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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파시즘'이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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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에너지 파시즘'이 도래하고 있다

[해외시각] 석유 확보를 빌미로 전쟁-인권유린의 일상화

다음은 미 햄프셔대 마이클 클레어 교수의 '우리의 미래는 에너지 파시즘인가?: 전지구적 에너지 경쟁 및 그 결과(Is Energo-fascism in Your Future?: The Global Energy Race and Its Consequence)' 1부를 완역한 것이다.

자원 확보와 국제정치 간의 상관관계를 파헤치는 에너지정치학의 국제적 권위자인 클레어 교수는 이 글에서 석유 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공급은 감소하고 있고, 석유 생산의 중심이 정치적으로 안정된 서방지역에서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등 불안정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석유 확보를 둘러싼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2, 제3의 이라크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석유 확보를 명분으로 한 파시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임을 자랑하지만 에너지 소비는 세계 6,7위일 정도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으며 필요 에너지 자원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그러면서도 장기적인 에너지 확보대책을 세우기보다는 '한 집 한 등 끄기 운동'이나 '주 5일제 차량 운행'이 에너지대책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한국의 에너지 불감증에 경종을 울린다는 의미에서 이 글을 게재한다.

원문은 미국 진보성향 인터넷 매체인 <톰디스패치닷컴>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 마이클 클레어 교수는 "석유에 대한 전 세계의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서 군대가 동원돼 송유관을 지키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최근 들어 부시의 가망 없는 이라크전쟁에 대한 지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전쟁을 지지하고 있는 세력들은 '이슬람 파시즘'의 위험성을 강조하거나, 혹은 오사마 빈 라덴의 추종자들이 지브롤터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에 탈레반 정권과 같은 이슬람 전제왕국(Caliphate)을 세우려 한다는 주장을 유행처럼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 자신도 지난 수년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어떤 종류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제국"의 건설을 시도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해 '이슬람 파시즘'이란 용어를 여러 차례 사용하기도 했다.

이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자살테러를 일삼는 극단주의자들이 몇 백 또는 몇 천 명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 세계 전체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위협은 이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름하여 '에너지 파시즘', 즉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에너지자원을 둘러싼 전지구적 투쟁의 군사화, 이것이야말로 지구촌의 평화와 안전, 세계인의 자유와 인권을 위협하는 실질적 위협으로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머지 않아 '에너지 파시즘'은 지구상 거의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이슬람 파시즘'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아마도 우리는 현재의 이라크전쟁과 같은, 에너지자원의 확보를 위한 미래의 해외전쟁에 돈을 대거나 직접 참전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는 현재 러시아의 초대형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의 변덕에 일희일비하는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그루지야처럼 에너지자원을 가진 자들의 자비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머지 않아 우리들은 할당량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불법적 에너지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닌지를 감시하는 국가권력의 항상적인 감시망 아래 놓일 수도 있다.

이는 미래에 대한 근거없는 악몽이 아니다. 지금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분명히 그 기본적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앞으로 우리 모두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현실인 것이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전망들이 가능하다.

△ 미군의 임무가 (국토 방위에서) '전 세계 석유 방위'로 바뀔 것이다. 즉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은 전 세계 주요 송유관과 에너지 공급 루트를 순찰하거나 미국이 해외에 확보한 유전이나 천연가스 매장지를 보호하는 데 집중될 것이다.

