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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카우보이' 우정을 과시하다

탁신은 파병-FTA 강행한 '신자유주의 사도'

국왕이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고 축출당한 탁신 총리는 영국행을 택함으로써 지난 19일 밤늦게 발발했던 태국의 군부 쿠데타는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탁신 측근을 숙정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등의 정치권 작업이 남아 있긴 하지만 민간 생활과 경제는 생각보다 빨리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태국의 빠른 회복세에 '세계 경찰' 미국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쿠데타 직후부터 군부의 정권 장악에 마뜩찮은 심경을 드러냈던 미국은 급기야 태국에 대한 원조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쿠데타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며 쿠데타 자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묵인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추동하기도 했던 쿠데타를 두고 유독 태국에 대해서만 불만을 드러내는 이면에서는 탁신이라는 지독한 친미주의자에 대한 향수가 묻어난다.

쿠데타 정부와는 원조도, FTA도 중단한다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22일 "우리는 선출된 민간 지도부를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나라와 관련된 각종 법규를 감안해 태국에 대한 원조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는 "태국군의 움직임은 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며 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매우 슬픈 사태"라며 예의 민주주의를 앞세웠다.

미국 정부가 외국원조법에 따라 2006년 한 해 동안 태국에 상호 원조키로 한 금액은 1400만 달러 가량이다. 실제로 원조중단을 감행한다면 여기에 군사원조 400만 달러가 추가될 전망이다.

원조뿐만이 아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그는 특히 "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태국의 민주질서 회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밝혀 미-태국간의 FTA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쿠데타 세력과는 협상과 교섭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음으로써 군부가 옹립해 낼 새 정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라지만…남미 쿠데타는 지원하기도

쿠데타는 '민주주의의 적(敵)'으로 불린다. 이에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는 미국 정부가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반대하지 않은 쿠데타의 기억을 들춰보면 태국 쿠데타 세력에 으름장을 놓는 미국의 대의명분은 일거에 어그러지고 만다.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릴 필요도 없이 1961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를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했다.

1973년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칠레의 육군장성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부추겨 좌파 사회주의 인민연합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렸다.

2002년 실패로 끝난 베네수엘라 쿠데타에도 미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차베스 정권을 전복하려 한 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쿠데타 세력을 반대하기는커녕 이해관계에 따라 쿠데타를 추동하기까지 했던 미국이기에 태국 쿠데타를 두고는 유독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내막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탁신 태국 총리는 "부시와 나는 둘 다 텍사스 카우보이"라며 부시 미 대통령과의 친분을 자랑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탁신, 착실한 '신자유주의의 수행자'

해답은 탁신 총리가 축출된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탁신 총리가 국민의 원성을 사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부패와 권력 남용이었다. 지난 4월 탁신 일가가 소유한 '친 그룹'의 지주회사 '친 코퍼레이션'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19억 달러 어치의 주식을 팔아 이익을 남겼으면서도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최대 10만 군중이 거리로 나서 '반(反)탁신' 시위를 벌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 바닥에는 탁신 정부의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었다. 탁신 총리가 의료서비스를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고 부채를 3년간 동결하는 등 농민· 빈민에 대한 인기영합주의적 정책을 펴는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양극화와 고용 불안이 심화된 것이다.

탁신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밀어붙이기는 미국과의 FTA 체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점에 이른다. 2003년 부시 대통령을 만난 탁신 총리는 '태-미 FTA'을 체결하기로 합의했으나 이는 국내 여론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독단적인 결정으로 6차 협상까지 진행된 지난 1월 태국 상원 외교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 이뤄진 FTA 협상 내용이 상원의 검토를 거친 적이 없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맹목적이라 할 만큼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모범적으로' 수행해 오던 탁신이 바로 그 이유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 사건이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인 미국으로서 달가울 리 없는 것이다.

부시와의 정상회담 기간은 공휴일로 만들기도

게다가 쿠데타로 집권할 새 지도부가 탁신만큼 친미주의자일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2001년 집권 이후 부시 행정부와 줄곧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탁신은 국내 여론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는 솔선수범을 보였고, 이에 부시 행정부도 태국을 '준(準)나토 동맹국'으로 격상시킴으로써 화답했다. 전체 인구의 5% 가량이 이슬람교도임에도 2003년에는 알카에다 동남아 지부격인 제마 이슬라미야의 핵심 테러리스트 함발리를 국내에서 체포해 미국에 인계하기도 했다.

부시 미 대통령을 향한 탁신 총리의 애정공세도 눈물겨웠다. 태국에서 태-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2003년 10월, 탁신 총리는 반미 시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정상회담 기간을 아예 공휴일로 지정하는 '정성'을 보였다.

이 밖에도 탁신 총리는 2004년 주태 미국상공회의소 초청 연설에서는 자신이 텍사스의 휴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점을 강조하면서 "부시와 나는 둘 다 텍사스 카우보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반탁신 여론이 가열됐던 지난 7월에는 "비민주적인 힘을 지닌 자가 나를 전복하려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들의 '구미에 딱 맞던' 탁신이었기에, 그를 몰아낸 새 정부를 인정치 않겠다는 미국의 으름장은 '정 들었던' 탁신에 대한 작별 인사인 동시에 새 정부에 대한 군기잡기 성격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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