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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일방주의가 '러시아-이란 에너지정치' 키워

<해외시각> '에너지정치'에 따른 다극화에 주목할 때

지난 10일 세계 각국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참석한 뮌헨 안보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작심한 듯 미국의 군사주의적 외교정책을 맹공한 것이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러시아가 이토록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자국의 어마어마한 석유 및 에너지자원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정치(Energy politics)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인도의 전직 외교관 M. K. 바드라쿠마르는 지난 10일 <아시아타임스>에 기고한 글(Gas: Iran turns up the heat)을 통해 이란이 러시아와 함께 에너지정치를 구사하면서 핵문제를 빌미로 한 미국의 대이란 포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서방측의 에너지 안보에 중대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달 초, 푸틴이 이란의 '가스 OPEC' 결성 제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러시아와 이란, 두 에너지 대국이 상호 협력을 통해 미국의 강경대응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물론 중국, 인도 등 에너지 소비 대국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유대 강화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현재 석유 생산 세계 2위, 천연가스 1위이며 이란은 석유 세계 3위, 천연가스 2위의 에너지 강대국이다.

현재 유럽은 천연가스의 약 30%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러시아의 독점 횡포를 피하기 위해 이란 등 중동지역으로부터 새로운 가스공급원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란의 핵개발을 빌미로 한 미국의 대이란 강경정책에 유럽이 동조하는 한, 이란으로부터의 가스 공급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편 이란은 유럽연합과의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지만, 미국의 강경정책에 막혀 이의 실현이 어려워지자 동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인도 및 파키스탄과의 가스 공급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파키스탄-인도 가스관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바드라쿠마르는 만일 이란-파키스탄-인도 가스관 프로젝트가 성사된다면 이란은 물론 러시아에게 커다란 전략적 이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란산 가스의 유럽 진출이 좌절됨으로써 유럽 시장에서의 러시아의 기존 독점적 지위가 유지되는 데다 이란-파키스탄-인도 가스관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경제적 실익까지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바드라쿠마르는 이어 러시아 및 이란 등에 대한 미국의 강경정책이 계속될수록 이들 국가 및 중앙아시아 에너지 생산국과 중국, 인도 등 에너지 소비국 간의 유대가 강화될 것이라며 심지어 중국, 러시아와 이란, 그리고 중앙아시아 국가 등 상하이협력기구 차원의 '에너지클럽'이 형성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강압적 외교정책으로 말미암아 미국, 유럽 등 서방측이 에너지안보 측면에서 취약한 위치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미국의 강압적 일방주의가 오히려 러시아, 이란 등 에너지 강대국들의 에너지정치를 도와주고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편집자>

▲ 지난 1월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테헤란을 방문한 러시아 국가안보보좌관 이고르 이바노프에게 제안한 '가스 OPEC' 구상은 본격 '에너지정치'의 시발을 알리며 서방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로이터=뉴시스

이란·러시아의 에너지정치


러시아 관리들이 대통령의 의중과 다른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주요 천연가스 생산국 간의 협력체를 결성하자는 이란의 제안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1월 28일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테헤란을 방문한 러시아 국가안보보좌관 이고르 이바노프에게 이같은 제안을 했다. 다음 날 러시아의 국영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은 "가스산업은 석유산업과 그 구조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조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러시아 경제개발및무역부의 대변인도 "러시아는 가스산업 카르텔을 형성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전혀 합리적인 제안이 아니다. 특히 이란이 심각한 외부 압력에 직면한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며 일언지하에 거부의 뜻을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어 "러시아가 무엇 때문에 가스 생산국들의 행동통일에 구속돼야 하는가? 생산량 할당 등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고 나서 1월 31일, 이바노프 안보보좌관은 모스크바 귀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보다 의례적으로 러시아 측의 입장을 밝혔다. 이바노프는 이란 측의 입장은 "협상을 위한 문제제기 또는 제안이라기보다는 천연가스 생산국들이 어떤 형태로든 협력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일반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뿐이며, 본인이 아는 한 가스 카르텔 구축에 관한 논의는 현재 전혀 없다"고 해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틀 후,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대반전을 감행했다.