△ 유라시아 대륙 최대의 석유·천연가스 공급자인 러시아가 '에너지 초강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이들 자원의 공급을 바탕으로 이웃국가들에 대한 점점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아프리카, 남미, 중동, 아시아 등지에 남아 있는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을 둘러싸고 강대국 간의 무자비한 쟁탈전이 벌어질 수 있다. 강대국들은 자원이 풍요한 나라들을 자신의 종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하거나 정권교체를 압박할 것이며, 자원부국의 국민들은 단지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부패와 억압, 그리고 빈곤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 (핵무기로의 전용이 가능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공사를 불문하고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간섭과 감시가 강화될 것이다. 핵발전소 사고나 핵시설에 대한 사보타지 위험도 커질 것이며 핵분열물질이 국제테러단체 등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 모든 사례들이 향후 도래할 '에너지 파시즘' 시대의 기본적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각각의 현상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에너지의 획득과 이전, 분배 등과 관련한 국가의 간섭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에너지 소유권에 저항하는 개인에게는 무력이 행사되는 빈도가 증가한다. 20세기에 두드러졌던 '전통적 파시즘'도 국익 추구란 미명 아래 공생활, 사생활을 가리지 않고 간섭하긴 했다. 그러나 '에너지 파시즘'이 특이하다면 그것은 충분한 에너지 획득이 목적이며 주로 경제기능과 공공재 운용의 측면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수요·공급의 불균형

지구촌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을 이처럼 강력한 경향이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에너지 파시즘'의 도래는 두 가지 중요한 현상에 기반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에너지 수요와 공급이 충돌한다는 것과 에너지 공급의 중심이 과거 북측 국가(선진국)에서 남측 국가(개발도상국)로 이동하고 있는 현상이다.

지난 60년간 세계 에너지 산업은 점점 늘어만 가는 에너지 수요의 갈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해 왔다. 석유의 경우 전 세계의 수요량은 지난 1955년 하루 1500만 배럴에서 2005년에는 8200만 배럴로 50년 사이에 450%나 늘어났다. 그동안 석유 공급량도 이같은 수요 증가에 보조를 맞춰 왔다. 앞으로 석유 수요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다른 개발도상국이 성장함에 따라 지금까지의 증가 속도보다 빠르면 빨랐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석유 수요의 증가 속도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도 공급이 이같은 수요 증가를 충족시킬 것이라는 예측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정반대로 석유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전문가들이 '전통적 개념의 원유(액체 상태의 원유)' 공급은 얼마 가지 않아 정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가깝게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원유 공급량이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얘기다. 그 시점이 되면 역청사암(tar sand), 혈암유(shale oil) 등 '비전통적 개념'의 원유가 일정 부분 액상 원유를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 약 10년 이내에 원유 공급의 감소가 세계 경제에 미칠 광범위한 피해를 막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등은 원유만큼 갑작스럽게 공급이 감소하지는 않겠지만 이들 에너지 역시 유한재이긴 마찬가지니 결국은 소진될 것이다.

세 가지 중에서는 석탄 매장량이 가장 풍부한 편이다. 현재의 소비량이 유지된다면 앞으로 150년은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석탄액화기술을 이용해 석탄을 석유처럼 사용하게 된다면 석탄 매장량도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다. 게다가 석탄 연소가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방법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석탄 연소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마지막 석탄 광산이 다 소진되기도 전에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연가스나 우라늄도 10년, 20년 정도는 석유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정점에 다다를 것이고 공급량이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다. 천연가스는 석유처럼 한 번 사용하면 없어지는 연료지만 우라늄의 경우는 지속성이 보강될 수 있다. 증식형 원자로에 우라늄을 넣으면 전기를 생산해 낸 후 부산물로 플루토늄을 내놓고 그 플루토늄은 다시 원자로 연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루토늄의 사용이 증가하는 것은 곧 핵무기 확산의 위험 부담으로 이어진다. 세상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원자력 자체와 그 부산물의 유통을 감시하기 위해 정부의 규모도 커져만 갈 것이다.

