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드 사이피 팔레스타인 국민선도당(PNI) 부총재는 29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자기 고집대로만 밀어붙였을 때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은 주민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29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중동학회 국제학술대회에 팔레스타인 대표로 참석한 사이피 부총재는 "하마스는 올 1월 총선 전까지만 해도 힘있는 야당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덜컥 다수당이 되어 정부를 주도할 준비가 안 됐던 게 사실"이라며 "정부를 구성할 때에도 경험이 없었고 유연한 태도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총선 이후 하마스 주도로 정부를 구성하면서도 다른 정당에 협력을 요청하기보다 자신들에게 들어오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협력을 꺼리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하마스는 지난 3월 내각을 구성하면서 무장투쟁 시절의 '고집'을 꺾지 않은 채 내외적으로 비타협적인 태도만을 견지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일부 받고 있다.
사이피 부총재는 "그러나 하마스도 시간이 지나면서 팔레스타인이 혼자 사는 나라가 아니라 국제적인 역학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며 "최근 나오고 있는 연립정부 구성 논의도 하마스의 그같은 현실인식에 따른 것으로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구 집권세력인 파타당과 전투까지 벌였던 하마스는 10월 11일 총격전을 중지하기로 합의하고, 그에 앞선 9월 11일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과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가 잠정 합의한 연립정부 구성안을 논의중이다.
연립정부는 하마스 주도의 내각을 해산하고 파타당 등 여러 정치세력이 함께 참여해 수립하는 거국내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마스와 파타로 대표되는 양측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는 문제, 폭력에 대한 입장,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맺은 과거의 각종 협정을 인정하는 문제 등 3가지 핵심 쟁점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파우지 바르훔 하마스 대변인은 지난 14일에도 "연립정부가 구성되더라도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어떠한 정부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사이피 부총재도 "그것은 하마스의 존재와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이피 부총재는 "연립정부 구성 과정에서 하마스의 목소리만 관철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내부의 여러 목소리가 담길 수 있다고 기대섞인 전망을 내놨다.
"팔레스타인, 역사적 전환점에 있다"
그는 '하마스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칼레드 마샤알은 3차 인티파다(민중봉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등 비타협적인 태도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지적에 "그건 이스라엘 총리가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수준의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으로 떠나기 전 연립정부 협상이 이미 85%이상 끝났다는 '굿 뉴스'를 들었다"며 "내무장관, 외무장관, 재무장관을 어느 당에서 맡느냐는 논쟁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무장관은 양보할 수 있어도 외교장관은 마무드 자하르 현장관의 유임을 원하고 내무장관 자리도 원하고 있는 게 연립정부 구성 합의 이후 견지된 하마스의 변함없는 입장인 점을 감안할 때 사이피 부총재의 기대는 '희망사항'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사이피 부총재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리더십 부족으로 내부 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팔레스타인은 지난 50년간 사실상 파타당 1당 체제였다"며 "총선 패배로 정치적 입지는 약화됐지만 오랜 집권으로 뿌리가 깊어 쉽게 고쳐지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법과 민주주의를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고 이런 변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라며 "이런 현상은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공격과 관련해 그는 "이스라엘의 공습에는 이유가 없다"며 "하마스 때문이라고 하지만 경제봉쇄나 보안장벽 설치, 토지 압류, 장관·의원 납치, 민간인 살상은 하마스가 없었을 때도 늘 하는 짓이었다"고 비난했다.
한국군의 레바논 평화유지군 파병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그러나 국경 수비 정도를 넘어 정치적인 사안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우려의 눈빛을 보냈다.
1993년 역사적인 오슬로협정이 와해되는 것을 수수방관한 파타당의 무능과 실정에 환멸을 느낀 이들을 주축으로 2002년 발족한 PNI는 무장단체를 갖고 있지 않은 순수 정치 조직이다.
팔레스타인 의회 부의장인 무스타파 바르구티가 총재인 PNI에는 현재 2명의 의원이 있다. 바르구티 총재는 지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 나가 19%의 지지를 받았다. 바르구티 총재는 이번 한국중동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연립정부 구성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PNI의 2인자인 사이피 부총재를 보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