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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라, 돼지들아"

[전태일통신 61] 탈옥을 동경하는 '새끼돼지'가

세상이 날 버렸다고 느낀다. 그 어떤 것도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척도가 없다. 그들 앞에서 난 발가벗겨진 수능 원점수 500점 만점에 400점 안팎을 왔다 갔다 하는 공부 못하는 놈일 뿐. 아니, 그마저도 그들은 기준이 확실치 못하다고 하여 표준점수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나는, 07학년도 수능시험을 볼, 60만 명 중 한 명일 뿐.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사육을 받았다. 비평준 고교 중 명문 사립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비리의 온상으로 비유되는 사립고등학교를 다녔다. 환경은 참 좋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여러 개의 별을 이마에 달고 다니는 학교 설립자와 그에게 아부하며 명문대 진학률에 전전긍긍하는 교장님과 교감님을 보았다. 전체 조회가 있는 날이면 학생들 앞에서 정의를 지키라고 지껄여대지만, 정작 이마에 별이 달린 사람들에게는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선생님을 보았다.

이 사회의 부조리를 봤다. 그리고 미소를 보내는 자조적인 내 모습은 포기를 의미했다. 내겐 힘이 없다고, 우리에겐 힘이 없다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말을 했다. 그들은 단체로서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기적인 개인일 뿐이었다.
▲ ⓒ프레시안

나는 인간인가? 나의 존엄성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내게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에 나는 내가 인간인지 궁금해져 왔다. 그러나 다른 이유에서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높으신 '님'들은 과연 인간인지 궁금해져 왔다. 생물학적으로 그 '님'들의 DNA는 그 '님'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데, 왜 동물 농장의 폭군 돼지, 나폴레옹이 복수가 되어 내 머리 위에 군림하는 느낌이 드는 걸까. 그 님들은 복수가 되어 내 머리 위에 있는데, 나는 왜 단수가 되어 짓밟히는가. 군림하는 님들은 복수가 되어 우리를 짓밟는데, 우리는 왜 단수로서 짓밟히는가. 왜 뭉치지 않을까. 어째서 복수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어째서 정의를 말하지 못하는가.

에라, 돼지새끼들. 나도, 그들도 돼지에서 발전하지 않았다. 발전이 없다. 모두가 게으른 돼지였고 돼지이고 돼지일 것이다.

나는 사육을 당했다. 단연코, 교육이 아닌 사육이었다. 사회가 나를 사육하고 있다. 부조리가 나를 길러내고 있다. 나는 부조리를 배우고 몸에 익혀나간다. 그러나 높은 님들께서는 도덕적인 인간이 되라고들 말씀하신다. 고개 숙여 죄송함에, 송구스러움에 몸을 떤다. 죄송합니다, 저는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라고 말을 한다. 당신님네들이 말하는 도덕이 무엇인지, 그 정의조차 궁금해지는 이 세상. 도덕 교과서를 아무리 펴고 외워봤자 소용이 없다. 도덕을 이 사회에 적용하느니, 미적분을 세상에 적용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해본다. 나는 미적분을 할 줄 안다. 그러나 그뿐이다. 나는 미적분을 할 줄 아는 돼지가 되었을 뿐이다.

삶이 역겹고, 이미 내가 찌들어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고 3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나의 인간적인 삶을 포기해 버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한참 방황하던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이 날 때면 구토감이 든다.

수업종이 치고, 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이 와서 수업을 시작한다.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교실 밖의 하늘은 참 맑고 푸르렀다. 교실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아이들 등에 날개가 달리는 상상을 한다. 나쁘지 않다. 저 맑고 푸른 하늘 아래를 날 수 있게 된다니. 그럼 다음엔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한다. 진전이 없다. 그 다음이 없다. 그 누구도 날아오르지 않는다. 그 상태로 수업은 계속되고, 모두가 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수업을 듣는다. 상상 속의 나도 날아가지 않는다. 모두가 똑같다. 단지 실없는 상상이었을 뿐이었는데, 슬퍼졌다.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단지 그 뿐이다. 나는 뛰쳐나가지 않았고, 상상 속의 나도 등에 달린 날개로 하늘을 날지 않았다. 살아 있으되 살아 있지 않은 인간이 되어버렸다. 내게는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인간인데, 그 모든 것들이 구속받고 있다.
▲ ⓒ프레시안

사육사들은 가슴에 새겨 두라면서 7가지 규율을 종용했다. 이름하여 7무(無)다. 무단 이탈 없는 학교. 절도 없는 학교. 음주 흡연 없는 학교. 폭력 행위 없는 학교. 불건전한 이성 교제 없는 학교. 기물 파손 없는 학교. 선생님께 반항 행위 없는 학교….