이와 같은 전망은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유럽연합 등 주요 에너지 소비 국가 관료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들 정부들은 과거 에너지 정책들을 재검토 해 본 결과 자국의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의 확보를 시장의 힘에 맡겨둘 수만은 없으며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공통적 결론에 도달했다. 요컨대 부시 행정부가 지난 2001년 5월에 채택한 '국가 에너지 정책'의 결론은 결국 중국 공산주의 정권의 공식적 입장과 흡사한 것이다.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국가는 무역 규제, 금수조치, 구속, 체포 등 노골적인 실력 행사를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에너지 파시즘'이 도래한 미래에 대한 단편적 설명이다.
▲ 북미와 유럽 인근의 석유가 소진돼 가자 러시아와 그 위성국가들의 '몸값'이 높아졌다. 마이클 클레어 교수는 자원이 풍부한 약소국들에 대한 강대국들의 정치적, 군사적 간섭이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은 그루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이 터키에 연간 40억 달러 규모의 석유를 공급키로 약속한 2006년 3국 정상회담. 지도의 붉은 선은 석유가 공급될 송유관을 나타낸다. ⓒ로이터=뉴시스

'에너지 파시즘'이 급부상한 데에는 주요 에너지의 생산지역이 바뀐 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한때 세계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이 가장 활발히 이뤄졌던 곳은 모두 북미, 유럽, 그리고 러시아 영토 중에서도 유럽 인근이었다. 우연은 아니었다. 메이저 에너지 기업들이 본사에서 가깝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원유 매장지를 국유화할 우려가 적은 '쾌적한 환경'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북반구의 자원이 거의 고갈됐고 이제는 전 세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중동 등 남반구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남반구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식민 지배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일단 외세라면 불신하고 보는 경향이 뚜렷하다. 소수민족 분리주의자, 반란군, 극단주의자 등의 세력들도 외국 석유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다.

한 예로 최근 몇 달간 나이지리아에서는 가장 낙후된 니제르 델타 지역의 폭동으로 석유 생산량이 급감했었다. 원유 시추작업으로 주변 환경이 훼손된 부족들이 이 폭동을 이끌었다. 이 지역에서 가져간 원유로 회사들은 큰돈을 벌겠지만 영토 한 중간이 훼손당한 원주민들은 가난한 채로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던 것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시추한 원유를 팔아 얻은 이익의 대부분은 석유 기업의 몫이고 그들이 흘린 부스러기조차 수도 아부자에 거주하는 일부 엘리트들의 몫이었다. 여기에 외세에 휘둘리는 정부에 관한 분노가 겹쳤다. 주요 원유 수입국에서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한 관료들에게 석유 판매와 관련한 이권을 주고 군사적 보호를 약속하는 등의 방식으로 내정에 간섭해 온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주요 석유 수입국이 아예 한 나라의 정권을 세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의 보호 아래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이 장수하는 것이나 미국을 배후로 업고 일함 알리예프가 아제르바이잔의 총리가 된 것이 비근한 예다. 이미 우리는 에너지가 재래식 무기에 비견할 만한 위력을 갖는 시대를 살고 있고, 이미 세계의 어느 한 쪽에서는 과거 식민 통치 경험이 있는 강대국들 간의 '거대 게임(the Great Game)'이 펼쳐지고 있다. 에너지 소비국들의 에너지 정책을 군사화하고 에너지 생산국들이 억압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넓혀놓음으로써 '에너지 파시즘'이 지배하는 세계의 기반을 마련해 둔 것이다.

펜타곤: 전 세계 석유의 보호기관

'에너지 파시즘'의 도래를 알리는 주요한 징후는 미군의 주요 임무가 전 세계 유전과 석유 관련 시설을 보호하는 것으로 전환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이란의 이슬람혁명 직후인) 1980년 1월 연두교서에서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은 걸프만 연안에서 시작되는 석유의 흐름은 미국의 '핵심적 국익'이며 이 흐름을 저해하는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라면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고 말해 미군의 최우선 임무가 석유시설 보호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소위 '카터 독트린'이라 불리는 이 선언이 발표됐을 당시만 해도 미국은 걸프만 연안 어디에서도 작전 가능한 군대를 배치할 수 없었다. 독트린과 현실 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카터는 언제라도 중동 지역에 파견할 수 있도록 신속기동군(RDJTF)을 새로 설치했다. 1983년 레이건 대통령이 그 명칭을 중부사령부로 바꾸었다. 중부사령부는 지금까지도 걸프만 연안 일대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아프리카 북동부 소말리아 인근까지의 미군 작전을 관할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지휘권도 중부사령관의 몫이다. 그러나 카터 독트린에서 명시한 대로 전쟁 와중에서도 중부사령부의 주요 임무는 '석유 흐름의 보호'에 있었다.