"가스 OPEC은 대단히 흥미 있는 제안이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초기 단계인 현재 우리는 이란 측 전문가들은 물론 이란, 나아가 세계시장에 가스를 공급하는 대규모 가스 생산국들과 생각을 같이한다. 러시아는 이미 제3국가시장에서의 (생산자 국가들의) 활동을 조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는 이어 "우리는 카르텔을 형성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의 주요 고객들이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는 생산국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산국들의 활동을 조율하는 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닷새 후, 이번에는 빅토르 흐리스텐코 에너지부 장관이 푸틴 대통령과는 딴 소리를 했다. "카르텔이라든가 '가스 OPEC' 따위의 환상은 병든 상상력이 만들어낸 쓰레기"라고 일갈한 것이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첫째, 모스크바는 유럽연합 고위급의 모스크바 방문을 앞두고 서유럽 국가들이 지나친 경각심을 갖는 것을 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유럽을 비롯한 서방에서는 '카르텔'이라는 말 한 마디에 생산량 할당, 가격 담합 등등을 떠올리면서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가스 OPEC'이 현실화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지나야 된다는 점을 러시아는 잘 알고 있다. 천연가스는 지역마다 시장특성이 다르며, 원유와는 달리 가격시스템이 형성돼 있지 않고(가스 가격은 대체로 석유 가격에 연동돼 있다), 선박이 아닌 가스관에 의해 주로 운송되며,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장기계약에 의해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러시아에는 유리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맹국들은 이미 '가스 OPEC'의 출범은 시간문제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해 11월 라트비아에서 열린 NATO 정상회담에서 서방 에너지소비국가들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가스 NATO'를 출범시키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다.

러시아의 교묘함 덕택으로 '가스 OPEC'의 환상과 현실 사이에는 일종의 회색지대가 생겨났고 앞으로 이 회색지대가 현실이 될지 여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 지난 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해 에너지협력을 핵심으로 한 러시아-인도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을 논의했다.ⓒ로이터=뉴시스

이란-파키스탄-인도 가스관


푸틴과 흐리스텐코의 발언은 겉보기처럼 그렇게 모순된 것은 아니다. 당시 푸틴은 인도 방문(1월 25-26일)을 막 마치고 돌아온 시점이었는데, 그의 방문에서 논의의 초점은 에너지협력을 핵심으로 한 러시아-인도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이었다. 푸틴은 특히 "인도 및 그 인접 지역에서의 가스 생산 및 수송을 위한 시설 건립"을 위한 협력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현재 국제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는 이란-파키스탄-인도 가스관 프로젝트(700억 달러, 2100km)를 지칭하는 말이다.

푸틴의 인도 방문은 이란 가스관 프로젝트에 의해 공급될 천연가스 가격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이루어졌다. 이란이 제안한 가격은 파키스탄-인도 국경지역에서 1mBtu(100만 영국열량단위) 당 4.93달러, 여기에 인도는 영토 통행료로 파키스탄에 1.5달러를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인도 측은 오는 6월이면 1450억 달러 상당의 대규모 가스공급계약이 체결될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을 폈다.

이란은 당초 제시 가격에서 30%를 깎아줄 정도로 대단한 융통성을 발휘했다. 에너지안보의 지정학이 이토록 기민하게 추진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란이 남아시아 국가들(그리고 중국)과의 에너지 협력을 열정적으로 추진하는 것과 러시아에 대해 가스 생산국간의 협력체를 결성하자고 제안한 것은 전략적 측면에서 보자면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이다.

확실히 이란은 갈수록 과감해지고 있는 러시아의 지역정책에서 자신의 활로를 찾을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기회를 지정학적으로 더욱 강화시키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란이 이를 통해 유럽 여러 나라들에 대해 미국의 대이란 강경정책에 계속 동조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스OPEC'을 만들자는 제의를 내놓은 사람이 다름 아닌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이란의 제의가 결코 허장성세가 아님을 유럽 각국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란 핵개발에 대해) 일방적 제재 결정을 내릴 경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천연가스를 확보하려는 유럽 각국에게 이란은 '최후의 미개척지(last frontier)'다. 2015-2020년이 되면 유럽은 심각한 가스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북유럽 가스관을 통한 러시아의 가스공급이 늘어난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자국이 유럽 국가들에게 '특별케이스'임을 잘 알고 있다. 이란은 모든 분야에서 유럽연합과의 관계 정상화, 나아가 이를 통해 유럽연합으로부터 정치경제 측면에서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대가를 받아낼 것을 원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경고의 의미를 유럽 지도자들도 잘 알고 있다. 도미니크 빌팽 프랑스 총리는 지난 6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즉 미국)가 이란에 대한 "상상력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먼저 이란에 대해 이란이 우라늄농축을 계속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란이 (핵개발 중단이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점도 일깨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 문제에 대한 대화와 협상은 아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속셈

