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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우려하고 있다"

<분석>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미국의 시간벌기 전략

지난 1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북핵문제에 대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한국 정부와 대다수 북한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며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구체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과연 이번 합의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이와 관련, 이번 합의는 한국 정부의 요구라기보다는 미국의 필요에 의해 도출된 것이며, 부시 행정부의 목표는 북한을 6자회담의 틀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추가 미사일 발사, 나아가 핵실험 등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만일 북한이 오는 11월초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핵실험과 같은 극단적 행동을 취할 경우, 그동안 '핵확산금지'를 대북한정책의 공식목표로 천명해 온 부시 행정부로서는 중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이 제안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은 과거의 미사일 발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파장을 국제사회에 몰고 올 것이며, 북한에 대한 제재 역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라는 점에서 북한으로서도 쉽사리 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다각도로 점검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진보운동연구소 박경순 상임연구원의 분석을 소개한다. <편집자>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 실체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구체적 내용이 없으니 알맹이 빠진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 '표현상의 양보를 통해 문제를 봉합한 것이지 합의한 게 아니다', '포괄적이라는 말에 이견을 숨길 수도 있기 때문에 특별한 정책변화라고 볼 수는 없다'라는 비판적 평가에서부터 '제재국면에서 외교적 협상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일단 시간벌기에 성공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는 긍정적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내재되어 있는 미국의 숨은 의도를 놓치고 있는 듯하다.

소위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미국의 작품

정부당국자들에 따르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갑자기 돌출된 것이 아니라 수 개월 전부터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이니셔티브에 의해 물밑에서 꾸준히 협의되어 왔던 것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공식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주도적, 적극적 역할을 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어떤 생산적 결과를 도출하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의 강경제재 흐름을 일단 돌려세우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만으로도 한국정부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소위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한국의 설득에 미국이 호응한 것일까? 그것이 혹시 미국의 필요에 따라 조작된 미국의 작품은 아닐까?

이에 대한 해답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중국방문에서 찾을 수 있다. 백악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6자회담 참가를 전제로 중국에서 북미간 비공식 협상을 갖자'고 제안했으며, 힐 차관보의 중국방문은 이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한국정부 당국자의 공식 발언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힐은 중국에서 5박6일 동안 머물면서 북한의 김계관 6자회담 수석대표를 기다렸다고 한다. 미국에게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북미대화와 협상이 절박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힐은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한 채 서울로 올 수밖에 없었다.
▲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왼쪽)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오른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힐의 중국방문과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그 발상과 접근방법에서 완전히 일치한다. 즉 제재를 중단하지 않은 채 6자회담 틀 내에서 북미협상을 하자는 것으로, 이 틀 내에서 최대한 유연성을 보임으로써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을 복구하자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6자회담 틀 내로 끌어들이려는 것은 북핵문제의 해결보다는 북한의 추가 미사일 발사, 나아가 핵실험 등 벼랑끝 전술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즉 북핵문제가 통제불능의 위기 상태로 고조되는 것을 관리하고 지연시키는 데 정책의 주안점이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이는 '핵확산금지'라는 부시행정부의 공식적 정책목표의 파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미국으로서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과 같은 접근법이 절박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만드는 요인은 또 있다. 정부당국자 말대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수개월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 측이 적극적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진척이 없었던 차에 이 달 초 미국 측의 필요에 따라 갑자기 한미정상회담 중심의제로 부상되게 되었다.

미국은 힐 차관보를 중국으로 급거 파견하여 북측 대표와 회담성사를 추진하는 한편,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 중이던 송민순 안보수석을 워싱턴으로 불러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협의하였고, 정상회담 직전 2+2협의( 한국 송민순 안보수석, 반기문 외무장관, 미국 측 해들리 백악관 안보수석, 라이스 국무장관)에서 정상회담 의제로 확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검토해 보면 그 발상이 어디로부터 나왔든 한미정상회담에서 중심의제로 부각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은 한국 측의 요구가 아니라 미국 측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 앞둔 부시행정부, 북한의 추가행동에 깊은 우려

그렇다면 미국은 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필요하였는가?