최근 상황에서 걸프지역 원유의 원활한 흐름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요소는 이란이라고 얘기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이 자신들의 핵시설을 공습할 경우 주요 원유 수송로 중 하나인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유조선의 통행을 막아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펜타곤은 최근 걸프만 인근에 공군과 해군을 추가배치하는 한편 중부군 사령관도 존 아비자이드 장군에서 윌리엄 팰론 제독으로 교체했다. 레바논 출신으로 시리아, 이란 등과의 외교적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을 선호하는 아비자이드 대신 해·공군 연합작전에 능숙한 팰론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을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다. 팰론은 중부군사령관으로 부임한 직후인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걸프만 연안에 항모전투단(CVSG)을 추가 배치하고 이란이 이라크 반란군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거나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군사행동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초 카터 독트린이 발표되던 1980년에만 해도 그 초점은 걸프만 연안과 그 인근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상황을 돌이켜 보면 미국 정부는 미국이 석유를 생산하는 모든 개발도상국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 듯하다. 카터 독트린의 개념을 전 세계로 확장시킨다는 발상은 2000년 국제전략연구소(CSIS)에서 발간한 '에너지의 지정학(The Geopolitics of Energy)'이란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공식 언급됐다. 보고서는 최근 들어 미국과 그 동맹의 에너지 수급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들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은 좀처럼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감안해 "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은 전 세계의 에너지 수급문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막중한 책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은 이 같은 발상을 기반으로 전략적 판단을 내려 왔다. 민주당 정부이건 공화당 정부이건 이같은 판단에 차이가 없었다. 걸프만에 한정돼 있던 카터 독트린을 카스피 해 연안까지 확장시킨 건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카스피해에서 채취해 유럽 등 서방으로 공급되는 천연가스나 석유의 수급 경로도 미국의 안보 대상이라고 선언했고 이에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과 군사적 유대관계를 맺었다. 부시 대통령 역시 이 기조를 받아들여 구소련 국가들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켰고 미군이 해당 지역에 영구 주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전 세계의 석유 수송 경로 보호를 그저 미군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a vital function)'가 아닌 '미군의 가장 중요한 기능(the vital function)'으로 보는 데에는 민주당, 공화당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부시 대통령이 카터 독트린을 미국의 주 석유 공급원인 서아프리카에까지 확장시켰다. 특히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델타 지역의 불안정한 상황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의 2007년 예산을 평가한 '해외 작전에 대한 의회 예산처의 해설' 보고서에서 국무부는 "나이지리아는 미국의 다섯 번째 석유 수입국"이라며 "나이지리아에서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미국의 석유 안보 전략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예상 가능한 차질을 막기 위해 국방부는 나이지리아 군과 내부보안군에 델타 지역 불안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무기와 군 장비를 지원하고 있다. 국방부는 또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해 내는 기니만을 지킬 요량으로 나이지리아 군과 협력해서 지역 순찰과 감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물론 고위 관료들이나 엘리트 외교관들은 군대를 이용하는 이 형편없는 동기를 지긋지긋하게도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그들은 미군을 파견한 것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테러리즘과 맞서 싸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길 즐긴다. 그러나 에너지와 군 배치를 연계시킨 미국의 속내가 슬쩍 표면화된 적이 있었다.