옭죄이고 있다. 나는 죄인이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나는, 내 자신일 수 없다.

나와 너, 우리의 머리에는 규정이 있었다. 여학생 귀밑 5cm, 남학생 3cm. 그들은 말한다. "학생의 긴 머리는 나쁘다!" 가만히 있어도 자라나는 학생의 머리가 나쁜 것이라고 배운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학생은, 새끼돼지들은 퇴화해야 한다. 5cm, 3cm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더 이상 머리가 자라나지 않게 퇴화해야 한다. 돼지에겐 돼지털이 어울리니까,

단정하게 돼지털 길이만큼만 기르라는 돼지님들의 말씀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낄낄낄. 아, 학생의 본분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보기에 단정한 외모와 바른 정신 상태로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고 집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구나.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머리를 자를 바에는, 내 목을 치라고 말했던 개화기 지식인 최익현 선생이 생각났다. 나도 말하고 싶다.

차라리 내 목을 뎅겅 잘라주셈!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저 삼켜야 한다. 그저 속으로 삼키라고 옆에서 충고한다. 저 '님'들은 네 목 정도야 언제든지 잘라버릴 수 있어, 반항한다고 자퇴나 전학을 종용할 수도 있고, 주말마다 지연귀가라고. 알잖아, 우리 학교 기숙사 학교라서 집이 먼 학생들을 저녁까지 집에 못가게 붙들어 놓으면 된다는 거. 귀찮잖아, 참아. 그냥 머리 잘라.

귀찮단다.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권위를 찾는 것이 귀찮단다. 그래, 어디 한두 번 당하냐. 나도 귀찮다. 나도 게으른 돼지새끼니까!

그런데 이러한 논리적인 귀차니즘에 굴하지 않는 문제아, 반항아들이 있다. 힘든 1, 2학년 시절을 보낸 고 3에게 행하는 두발규제는 옳지 않은 것이라고 두발검사를 하는 선생 휴대폰에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익명의 문자는 선생님들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귀찮다. 그냥 돼지로 살지, 귀찮고 시끄럽게 일이나 벌이고. 고 3이 잘 하는 짓이다. 넌 돼지새끼도 안 되겠다, 근데 왜 자꾸 안구에 습기가 차냐?

나도 차라리 그렇게 하고 싶다. 나는 이름 밝히고 반항아가 되고 싶다. 아, 당당해지라 고 3이여! 꼭 고 3 두발규제만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신이 계시다면 대답해주세요. 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대학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난 정말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갑갑하기만 한 건지.

이런 느낌은 노래로 풀어줘야 한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페인킬러Painkiller가 땡긴다. 아주 적절한 비트가 내 귀를 후려친다. 보컬의 찢어지는 괴성이 내 고막을 찢어발긴다. 드러머가 드럼을 박살내기로 작정을 하고 드럼을 갈기고 있다. 스네어가 작살나 버릴 것 같다. 그래. 이런 게 진통제다. 너만이 나의 진통제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이 세상은 내게 똑바른 정신 상태로 살아가라고 명령한다. 나는 미쳐버렸다. 이 세상에서 미치는 것만이 살 길이다. 착하게 살아가는 것은 쉽다. 남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내 소신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 소신을 지켜나갈 굳센 결심이 필요하다. 내게는 소신이 있다. 하지만 그 소신을 지켜나갈 굳센 결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미쳐버렸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면. 난 돼지 새끼니까.

그래도 오늘도 외쳐본다. 나의 단말마가 어떤 '님'들 귀에 들어가기를 바라면서. 소심하게. 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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