그것은 북핵문제를 다루는 미국 측의 딜레마에서 기인한다. 겉으로 보면 북한의 7.5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미국의 입장은 강화된 것처럼 보인다. 중국이 유엔안보리 대북결의문 통과에 찬성함으로써 미국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한국정부는 쌀·비료 지원을 중단하여 대북제재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국내외 언론들은 북한의 7.5 미사일 발사에 대해 북측의 요구인 대북금융제재 해제를 유도하지 못한 채 대북 강경대응만을 초래했기 때문에 정치적 목표달성에 실패했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실상은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나름대로 진퇴양난의 궁지에 빠져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실효성 있는 대북제재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한·중 양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오히려 제재강화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한 조건에서 미·일 양국의 대북제재는 근본적 한계가 있고, 금융제재조차도 겉으로 선전하는 것과는 달리 북의 양보와 후퇴를 강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제재강화가 북핵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며, 그렇다고 다른 수단도 없었다. 이러한 미국의 약점을 알고 있는 북한이 제2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 추가적인 물리적 행동에 돌입하게 된다면 부시 행정부로서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부시 행정부의 대북압박정책이 오히려 북한의 핵능력을 강화시켰다는 점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대응 실패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며, 무능과 무정책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가뜩이나 궁지에 몰려 있는 11월 중간선거에 중요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8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초청 미·일·중·러 4개국 주한대사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한다는 확실한 의사를 표현한다면 6자회담 이전이라도 북미 양자회담을 열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히면서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는다"며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또 다른 행동을 취한다면 상황이 악화될 텐데…"라면서 북한의 추가행동 가능성에 경계심을 보인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중간선거를 앞둔 부시 행정부로서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 실패와 무능의 대표적 상징으로 부각될 수 있는 북한의 핵실험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대북제재 강화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시간벌기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미국은 한편으로는 제재강화를 외치면서도 뒤로는 북한을 대화와 협상으로 유도해 핵실험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인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성공할 것인가?

이처럼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철저히 미국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물위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6자회담 재개에 돌파구를 열어줄 수 있을까?

이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무엇을 담고 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미리부터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흐름에 기초해서 몇 가지 판단을 내려볼 수는 있다.

당국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 금융제재 문제 △ 북미 직접협상문제 △ 9.19공동성명 이행조치 문제들에 대해 포괄적인 협상안을 만들어서 북측에 제시하고, 북측의 동의를 받아내 6자회담을 재개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부당국자는 이에 대해 "근본취지는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내용이 핵심이며 북한과 다른 5개국이 취할 상호조치를 어떻게 연계시키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포괄적 접근방안으로 상정 가능한 것으로는 '북한이 영변의 5MW 원자로 가동을 중단할 경우 힐 차관보의 북한 방문과 중유 등 에너지 제공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6자회담 재개의 최대 난점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금융제재 해제문제인데, 이것은 "지난 3월 뉴욕에서 있었던 북미 협의에서 북한이 제기한 4대 요구사항과 미국의 요구사항을 양측이 동시에 이행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외교소식통은 말하고 있다. 또 북미 직접협상 문제는 6자회담의 틀을 넓힘으로써 북미양자의 요구를 절충할 수 있는 창조적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근본적 결함이 있다.

첫째는 과연 북미 양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협상안이란 사실 없다는 점이다. 그 어느 한편이 근본적 입장에서의 후퇴와 양보가 없는 한 성사되기 어려운 방안이다. 이와 관련 서주석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은 15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도출 시기에 대해 "6자회담이 9.19 직후 경수로 공급 논란, 금융제재 등의 문제가 나오면서 난제가 됐고, 그런 것들을 종합해서 일정한 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서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밝혔다.

서주석 수석의 말이 아니더라도 금융제재 문제, 북미직접협상 문제 등 북미 양자의 입장이 정면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양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적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7.5 미사일 발사 이전이라면 몰라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북미 양자가 보다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한 현재의 상황에서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안 도출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미국의 시간벌기 도구로 이용되고 용도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미국의 양면전략에 농락당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제기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들이 협의를 통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만들고 이를 북한에게 받아들이도록 제시하는 방식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이란 핵문제'에 대한 유럽연합의 접근방식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 당사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인센티브 방안(유인책)을 제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제적 제재에 돌입하겠다는 의도와 발상이 개입될 가능성이 많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6회담에 참가하지 않으면 나머지 다섯 나라들만 단결시켜준다'고 밝혔던 것을 상기하면 미국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된다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란 대북제재를 위한 국제적 틀을 만들어 나가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북측의 요구사항인 '미국의 선 금융제재 해제'를 내용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면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북한의 선 6자회담 참가'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6자회담 재개에 부정적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국제적 대북 압박틀을 형성하려고 하는 부시행정부에 역이용당할 위험성이 매우 농후하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 어떤 하나의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미국 대북정책의 근본(대북제재 입장)이 바뀌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볼 때,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자칫 부시행정부의 시간벌기와 국제적 대북제제망 형성에 악용될 위험이 매우 높다는 점이 지적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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