을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장황하게 하였다. 바로 그 연단 앞자리에 그 중앙정보부의 창시자 김종필 씨가 앉아서 듣고 있는데 말이다. 아마 작심하고 했던 스피치인 것 같다. 판은 제대로 벌어진 셈이다.

몇 명의 순서 다음에 단상에 올라간 김종필 씨를 모두 주목하였다. 그는 역시 노련한 정객답게 흥분하지 않고 김 박사의 공격에 응대했다. 긴 이야기였지만, 요는 중앙정보부가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근대화를 하도록 뒷받침했고 오늘날의 번영을 이룩한 그 공은 인정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요지였다.

둘의 축사 공방이 혹시 기록이 되어있다면 그것을 비교검토해 보는 것이 KCIA의 공과(功過)논란에 참고가 될 터이다. KCIA는 그 무지막지한 횡포로 상처투성이의 역사를 갖고 있다. JP가 조국근대화의 뒷받침을 말하나 그대로 수긍할 사람은 아주 소수일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박정희정권의 정책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거기서 서울대의 임종철 교수(경제학)가 박정희정권의 경제시책을 난도질했다. 이에 대해 당시 대통령 정치특보인 장위돈 박사가 등단하여 잘한 것도 있는데, 왜 잘한 것은 묵살하고 잘못한 것만 공격하느냐고 반격을 했다.

그랬더니 임 교수 말이 재미있다. 의사가 간암환자를 진단함에 있어서 "눈도 좋고, 코도 좋고, 폐도 좋고, 위도 좋고..."하며 모두 이야기하고 "그런데 당신은 간암이요"하여야 하겠느냐는 것이다. 논법으로는 참 재미있다. 중앙정보부가 잘 한 일을 열거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고문이다. 살인이다, 조작이다 등을 잘못하였다고 말할 것인가.

한 가지 더.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낸 오유방 씨는 변호사답게 재치 있는 표현을 했다. 박정권과 같은 "군사정권의 법률적용은 법치(法治)가 아니라 군대에서의 기합(氣合)"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군대경험이 있는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오의원은 군법무관 경험이 있기에 그런 차이를 실감한 것 같다.

법치와 군대의 기합은 아주 다르다. 법치는 문명사회의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에 따르지만, 기합은 오로지 질서유지를 위하여 그때그때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우선 처벌이 가혹하게 내려진다. 그러나 그것이 기합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처벌을 했더냐 싶게 벌이 아주 가볍게 경감되거나 취소된다. 사형을 선고받아도 얼마 지나면 석방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람이 다치고 죽기도 한다. 떼죽음도 생긴다.

따라서 군사독재시대에는 우선 예봉을 피하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36계 줄행랑이 제일이란 이야기다. 처음 단속할 때는 무조건 피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때 걸리면 중한 기합이다. 그러나 그 예봉을 피해서 얼마 지나고 나면 대개 유야무야가 된다.

거의 모든 나라에 우리의 KCIA같은 정보기관이 있다. 그러나 문명국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수사권까지 갖고 잔학행위를 하지 않는다. 미국의 CIA나 이스라엘의 모사드처럼 자국민에게 잔인하게 굴지는 않는다. 외국에 대해서는 잔혹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자국민에게는 문명화된 행태를 보였다. 물론 그들도 예컨대 흑인이나 진보인사 등에게 가혹했던 예는 있다.

그러나 독재국가의 정보기관은 영 다르다. 대표적인 게 지난날 소련의 게페우(GPU)같은 것 이었다. 비슷한 게 나치 독일에도 있었고, 북한에는 아직도 있다.

