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위는 비전향장기수 63명의 1차 송환(2000. 9. 2) 6주년 성명을 통해 "2001년 2차 송환을 신청하고 북녘 고향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는 30여 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있다"면서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아무 조건 없이 실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이어 "비전향장기수가 2차 송환을 신청한 것은 6.15 공동선언 합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며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상호주의와 연관해 추진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왜 '비전향'인가?
북녘 고향으로의 송환을 바라는 30여 명의 비전향장기수는 실은 투옥 중에 전향서를 쓰고 나온 '전향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를 '비전향장기수'로 규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은 당국의 가혹한 고문과 폭력을 못 이겨 전향서를 제출했을 뿐 실제로는 전향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주장은 국가인권위원회나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상전향제도에 위헌성이 있었고 전향과정에서 잔혹한 고문이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위법성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뒷받침되기에 이르렀다.
담당 부처인 통일부 역시 '비전향장기수는 2000년에 다 보내고 없다'는 것을 공식 입장으로 취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 북송을 원하는 비전향장기수들의 존재를 굳이 부인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9월 22일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북송 용의를 묻는 질문(신기남·박성범 의원)에 비전향장기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신언상 통일부 차관 역시 지난 4월 13일 언론브리핑에서 "국군포로·납북자의 역사적 성격과 비전향장기수들의 역사적 성격이 다르다"고 말해 비전향장기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추진위는 또 송환 희망자였던 고(故) 정순택 노인의 시신을 지난해 9월 30일 판문점에서 북측 아들에게 넘겨주면서 '유해송환'이라는 용어를 쓴 것도 정부가 비전향장기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증거로 여기고 있다. 정부는 2000년 63명의 비전향장기수를 북으로 보낼 때에도 '송환' 대신 '방문'이란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와 사회분위기, 통일부의 소극성이 중첩돼
정부가 이같은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이들을 전향이냐 비전향이냐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남북이 서로 안고 있는 '인도주의적 문제'로 규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또 이들의 문제를 최근 생사확인과 상봉을 추진하고 있는 '전쟁시기 이후 행방불명자'(소위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와 연계시키지도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이는 "상호주의 원칙을 굳이 적용하지 않겠다"는 정동영 전 장관의 말에서 확인된다. 이 문제를 담당하는 통일부 관계자도 "군군포로·납북자 문제와 비전향장기수 문제는 인도주의적인 것이기 때문에 '맞교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두 문제를 연계해야 한다는 것은 비인도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의 진전이 더딘 이유는 남북관계와 남한 내 사회분위기 때문이다.
핵과 미사일 문제로 남북관계가 난맥상을 보이며 이산가족 상봉까지 중단된 상태에서 그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는 정부의 관심권 밖으로 멀어지고 있다.
납북자가족모임과 피랍탈북인권연대 등 납북자 및 가족 단체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비전향장기수 북송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정부를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이산가족 상봉도 재개하고,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도 진전을 보인다면 비전향장기수 얘기도 자연스럽게 거론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환추진위는 정부의 이같은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지난해 보였던 적극적인 태도가 사라진 점을 우려하는 한편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와 사실상 연계시키려 하지 않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추진위의 권오헌 상임대표는 "작년 정순택 선생 유해송환 때만 해도 2005년 안에 해결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뒤로 별 이유없이 잠잠해졌고, 올해 들어서는 납북자 문제가 자꾸 나오면서 북송 문제와 연계시키려는 조짐이 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또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조건 없이 보내야 한다고 했고, 통일부도 '안 보내려는 게 아니니 좀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언론과 여론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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