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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에너지 파시즘'의 정점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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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에너지 파시즘'의 정점에 서다

[해외시각] '에너지 기업 국유화'-'가스의 무기화' 절정

다음은 미 햄프셔대 마이클 클레어 교수의 '석유 패권과 핵 르네상스기': 에너지 파시즘의 두 얼굴(Petro-Power and the Nuclear Renaissance: Two Faces of an Emerging Energo-facism)'을 완역한 것이다.

에너지정치학의 국제적 권위자인 클레어 교수는 석유 확보를 둘러싼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석유 확보를 명분으로 한 파시즘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한 앞의 글
('우리의 미래는 에너지 파시즘인가?')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에너지 초강대국으로 급부상 중인 러시아를 모델로 에너지 파시즘의 단면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의 소유하고 있는 에너지 재산을 비합법적 방법으로 국유화 한다든지, 에너지를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도구로 활용한다든지 하는 등 러시아가 에너지 패권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몇 가지 모습들이 에너지 파시즘의 어두운 얼굴이라는 것이다.

석유나 천연가스가 고갈된 자리를 원자력이 메우게 되면서 그 시설을 방어하고 그 부산물의 유출을 감시하기 위한 정부 통제권이 강화되라라는 전망 역시 파시즘의 도래를 우려케 한다.

이에 클레어 교수는 "대다수의 정부 지도자들은 이 문제들의 초점을 정부 통제력을 증가시키거나 군사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데 두려 한다"며 '지각 있는 시민'이 이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당부한다.

원문은 미국 진보성향 인터넷 매체인 <톰디스패치닷컴>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전편에서 말한 것처럼 앞으로 수십년간 세상사를 지배하고 일반 사람들의 삶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이슬람 파시즘'이 아니라 '에너지 파시즘'이다. 즉 갈수록 줄어드는 에너지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지구적 군사투쟁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는 전 세계의 정부 관료들이 국가 에너지 수요를 시장의 힘에 맡겨두기보다는 에너지의 확보, 수송, 할당 등을 정부가 직접 책임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강대국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에너지 확보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무력 사용도 마다하지 않을 준비가 돼 있다.

이러한 에너지자원 확보의 절박성은 미국의 경우, 미군의 업무를 '세계 석유 보호기관'으로 전환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밖에 에너지 파시즘의 도래를 알리는 또 다른 징후로는 러시아의 '에너지 초강대국'으로의 급부상,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안전 등을 이유로 한 국가권력의 감시 및 통제가 강화될 것이란 점을 들 수 있겠다.

▲ 에너지가 곧 외교력으로 환산되는 시대가 왔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좌)은 카자흐스탄에서 나는 자원 덕에 워싱턴과 베이징에서 경쟁적으로 초대를 받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에너지 부국이 곧 강대국이 되는 시대

에너지 수요는 증가하는 데 반해 공급은 줄어드는 상황에서(최소한 공급 증가가 수요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 세계는 크게 에너지 부국과 에너지 빈국으로 나뉘게 됐다. 에너지 부국들은 에너지(석유, 가스, 석탄, 수소에너지, 우라늄, 대체에너 자원 등) 자체 보유량이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고도 남아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한다. 반면, 에너지 빈국들은 부족한 에너지자원을 수입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쓰거나 아니면 에너지 부족의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지난 50년간(1950~2000년)은 에너지가 풍부하고 값이 쌌기 때문에 에너지 부국과 빈국 간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일본처럼 어마어마한 부자거나 영국, 프랑스처럼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하다못해 나토 동맹국이나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맹국들처럼 '힘센 우방국'이 있다면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었다. 물론 당시에도 이도저도 없는 국가들은 고생을 해야 했다. 아직도 이들 국가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 외채위기는 사실 에너지부족에 기인한 바 크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돈이 많다거나 핵무기가 있다든가, 또는 강력한 우방국을 갖고 있다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에너지 부국이냐, 빈국이냐의 차이가 더 중요해졌다. 돈 많고 힘 있는 미국과 일본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에너지 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는 의외로 적다. 호주, 캐나다, 카자흐스탄, 쿠웨이트, 나이지리아, 카타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현재의 혼란이 극복된다면) 정도다.그 외에 몇 나라 더 있을까. 이들 나라는 선망의 대상이다. 일단 엄청난 가격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지 않아도 되고, 이들 나라의 지도층들은 충분한 에너지 확보를 원하는 다른 나라 지도층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혜택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에너지 소비국들을 싸움 붙여 이득을 챙길 수도 있다. 워싱턴과 베이징으로부터 경쟁적으로 초대받고 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이런 게임에 아주 능숙한 지도자다.

심지어 단순한 경제적 혜택을 보장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에너지 소비국에 대해 정치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에너지 소비국은 국가운영에 필수적인 석유와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판매를 보장받기 위해 에너지 공급국의 정치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다.