2006년 11월 하원의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태스크포스팀에서 발간한 '에너지 방어와 미국의 국가 안보' 보고서는 각 가정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다가 갑자기 2000년 CSIS가 내놓은 것과 같은 군사적 결론을 내놓는다. "여러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특히 중부사령부나 태평양사령부)의 기본 계획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노력을 해 왔으며 이 같은 노력은 갈수록 중요해져 가는 석유의 해로 수송을 보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 이 보고서는 또한 나이지리아 연안 기니만에서 미 해군의 개입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미 행정부는 이 같은 자신들의 태도가 결국은 미국이 전 세계를 대신해 석유 수송을 보호하는 '선행'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오만하고도 이타적인 양 하는 태도는 다음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

△ 미국은 전 세계의 하루 석유 소비량의 4분의 1을 혼자 소비해 버릴 정도로 엄청난 '석유 먹보'다.

△ 미군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는 송유관이나 뱃길은 결국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인 일본 혹은 나토 회원국으로 향해 있다.

△ 엄밀히 말하자면 많은 경우 분쟁 지역에서 미군의 보호를 받는 것은 미국 기업들의 해외 영업소들이다.

△ 펜타곤은 그 자체가 '석유먹보'다. 2005년 한 해 동안 무려 1억340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는데 이는 스웨덴의 1년 석유 소비량과 맞먹는다.

이처럼 다른 나라가 미군 활동의 혜택을 입는 경우가 없지는 않더라 하더라도 주로 미군의 보호를 받는 것은 미국 경제와 미국 기업인 것이다. 물론 송유관과 정유시설을 지키기 위해 미군 병사들도 희생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보는 쪽은 고향에서 나는 자원을 아무 대가 없이 빼앗기는 제3국의 가난한 이들과 지구 환경이다.

아직도 살아 확장되고 있는 '카터 독트린'

사실 석유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는 그것이 재물이든, 피든 간에 엄청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상황이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까지는 복잡다단한 배경들이 작용했지만 그래도 그 바닥에는 걸프만으로부터 유입되는 석유 수송과 관련한 어떤 위협도 제거해야 한다는 카터 독트린의 정신이 깔려 있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다면 역시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동인은 '유전과 송유관에 대한 안보'가 될 것이다. 이란이 석유 공급을 끊기 위한 '사악한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이는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이란을 먼저 치겠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석유 때문에 비롯된 전쟁은 계속될 것이고 미군 사망자와 미군의 총탄에 죽어가는 사망자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손실도 엄청난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만 한정하더라도 미국은 전체 국방 예산의 4분의 1을 들이붓고 있다. 걸프만 연안 전체를 관리하는 데에는 일 년에 1000억 달러 가량을 쓰고 있다. 카터 독트린의 가격표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1조 달러 가까이 되는 이라크 전쟁 비용 중 카터 독트린의 실행에 쓰인 돈의 비율을 두고 논쟁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끝이 안 보이는 전쟁에 쓰인 비용을 최소한으로 잡아 수 천억 달러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인도양, 태평양, 기니만, 콜롬비아, 카스피 해 등 세계 곳곳의 송유관과 유조선을 지키느라 들어가는 수 천억 달러의 비용은 여기에 추가로 계산돼야 한다.

남반구 에너지원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이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이미 중국과 인도가 서방의 석유 착취에 대항하기 위해 에너지 경쟁에 뛰어들었고 미 외교가의 엘리트들은 이들의 도전을 우려한 나머지 군사력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는 결국 국민들의 세금부담 증가나 사회복지 예산의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고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다. 어쩌면 유전과 송유관, 유조선 등을 지켜내기 위한 인력 수요가 늘어나다보면 징병제가 부활할 수도 있다. 결국 카터 독트린에 의거한 해외 정책들은 국내에서 적잖은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정부는 이를 억압하기 위해 대중을 탄압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너지 파시즘'이 전 세계에 드리울 어두운 그림자의 단면인 것이다.

(번역=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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