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로 19일 하루 밤새 권력을 잃은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 그는 손티 분야랏글린 육군 총사령관 세력이 비상계엄령과 헌법 효력중지를 선언하는 등 전권을 점령했던 긴박한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TV로 실권 소식 알아…이제는 그마저 끊겨"
<AFP> 통신은 국내 현지의 상황을 까맣게 모른 채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머물고 있던 탁신 총리의 상황을 "뉴욕의 호화로운 '연옥'에 기거하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탁신 총리의 '연옥'은 맨해튼 번화가 한 가운데에 1400개 객실을 갖춘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뒤바꾼 '현지'와는 시차차가 11시간이나 나는 그 곳에서 탁신 총리는 자신의 몰락을 TV를 통해 '관전'했다.
쿠데타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뉴스 채널들은 부시 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중개하던 화면 아래에 속보창을 띄우고 험비(전투차량)와 무장한 군인들이 태국의 수도를 점령한 장면을 내 보냈고, 연설 중계를 보고 있던 탁신 총리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밀어낸 '정치적 해일'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태국의 한 관리는 "그는 호텔 방에서 조용히 부시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지켜봤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 이후 탁신 총리는 호텔 스위트 룸 TV의 위성 채널로 태국 현지 방송을 청취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이 현지 방송사를 장악했고 탁신 총리가 현지 상황을 파악할 마지막 수단도 끊겼다.
뉴욕을 떠난다지만…방콕에 내릴 수 있을까?
이틀 전만 해도 '세계의 권력자들'과 국제 정세를 논할 계획으로 뉴욕을 찾은 탁신 총리였지만 이제는 '오도가도 못할 신세가 돼' 하얏트 호텔에서도 쫒겨날 판이 됐다.
이미 유엔 내 태국 공관과 주미 태국 대사관은 "탁신은 지옥으로 가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단에 둘러싸여 있고 이들이 언제 탁신이 머물고 있는 호텔 앞으로 밀어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탁신 총리 측은 일단 20일 예정돼 있던 유엔 총회 연설을 취소해 둔 상태지만 뉴욕을 떠날지, 떠난다면 태국으로 향할지 등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한 태국 외교관은 "탁신 총리가 떠날 수는 있다. 그러나 방콕에 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정확한 현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쿠데타 세력들이 국내 통신선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태국 최대 통신기업 소유주인 탁신 총리가 집에 전화 한 통 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특히 탁신 총리 측은 국내에서 정치변동이 있을 때마다 중심을 잡아 왔던 푸미폰 국왕의 입장을 파악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푸미폰 국왕이 쿠데타 세력을 인정치 않을 경우 탁신 총리에게도 복권의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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