소설이라지만 조지 오웰의 <1984>은 Big brother의 감시사회를 놀라울 정도로 잘 예언도 하고 묘사도 하고 있다. 아더 케슬러의 <정오의 암흑>도 역시 정보기관의 고문·공작정치의 묘사로 세계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다. 우리나라 군부독재시대의 정보정치는 <1984년>, <정오의 암흑>의 단면들을 보여주었다 할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생생하게 그러한 암흑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나도 KCIA에 가볍게나마 여러 번 당했다. 당하지 않았으면 모를 일이고,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일 것이다. 조선일보 정치부에 있을 때 기사의 출처를 대라고 남산에 끌려갔었고, 선거기사를 여당에 불리하게 기획했다는 트집으로 기자 여러 명이 굴비꾸러미처럼 엮여 잡혀갔었으며, 논설위원 때는 대학신문의 자율문제에 관해 자주 썼다고 남산지하실에 끌려가 무조건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그때도 예봉을 피하면 된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1964년 6.3사태 때(박정희정권의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학생시위 등으로 계엄령이 내려짐) 조선일보의 선우휘 편집국장과 정치부 차장인 나, 두 사람을 구속하러 남산에서 왔었는데 둘이 용케 피신하여 한 달 쯤 후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나타날 수 있었다. 외국 언론들은 둘이 구속되었다고 크게 보도하였으며, 일본의 지식인들은 연명으로 석방호소의 어필(appeal)을 내기도 했었다. 그런 일들조차 신문에 기사화하는 것이 남산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게 다섯 번쯤 KCIA에 당한 내가 개인적인 불기피한 사정으로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떠나 서울신문 편집국장으로 간 것을, 김학준 교수는 "야당운동에 참여할 때 권력당국이 자신에게 씌울 매카시즘의 족쇄를 걷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했다"고 글로 쓰기도 했다.

김충식 씨는 책에서 praetorian(praetor)이란 개념을 요긴하게 쓰고 있다. 로마시대 집정관에서 온 개념으로 요즘 표현으로는 친위대장 정도를 표현하는 것이 되겠는데 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자주 쓰고 보급시킨 용어이다. 개발도상 국가들이 그런 단계를 거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헌팅턴 교수는 도덕적 감각이 약했던 것 같다. 그는 월남전 때 농촌을 광범하게 폭격함으로써 그들이 도시로 이주토록 유도하여 그 '강요된 도시화'로 베트콩의 근거지를 없앨 수 있다는 전략을 제공한, 도덕성과는 담을 싼 학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남산의 부장들>에 나오는 KCIA의 무자비한 행태는 그 시대를 산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피해를 고통스럽게 몸으로 겪었다. 그런데 서두에 인용한 JP의 조국근대화의 뒷받침 운운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물론 급속한 근대화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강압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어느 정도'가 말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하간 '어느 정도'를 인정한다고 하자. 그래도 특히 제3대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취임한 이후의 그 횡포와 잔학상은 도를 넘었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무고한 사람들을 북의 간첩으로 몰아 심한 고문을 하고 옥살이를 시켰다.

경제이권에도 안하무인으로 간여하였다.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국회의원마저 개 패듯 패고 고문하였다. 그것이 모두 조국근대화를 위한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일제의 헌병정치와 특고(特高)경찰(사상범통제)의 악습을 그대로 물려받아 그러한 잔학상이 저질러졌다는 점이 있었다.

일제가 청산되지 못하고 그 친일세력이 수사기관에도 온존되었기에,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그 지독한 악습이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해석이다. 그 못된 악습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민주화가 되면서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서 재미있게 느낀 것은 초기 중앙정보부가 마치 '양산박' 같았다는 비유이다. 나도 비슷한 느낌을 그때 가졌었다. 5.16 쿠데타 후의 집권 그룹들이 <수호지>의 양산박 패거리들 같았다. 중국에서는 강호(江湖)니, 의협(義俠)이니 하는 표현을 쓰는, 그러니까 쉽게 말하여 협객, 건달, 왈패들이다. 그 가운데 물론 송강 같은 큰 인물도 있었다. 건달이라고 무시할 것만은 아니다. 한(漢)나라를 일으킨 유방도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도 건달이었던 셈이다.

그들이 시일이 지나며 발전하여<삼국지>시대의 인물쯤 되어갔다. 그러나 쿠데타가 또다시 일어나 <수호지>시대가 되풀이. 거기서 점차 <삼국지>시대로 다시 바뀐다. 정치행태로 말하자면 <수호지>시대는 고대(古代)이며, <삼국지>시대는 중세(中世)이다. 문명화된 근대(近代)에 못 미치고, 현대(現代)라고 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남산의 부장들>은 우리의 통한(痛恨)의 역사다. 그것을 값비싼 교훈삼아 우리는 지난날의 정보정치, 고문정치, 공포정치, 공작정치 등을 청산하고 개명된 민주법치국가를 이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때의 그 세력들이 다시 활개 치는 것을 보면서 가끔 섬뜩해지기도 한다.

근대화의 명분에 얼마간 눈이 팔려 정보정치의 폭주에 단호히 "노!"라고 못하고, 모기소리만한 항의 밖에 제기하지 못한 용기 없음을 자책하면서, 그러면서도 지난날의 역사를 되도록 객관화하여 보려는 노력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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