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 중인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까지 통과되면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들이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도 해소될 것입니다."
지난 광복절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한 경축사의 일부다. 친일파의 재산으로 그 자손들이 치부하는 것에 대해 이 나라의 대통령은 '역사의 부조리'라고 못박았다. 이에 따라, 특별법을 제정해 그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의지임을 분명히 천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행정자치부와 각 지자체는 지난 수년간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을 펼쳐 왔다. 그 결과, 지난 한 해만 166명의 친일파 후손들이 110만 평의 땅을 찾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한 해 이 사업으로 찾아준 땅 전체의 약 9%에 달한다. 정황상 친일파 후손들의 경우 사업 초기에 재산찾기 노력을 기울였을 것을 감안하면 그 비중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매국노들의 재산을 찾아준 꼴이다. 대통령은 '역사의 부조리'라 규정하며 해소해야 한다고 외치는데, 일선 행정에서는 거꾸로 그 부조리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은 또다시 분노와 허탈감을 곱씹게 됐다. 한 네티즌은 "이런 나라, 애국할 필요도 가치도 없다"고 일갈했다.
이 황당한 역설, 어처구니없는 부조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짚어봐야 할 핵심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친일파의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점이다. 논의에 앞서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여기서 문제 삼는 '친일파 재산'이란 친일파 및 그 후손들의 모든 재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힌일합방 전후 및 일제 통치기간에 적극적 친일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총독부 등으로부터 하사받은 재산(토지 및 은사금)만을 가리킨다. 즉,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유산 등 고유의 재산권은 인정하되,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팔아넘긴 대가로 직접 얻은 재산만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친일파 재산 환수문제는 법리상 오랜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그동안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권 소송에서 법원은 번번이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별도의 법률적 근거가 없으므로 기존의 민법에 의거해 친일파의 재산권을 인정해준 것이다. 이에 따라 최용규의원(열린우리당) 등이 앞장서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부와 한나라당 등에서는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소급입법으로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근거에서였다.
그러나 조금만 더 따져보면 논란의 결론은 명백해진다. 여기서 문제삼는 친일파의 재산권은 우리 헌법과 법률의 보호 대상인 합법적인 재산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근거는 현행 헌법 전문의 첫 구절에 나와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임시정부는 조선 총독부를 거부하는 존재였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결국 일제 총독부의 주요 통치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이완용 송병준 등과 같은 친일파 거두들이 적극적 친일행위의 대가로 총독부로부터 백작 자작 등 귀족계급을 부여받고 토지 등을 하사받은 것은 대한민국 헌법체계상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아가, 임시정부 및 이를 잇는 대한민국의 법 정신상 이들의 행위는 대단히 불법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로 인해 취득한 재산은 '장물'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임시정부 헌법(1919. 4. 11제정)은 일체의 사회경제적 신분을 인정하지 않았다(임시정부 헌장 제3조. "大韓民國의 人民은 男女 貴賤 及 貧富의 階級이 無하고 一切 平等임"). 따라서, 친일파 거두들이 총독부로부터 귀족 신분과 함께 토지 은사금 등을 하사받은 것은 임시정부 헌법상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자연히, 그 법통을 잇는 대한민국의 법체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다. 친일파들이 일제 하에서 누렸던 귀족 신분이 해방과 동시에 소멸된 것처럼 그들이 총독부로부터 받은 재산권도 함께 무효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런 맥락에서 해방 후 제헌헌법 부칙 제101조("국회는 8.15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 수 있다")가 만들어지고 이를 근거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친일파의 발호로 3년만에 폐지되고 말았다. 그 후 50년 넘게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다 보니, 법원에서는 형식논리와 법적 안정성만을 앞세워 사실상의 '장물'을 '재산권'으로 인정해주며 친일파 후손들의 손을 들어주기에 이른 것이다.
짚어봐야 할 두번째 문제는 행자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친일파 후손들의 땅을 찾아준 점이다.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은 본래 취지만 놓고 보면 좋은 행정서비스의 한 사례다. 그 덕분에 재산을 찾게 된 이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행정서비스가 매국노 후손들의 치부에 이용된다면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용납되기 힘들다.
정부의 행정행위는 그 특성상 다양한 측면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애초의 취지나 목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결정하거나 행정행위를 할 때는 그것이 초래할 영향과 결과를 사전에 면밀히 예측분석해 부작용을 막을 장치나 대책을 마련한 뒤 집행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이른바 '선진행정'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갈등관리기본법에서 갈등영향분석제도를 도입하도록 한 것도 그런 필요 때문이다.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이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찾기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란 점은 사전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 전부터 이완용 후손 등의 땅찾기 소송이 사회문제화됐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경고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되는 행정서비스가 부당한 용도에 이용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한 뒤 사업을 시행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했다. 그런 노력 없이 무작정 사업을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분노와 허탈감만 안겨주게 된 것이다.
조상땅 찾아주기 사업이 시작된 지 거의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친일파 후손들은 재산을 거의 찾아 어떤 식으로든 처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만시지탄이 없지 않으나, 그래도 일단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별법 제정인 것같다. 사회적 토론과 보완작업 등을 거쳐 이번 정기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 그래야만 이 나라에 '애국할'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느낄 이들이 늘어날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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