▲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에너지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간 에너지기업의 국유화를 주도했다. ⓒ로이터=뉴시스

러시아의 가스는 '패권의 방향'으로 흐른다


냉전이 끝난 후 러시아는 희망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초강대국'은 이미 과거의 얘기였고 정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그리고 영향력 면에서도 한물 간 것처럼 보였다. 수 년 간 미국 관리들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다. 미국이 이끄는 나토가 동유럽의 러시아 위성국가에까지 확장됐고, 요격미사일금지협정(ABM)은 일방적으로 폐기됐다. 미국 정부의 수많은 관료들이 러시아를 역사적 유물 이상으로 여기지 않으며 세계사에서 러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면 '최후의 미소를 짓는 자'는 워싱턴이 아니라 모스크바인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양의 석유와 우라늄은 물론 유라시아 최대의 천연가스와 석탄 보유량을 자랑하는 러시아는 이제 새로운 '승자'가 됐다. 군사 초강대국이 아닌 에너지 초강대국이 된 것이다. 어찌됐건 초강대국은 초강대국인 셈이다.

먼저 큰 그림을 보자. 러시아는 천연가스 생산에 있어 '절대강자'다. 영국의 BP 석유그룹에 따르면 러시아의 천연가스 보유량은 측정된 것만 1700조 입방피트에 이른다고 한다. 전 세계 천연가스 공급량의 27%를 차지하는 양이다. 이 사실은 보기보다 갖고 있는 의미가 더 크다. (러시아 에너지 자원의 주요 고객인) 유럽과 옛 소련국가들의 천연가스 의존 비율이 34%로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높기 때문이다. (석유를 주 연료로 하는 미국의 경우 천연가스 의존도는 25% 정도다.) 유라시아 가스 공급원을 주도한 덕에 러시아는 다른 에너지 공급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배적 공급자의 위치를 누리고 있다. 물론 석유 공급에서도 러시아는 강력한 우위를 갖고 있다. 세계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하루 1100만 배럴을 생산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고작 140만 배럴 뒤져 있을 뿐이다(2006년 초 기준) . 게다가 러시아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석탄이 매장돼 있는 나라이자 현재 31개의 원자로가 가동 중인 주요 원자력 소비국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999년, 집권 직후부터 이 넘쳐나는 에너지를 러시아 패권 부활을 도모할 만한 정치적 무기로 바꾸는 계획을 추진했다. 러시아는 러시아에서 수출되는 에너지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 러시아 송유관을 통해 유럽에 공급되는 에너지까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에 푸틴 대통령은 냉전 시대에 누렸던 소련의 정치적 영향력의 일부나마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민영화됐던 가스 산업을 다시 국유화하고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에너지 산업도 모두 국가의 지배 아래 둬야만 했다. 공산주의 법체계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이 같은 국유화를 합법화할 길이 없었기에 푸틴은 불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 이 귀중한 자산들을 모두 국유화했다. 여기서도 우리는 에너지파시즘의 도래를 관찰할 수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국가가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푸틴의 오랜 지론이었다. 푸틴은 1999년 '러시아 경제 발전을 위한 전략상의 광물자원'이란 제목의 박사학위논문 요약본에서 러시아 정부는 국가의 광물자원 활용을 감독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국민들의 이익의 위해서라면 이미 개인사업자 손에 들어간 석유 부분도 예외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천연자원, 특히 광물자원에 대한 획득과 사용 과정을 제어할 권리가 있다. 그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에너지파시즘에 대해 이보다 더 나은 정의를 상상하기는 힘들 것 같다.

▲ 러시아 최대 석유재벌 기업 유코스사는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의 구속 이후 국영기업에 헐값으로 팔려갔다. ⓒ로이터=뉴시스

석유 재벌 체포하고 석유 기업은 정부 품에


이 같은 푸틴의 속셈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건은 이른바 '호도르코프스키 사건'이다. 지난 2003년 러시아 최대 석유재벌이던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이 사기 및 세금포탈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미국) 엑손모빌과의 합작회사 설립 등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난 온갖 에너지 판매를 추진해고, 러시아 내 반(反)푸틴 정치세력을 지원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으로도 크렘린의 격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푸틴이 이 사건을 기획한 최종 목표는 유코스의 주요 자산인 유간스크네프트가스를 빼앗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유간스크네프트가스는 러시아 석유 생산의 11% 가량을 담당하고 있었다. 호도르코프스키와 그의 측근들이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정부는 유간스크네프트가스를 경매에 부쳐 명의뿐인 유령회사에 넘긴 다음 곧 국영기업인 로스네프트에 시장가 이하의 가격으로 되팔았다. 푸틴은 순식간에 민간기업인 유코스를 분할해 러시아 최대의 국영석유생산업체 로스네프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푸틴은 석유 및 가스의 수출, 공급도 국가가 장악하려 했다. 민간 기업의 송유관 건설을 원천봉쇄해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국영기업 가스프롬의 천연가스 독점과 역시 국영기업인 트랜스네프트의 송유관 독점은 확고해졌다. 미국과 다른 에너지 소비국들은 민간 기업의 송유관 건설을 오랜 기간 압박해 왔다. 유럽과 다른 해외 시장에 공급되는 에너지의 양을 늘리는 동시에 가스프롬과 트랜스네프트의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렘린은 제도적으로 이 같은 노력을 배제시켜버렸다.

