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혈 쿠데타로 탁신 치나왓 총리를 몰아낸 태국 군부가 탁신 지지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정작업에 들어갔다. 태국은 지난 70년 동안 20여 번의 쿠데타를 이미 경험한데다가 이번에 국왕까지 쿠데타 세력을 승인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발 빠른 안정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이나, 정치권을 비롯한 권력 중심부에서는 한동안 정권 전복으로 인한 몸살을 앓을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 장악한 쿠데타 세력, 정권 개편 작업 착수
쿠데타 주역인 손티 분야랏글린 육군 총사령관이 이끄는 '민주개혁평의회'는 21일 뉴인 치드촙 농업부 차관과 융윳 티야파이랏 정부 대변인 등 탁신 총리의 측근 인사들을 심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쿠데타 직후 체포된 치차이 와나사팃야 제1부총리와 프롬민 럿수리뎃 에너지 장관 등 다른 측근들도 구금된 상태다. 현지 신문인 <방콕포스트>는 정치인과 경제인을 포함해 숙정 대상자가 10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쿠데타 주역들과 이에 협조한 세력에 대한 포상도 이어질 전망이다. 손티 총사령관은 일단 국왕의 승인 없이 추진할 수 있는 군부개편부터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편이 완료될 때까지 태국은 '비상상황'이다. 평의회는 "정당의 회합과 창당은 물론 어떤 형태의 정치활동도 금한다"고 밝혔다. 5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는 불허하며, 이를 어기면 6개월 이상의 징역에 1만 바트(약 25만원)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다.
쿠데타 세력에 의해 장악된 언론 역시 통제를 면하기 어렵다. 평의회는 "국가화합을 위해 모든 언론이 '솔직하고 건설적인' 보도로 평의회에 협조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런던으로 간 탁신 "응당한 휴식 뒤 태국 위한 자선사업 계획"
유엔 총회 참석 차 미국에 머물던 중 권좌에서 밀려난 탁신 총리는 쿠데타 이튿날인 20일 미국을 떠나 맏딸이 유학 중인 런던으로 향했다.
얼마 전 구입해 둔 런던의 부촌 첼시에 있는 호화주택에서 하루를 머문 탁신 총리는 21일 성명을 발표해 "새로운 정권이 조속히 총선을 준비하고 국민을 위해 민주주의의 원칙을 유지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탁신 총리는 또 '응당한 휴식(deserved rest)'을 취한 뒤 태국의 발전을 위한 자선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날 런던 행 비행기에서 "나라를 위해 봉사할 생각이 있지만 그들(쿠데타 세력)이 원하지 않는다면 나서지는 않겠다"고 말해둔 바 있어 망명정부를 세우는 등의 적극적인 정치행보에는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태국에 있던 부인과 나머지 가족들도 19일 태국을 떠났고,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측근 칸타티 수파몽콘 외무장관도 런던으로 합류할 것으로 알려져 탁신 총리 세력의 '정치난민' 생활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WP "쿠데타가 부패-갈등 악화시킬 것"
한편, 쿠데타 발생 직후부터 군부의 정권 장악에 못마땅한 심경을 드러내던 미국은 태국에 대한 원조를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FP> 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우리는 선출된 민간 지도부를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나라와 관련된 각종 법규를 감안해 태국에 대한 원조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는 "우리는 이미 태국 군의 움직임이 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며 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매우 슬픈 사태라는 점을 성명에서 분명히 밝혔다"며 이렇게 말했다.
21일자 <워싱턴포스트>도 사설을 통해 "미 행정부는 쿠데타의 경우 군사원조를 중단하도록 한 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태국 군부가 부패와 정치갈등 종식을 쿠데타 이유로 내세운 데 대해서도 "이 규탄 받아야 할 행위는 그 두 가지 모두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반박하고 "태국 육군은 지난 15년 간 (정치)개입이 나라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치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듯했으나 이제 다시 그 교훈을 배워야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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