한편 러시아 입장에서 하메네이의 '가스 OPEC' 창립 주장은 (지정학적 판도가 낳은) 굴러들어온 떡이나 다름없다. 러시아와 이란을 합치면 세계 가스 매장량의 40%가 넘는다. 또한 전 세계 가스 매장량의 75% 가량이 중동지역과 구소련지역에 묻혀 있다. 따라서 러시아와 이란이 손을 잡는다면 천연가스의 전 세계 공급과 가격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첫째, 무엇보다도 테헤란과 손을 잡음으로써 모스크바는 유럽시장에서의 경쟁을 피할 수 있다. 러시아로서는 언젠가 26조9000억 입방미터나 되는 이란의 엄청난 가스 매장량이 유럽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사태에 대해 대비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알제리와 일정 수준의 양해를 이룬 바 있다. 러시아는 현재 유럽 가스 시장의 30%를 담당하고 있으며 알제리는 10%를 남부 유럽에 공급하고 있다. 이번 주 푸틴은 중동의 또 다른 가스 생산국인 카타르를 방문한다. 카타르의 가스 매장량은 11조2000억 입방미터로 러시아, 이란에 이어 세계 3위를 자랑한다.
▲ 이란이 자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수송경로를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것은 중앙 아시아의 지정학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로이터=뉴시스

둘째, 가스 수송경로의 정치학이라는 측면에서 이란은 러시아의 중요한 파트너이다. 이란은 어떤 국가가 자국산 가스를 사들여 되파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따라서 이란이 자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스 수송경로를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것은 남부 코카서스와 흑해 지역, 심지어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머지않아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란-아르메니아 가스관의 연장공사가 흑해 밑바닥을 통해 그루지야를 거쳐 가게 된다면 러시아는 남부 코카서스와 남부유럽 시장에서 더욱더 멀어지게 된다.

최근 푸틴은 불가리아와 그리스가 부르가스-알렉산드로풀리스 가스관 건설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이 두 나라를 비판한 바 있다.

"러시아와 카스피해 인근 국가들은 파트너이며, 우리의 주요 고객은 서유럽에 있고, 불가리아와 그리스는 유럽연합 회원국이므로 두 나라는 가스관 건설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이 두 나라는 우리 사업을 끊임없이 방해만 하고 있다."

지난 1월말 다보스 포럼에서 러시아 부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보다 직설적으로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부르가스-알산드로풀리스 가스관 프로젝트를 침몰시켰다고 비난한 것이다. 라이스는 미국이 부르가스-알산드로풀리스 가스관 프로젝트보다는 이와 경쟁관계에 있는 나부코 프로젝트를 선호한다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나부코 프로젝트는 유럽연합이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카스피해 지역의 가스를 터키를 거쳐 남부유럽에 수송할 계획이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최근 이란산 가스의 공급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이란산 가스를 기존 이란-터키 가스관을 거쳐 나부코 가스관을 통해 운반한다는 내용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럽연합은 트랜스카스피안 가스관 등 (러시아가 아닌) 대안의 가스공급원을 찾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유럽시장의 주요 공급원으로 지목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려 한다면 이란이 최적의 경유지점이다. 다시 말해 유럽이 러시아 가스관을 거치지 않고 중앙아시아와의 직접적인 에너지 공급루트를 개척하려 한다면 이란은 핵심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국은 유럽연합으로 하여금 러시아에 압력을 가해 가스공급망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시키기를 원해 왔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가스가 단순 통과 조건으로 러시아 가스관을 통해 유럽에 수송되도록 허용하라는 것이다. 미국은 또한 유럽이 러시아와 가스 공급에 관한 장기 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만일 러시아가 이란과 협력할 수 있다면 이러한 서방측의 압력을 분쇄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SCO '에너지클럽'