에너지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합법성 여부가 의심되는 방법으로 정부가 장악해버린 것이 러시아가 보여준 에너지파시즘의 한 단면이라면, 러시아가 자원을 이용해 자원 빈국들을 러시아 주변에 묶어두는 데에서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악명 높은 사례로는 2006년 1월 1일 우크라이나로 공급되던 천연가스를 끊어버렸던 것을 들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가스 가격을 두고 분쟁을 벌이던 가스프롬이 가스 공급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태를 지켜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유센코 대통령의 친서방 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경고로 믿고 있다. 이 사건이 한 겨울에 일어났음을 유념하라. 구소련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천연가스는 우크라이나의 주 난방 연료였다. 결국 가스프롬은 막판까지 가격 협상을 하다가 서유럽의 요란한 불만에 못 이겨 가스 공급을 재개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공급하던 가스를 내수로 돌려버리자 공급받던 가스에 결손이 생긴 서유럽이 큰 소리를 낸 것이다. 이제껏 러시아 정부가 해 온 모든 일이 결국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도꼭지'를 외교 정책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준비였음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러시아 정부는 '근린국가(Near Abroad)'라고 부르는 이웃 국가들을 협박하기 위해 종종 이 전술을 사용해 왔다. 2006년 7월 29일에는 트랜스네프트가 누출 위험을 이유로 리투아니아 최대 정유소인 마제이큐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했다. 마제이큐의 회장이 이 정유소를 러시아가 아닌 폴란드에 매각키로 했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였다. 이 같은 움직임을 지켜본 사람들은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 회사가 정유회사를 인수하는 데까지 힘을 쓰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11월에는 가스프롬이 그루지야에 공급하던 천연가스 가격을 1000입방미터 당 110달러에서 230달러로 두 배 이상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가격을 올릴 수 없다면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이 역시 그루지야의 친서방 정부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러시아 정부에 반항해 왔던 점이 일정 부분 감안된 정치적 압력으로 여겨졌다. 가스프롬은 12월 벨로루시에도 같은 장난을 쳤다. 주변의 헐벗은 국가들이 조금이라도 독립의사를 보이면 여지없이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러시아가 보여준 에너지파시즘의 다른 얼굴이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자원 빈국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유라시아 그룹의 자문역인 클리프 쿱샨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가 새로운 종류의 핵무기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러시아는 석유권력을 공격적이고 영리하게 사용해 자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과 함께 르네상스를 맞을 '빅 브라더'

에너지파시즘의 마지막 얼굴은 원자력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 차원의 억압과 감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가스와 석유 매장량이 줄어들수록 정부와 산업계 지도자들은 원자력 의존도를 높여 추가 에너지를 공급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높은 우려도 이 계획을 부추길 것 같다.

석유, 가스, 석탄 등을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원자력 의존도를 높여가겠다는 계획을 거듭 말해 왔고 2005년 정부가 마련한 '2005 에너지 정책법'에도 미국에서 새로이 원전을 짓는 전기 사업들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도 원자력 의존도를 높여 가려는 계획을 갖고 있고, 이는 원전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 원자력이 석유가 고갈된 자리를 메우면서 핵의 유통과 유출을 막기 위한 정부의 감시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체르노빌 사건을 기억하며 원자력 사용을 줄이자는 환경단체의 시위 모습. ⓒ로이터=뉴시스

