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미국이 이라크 수니파 저항세력과 비밀협상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는 미국의 반전운동가 톰 헤이든이 수니파에 대한 미국의 구체적인 협상안을 24일 또 다시 전격 공개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톰 헤이든은 미국-수니파 간 비밀협상이 있었음을 공개했던 미국의 웹사이트 <허핑턴 포스트>(www.huffingtonpost.com)에 24일 게재한 '미국과 이라크 저항세력 간의 비밀 협상을 폭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 행정부에 의해 저항세력 지도자들과 비밀협상을 하도록 지시받은 익명의 한 관계자로부터 지난 13일과 16일 작성된 문건을 입수해 폭로했다.
이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중간선거 패배 이후 나오고 있는 단계적 철군론, 이란 및 시리아와의 외교적 협상론 등을 거부한 채 장기 주둔을 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과거 사담 후세인 세력이었던 수니파를 몰아내고 시아파 정권을 세운 미국은 수니파들의 끝없는 저항으로 최근 매달 100여 명 가량의 미군을 이라크에서 잃고 있다. 또 이라크에 세운 시아파 정권은 미국이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에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이란의 시아파 정권과 가까워 현 상태로 미군을 철수시킨다면 이라크전의 전과를 이란에게 고스란히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후세인 수니파와의 협상을 통해 저항세력을 누그러뜨리고 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만들려 하는 것이다.
헤이든은 작성자의 요청에 따라 문건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표현을 달리해(paraphrased) 소개한다면서도 "문건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2005년부터 수니파 민족주의자들과 무장 저항세력 지도자들에게 제안됐고 최근 들어 보다 활발해지고 있는 미국의 협상안은 다음과 같다.
* 수니파 저항조직 지도자들은 휴전을 위해 미군 고위 장성들과 즉시 만나기를 원한다. 실무자급의 만남은 이미 이뤄졌다.
* 저항세력은 이라크의 알 말리키 현 행정부가 정부를 통합할 능력이 없다고 보고 새로운 선거가 있기 전까지 과도정부를 구성하기를 원한다.
* 과거 정부군과 정보기관, 경찰기관을 이끌었고 현재는 지하 저항운동을 이끌고 있는 바트당 지도자들은 국가 기관에 다시 기용되고 복직된다.
* 이라크 다국적군 사령부(MNF-Ⅰ)의 민병대 통제 활동은 확대되어야 한다.
* 미국 주도의 이라크 다국적군 사령부(MNF-Ⅰ)는 이란과의 접경지대를 통제하기 위해 동부 지역으로 재배치될 것이다.
* 미군이 이라크에 10여년 정도 주둔하는 것을 용인하는 주둔군지위협정에 대한 협상이 즉시 이뤄져야 한다. 병력 감축과 재배치는 시간을 두고 이뤄질 것이다.
* 사면 및 포로석방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은 고문시설에 갇히거나 시아파에 의해 수감된 죄수들에 대한 고문을 중단할 것을 보장해야 한다.
* 폴 브레머 전 이라크 최고행정관이 내린 바트당원 축출 포고령에 대한 무효화 선언을 하고, 과거 바트당원이었던 사람들이 군대나 직업에 복귀하도록 허용한다.
* 이라크 재건에 투자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계속 지켜져야 하고 새로이 들어설 이라크 정부는 미국의 기업들이 이라크 재건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 해외에 진 전쟁 부채를 탕감한다.
진퇴양난에 빠진 말리키 이라크 총리
이같은 내용을 폭로한 헤이든은 "시아파가 이라크 권력을 잡은 상황에서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이라크가 이란에게 넘어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며 "수니파가 주도하는 저항공격이 3년 이상 이어지자 미군의 희생을 줄이는 길은 협상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헤이든은 이어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다음 주 요르단 암만에서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만나고, 체니 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을 급히 방문하는 사실을 거론하며 위의 협상안에 대한 고위급 차원의 논의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미 성향의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는 말리키 총리가 수니파를 정부에 포함시키고 타협하자는 부시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며 회담을 연기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미국의 지원으로 총리가 된 말리키는 같은 시아파로 내각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사드르 세력을 무시하지도 못하면서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도 거부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이라크에서의 비밀 외교
이에 앞서 헤이든은 22일 영국과 요르단에 거주하고 있는 신뢰할만한 이라크 소식통을 인용해 "이라크에서 탈출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관한 비밀 이야기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면서 5가지 주요 사건을 전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첫 번째 사건은 이라크연구그룹을 이끄는 제임스 베이커가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사담 후세인 변호사 중 한 명을 만나 나눈 협의로, 후세인 시절 부총리였던 타리크 아지즈가 올해 말 석방되어 바트당 지도부를 대표해 미국과 협상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은 라이스 장관이 지난 10월 걸프협력회의에 미국과 수니파 저항단체들(알카에다 제외) 사이를 중재해줄 것을 요청하며 미국은 언제 어디서건 그들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달라고 했다는 것.
세 번째는 2주 전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과 이라크 저항세력의 주요인사들이 사흘에 걸쳐 '전례 없는' 비밀 회동을 가졌고 이라크 저항세력이 향후 2주 후에 협상에 복귀하기로 동의한 일.
네 번째는 11월 16일자 이메일 교신들에 의해 미국이 막후에서 이라크 저항세력 지도부와 평화협상을 맺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여기에는 말리키 총리를 쿠데타로 실권시킨다는 방안도 들어 있다.
다섯 번째는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최근 바그다드를 방문해 이라크 관료들에게 아래와 같은 6개 항의 메시지를 전달한 일이다.
- 이라크 국가통합 방안에 이라크 저항세력과 야권 지도자들을 포함시킨다.
- 무장 저항세력 조직원들에 대해 일괄 사면을 실시한다.
- 바트당 해체 임무를 수행하는 이라크 위원회를 해산한다.
- 무장조직과 자살특공대들을 해체시키는 작업을 시작한다.
- 이라크를 3개 지역으로 분할하는 방안을 철회한다.
- 자원이 부족한 수니파 지역들을 포함해 모든 이라크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석유 수입을 배분한다.
"시리아·이란과의 협상 가능성은 낮아"
헤이든은 24일자 기사에서 "내가 22일 공개한 증거들은 수니파 저항세력과 미국 하원의원인 짐 맥더모트가 요르단의 전 외교관의 주선으로 암만에서 만나면서 증명됐다"며 나아가 앞서 공개한 협상안들은 미국-수니파 비밀협상의 보다 분명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무자급의 접촉은 과거에 이미 상부로 보고 됐다"며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 이라크에서 발을 빼고 미군 희생자를 줄여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요구를 확인하면서 이같은 협상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미 국방부나 최근 부상한 '현실주의자들'은 미군을 빠른 시일에 철수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그 대신 그들은 미군의 희생을 줄이고, 이란으로부터 들어오는 영향력을 견제하며, 미군을 영구 기지에 재배치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주둔군지위협정은 독일과 일본 사례를 모델로 작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존 도이치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같이 더 현실주의적인 사람들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지 않는 대신 이란이 이라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외교적인 약속을 하고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게 채택될 것 같지는 않다"며 이란 및 시리아와의 협상 가능성을 낮게 봤다.
미국의 시사주간 <네이션>은 헤이든의 이같은 기사가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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