한편 러시아는 이란과 카타르의 가스프로젝트, 특히 남부 파르스(Pars) 가스전(이 중 3분의 2는 카타르에 속한다) 개발사업에 참여하기를 오랫동안 염원해 왔다. 최근 러시아-이란 관계의 발전과 곧 있을 푸틴의 카타르 방문으로 어쩌면 이란과 가즈프롬 간의 공동가스개발이 성사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가스공급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은 가즈프롬의 오랜 주요 전략적 목표 중의 하나였다. 러시아와 이란의 가스공급망이 합쳐질 수만 있다면 가즈프롬은 아시아 대륙 전체 가스공급망의 관리에 대해 일정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이 이 협력망 속에 가입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 파키스탄, 인도, 그리고 중국의 가스 시장이 하나로 통합될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는 현재 교착상태에 있는 이란-파키스탄-인도 가스관 협상에 돌파구가 열릴 경우 유라시아 에너지정치학에 중대 분수령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남아시아 가스시장에서 이란과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 이란이 (중국과 인도라는 두 거대 에너지 소비국이 있는) 아시아 시장에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 러시아에게는 오히려 유리하다. 나아가 남아시아에 대한 이란의 가스관 공사에 러시아기업이 참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단히 많은 이윤이 보장되는, 파키스탄·인도·중국에 대한 이란산 가스의 공급 및 판매에 가즈프롬이 참여하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상하이협력기구(SCO)의 틀 내에서 일종의 '에너지클럽'이 형성될 가능성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인도, 러시아, 중국의 외무장관이 이번 달 뉴델리에서 3자회동을 가진다는 점이다. 한편 인도 외무장관은 최근 이란 방문을 통해 에너지협력 가속화의 분위기를 성숙시켰다.

러시아는 SCO 틀 내의 에너지클럽 형성이 자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푸틴 자신이 지난 해 6월 SCO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러시아의 목표는 SCO에 포함된 주요 에너지 생산국 및 핵심 소비국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 생산 및 수송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나아가 세계질서의 다극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현재 SCO에는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이 가입해 있으며 이란은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미국은 당연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과연 SCO '에너지클럽'을 향한 시계바늘은 움직이기 시작했는가? 이제 세계는 다극화의 돌이킬 수 없는 추세에 접어들었는가? 이란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대응이 비생산적이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테헤란을 모스크바의 품 안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이란-파키스탄-인도 가스관 프로젝트를 촉진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러 대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이란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사상 처음 중부유럽에 미사일방어망을 배치한 바로 그 시기에 러시아-이란간의 에너지 협력은 강화되고 있다.

푸틴은 지난 1일 모스크바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내세운 미사일 방어망 실험의 명분을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러시아의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외부의, 예컨대 이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동부유럽에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란 영토 내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의 궤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이란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이 보유한 것은 중거리 미사일이다. (…)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주장이 그다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배치는) 러시아의 직접적 우려사항이며 우리는 이에 대해 적절한 대응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이미 본인이 말한 것처럼, 러시아는 비대칭적 대응을 할 것이지만 이는 매우 효과적인 대응이 될 것이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미국에 의해) 핵군비경쟁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러시아가 미국에 대해 불가침조약("각자의 군사력을 상대방에 대해 사용하지 않겠다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협정")을 맺자고 제안한 것은 이러한 우려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러시아-미국 관계가 악화되면 될수록 러시아-이란 관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해 12월 러시아가 이란에 토르-M1 방공시스템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전달한 것도 이러한 사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는 최근, 현재의 국제정세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현재 러시아는 다극화된 세계의 한 축, 또는 한 중심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국제문제의 처리에서 제외돼서는 안 될 주요 당사자의 하나가 됐다. (…) 미국은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으며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미국 자신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며 이제는 유엔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 (…) 우리의 과제는 유럽과 함께, 그리고 중국, 인도와 함께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세계질서는 안정에 기반한 것임을 분명하게 해두는 것이다."

그는 이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는 미국의 패권적 공격성이 저지되기를 원했다. 객관적으로 상황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강국들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의 GDP를 합치면 미국을 능가하며 이 두 나라는 미국보다 2.5배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외교담당 보좌관이자 전 외무장관인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가 지난 8일 모스크바를 방문했다는 점이다. 그의 방문은 지난 1월말 테헤란에서 있었던 하메네이와 이바노프 간의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벨라야티는 1990년대 중반, 당시 러시아 외무장관이었던 프리마코프와 함께 이란-러시아 간 전략적 협력관계의 기반을 닦았던 인물이다.

자,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앞으로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우리는 지난 2003년 푸틴이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내놓았던 '가스 OPEC'라는 현실에 길들여지게 될 것이다. 이것을 '가스 OPEC'라고 부르냐 마느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가스 공급의 담합 여부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나아가 가스가 문제의 전부인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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