소위 '원자력의 르네상스기'라고 말하는 길에는 몇 가지 문제가 버티고 있다. 엄청난 부대비용이나 핵 쓰레기를 장기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이 상당부분 개선됐음에도 1979년 '쓰리 마일 아일랜드' 사건이나 1986년 체르노빌 사건 같은 핵사고 위험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원자력 산업이 성장할 미래에 대해 우려되는 점 두 가지만 들어보겠다. 원전 부지의 결정권이 연방정부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과 테러리스트, 범죄자, '불량 국가' 등에 대한 핵무기 이전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인에 대한 국가권력의 억압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원자력 시설을 세우려면 (연방정부가 아닌) 시, 카운티, 주 정부 등 지방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각 지역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뒷마당에 원전이 설치되는 것을 반대할 권한을 갖는 것이다. 이는 지난 수 십 년간 미국 내 새 원자력 시설을 건설하는 데 주요한 장애물이 됐다. 법이 정한 대로 주 의회와 카운티 의회, 그리고 환경단체들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규칙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진정한 '원자력 르네상스기'를 절대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시민들의 저항이 거의 없는 가난한 촌 동네에 원자로 몇 개가 세워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허가권을 연방정부가 장악해서 지역단체를 따돌리고 연방정부 관료들에게 새 원자로를 건설할 수 있는 허가서를 발부할 수 있는 무한한 권한을 허락하는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다고? 다음 정황들을 잘 살펴보라. '2005 에너지 정책법'은 지역 관료들로부터 '천연가스 재기화(再氣化) 플랜트' 설치를 허가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아 연방정부의 권한으로 만드는 의미심장한 전례를 만들어 놓았다. 이 거대한 시설은 해외 공급자로부터 배로 수송된 액화천연가스를 미국 전역의 파이프를 통해 배달할 수 있도록 다시 가스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몇몇의 동서부 해안 지역에서는 해당 지역 항구에 이 플랜트가 세워지는 것에 반대해 왔다. 폭발할 위험이 있고(완전 억지 주장은 아니다)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저항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잃었다. 아, 지방자치여 안녕.

내 걱정은 여기서 출발한다. 미래의 정부는 '천연가스 재기화 플랜트'의 전례를 따라 원자로 설치에 관한 권한도 연방정부에 넘기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법' 수정을 추진할 것이다. 그리고선 보스턴,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덴버 등 대도시 인근에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의 원자로 신설 계획을 발표할 것이다. 추가 에너지 필요량의 긴급성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시민들은 궐기할 것이고 이들의 저항에 공감하는 지방정부는 시위대에 대한 집단 연행을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명령에 대한 반발과는 경우가 다르다. 엄연한 연방정부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고로 시위대를 제압하고 원자로 주변을 방어하기 위해 주 방위군이나 정규군이 소집될 수 있다. 에너지파시즘의 발동이다.

마지막으로 원자력 확산이 낳을 또 다른 위험은 원자력과 연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먼 관계더라도 정부의 조직적 감시 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라늄 농축시설, 원자로, 핵 폐기장 등 모든 핵 관련 시설과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테러리스트나 암시장 불법거래상인, 그리고 이란과 북한 같은 '불량국가'의 손에서는 핵 무기화 될 수 있는 소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물론 이 같은 시설에 종사하고 있는 개인과 하청업자, 그리고 재하청업자와 그들의 가족들까지 항시적으로 불법 가능성을 조사받을 수 있으며 24시간 엄격한 감시 하에 처하게 된다는 얘기다. 더 많은 원자로와 더 많은 핵 시설이 생길수록 일종의 감시 대상이 될 관여자들의 수도 늘어나고, 이들을 감시하는 보안 관계자들 역시 정부 정보국 차원의 더 높은 단계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매우 광범위한 '빅 브라더' 공식이다.

그런가 하면 '증식형 원자로'에 대한 문제도 있다. 증식형 원자로는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핵분물질들을 만들어 낸다. 플루토늄의 형태로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플루토늄은 원자로에서 태우면 전기를 생산해 내기도 하지만 핵무기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비록 미국에서는 증식형 원자로의 건설이 금지돼 있지만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화석 연료와 그 역시 한정 자원인 천연 우라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건설 중에 있다. 원자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나라들이 증식형 원자로를 짓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여기엔 미국도 포함될 수 있다. 이는 폭탄에 가까운 플루토늄의 세계적 공급을 광범위하게 증가시킬 것이고 모든 면에서 원자력 산업에 대한 정부의 더 강한 감시를 요구할 것이다.

지각있는 시민의 힘으로 에너지 파시즘의 도래 막아야

2회에 걸쳐 논의된 모든 현상- 석유보호 서비스로 미군의 주요 업무 전환, 군비 경쟁에 비견할 만한 강대국간 에너지 확보 경쟁의 격화, 러시아의 에너지 초강대국 부상, 원자력 산업에 관한 감시감독 필요성의 증가-은 모두 에너지의 생산, 획득, 이전, 분배 등에 관한 통제력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경향성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이는 전 세계적 자원 고갈의 대가인 동시에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에너지 생산의 거점이 이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 같은 흐름은 얼마 전부터 진행돼 온 것이긴 하지만 앞으로 몇 년간 더 큰 모멘텀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아폴로 얼라이언스, 로키 마운틴 인스티튜트, 월드워치 인스티튜트 등 많은 지각있는 시민들과 단체들이 에너지 고갈과 에너지 생산지의 불안정성, 그리고 지구온난화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해법을 개발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정부 지도자들은 이 문제들의 초점을 정부 통제력을 증가시키거나 군사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데 두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만약 이러한 경향을 막지 못한다면 에너지 파시즘은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번역=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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