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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군사화, 비동맹으로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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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군사화, 비동맹으로 대응해야"

[인터뷰] 일본의 작가·평화운동가 오다 마코토

"조선은 예전부터 초강대국의 간섭을 받으며 고생해왔다. 우리는 가난한 나라다. 우리 외에도 세계에는 가난한 나라가 초강대국보다 더 많다. 신생 독립국가들은 모두 그렇다. 그런 나라들끼리 서로 돕고 이끄는 동맹이 '비동맹'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이자 세계적인 작가인 오다 마코토(小田實)는 비동맹주의자다. 그는 1976년 북한을 방문해 독대했던 김일성 주석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비동맹의 개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강대국이 아닌 나라들 간의 유무상통(有無相通)과 협력이 비동맹의 진수라는 것이다.

북한을 필두로 비동맹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나라들의 국제적 위상이 퇴조한 오늘날의 세계에서 오다가 '희망의 빛'으로 꼽은 지역은 라틴아메리카다. 자원이 많은 베네수엘라가 볼리비아 같은 가난한 나라를 돕는 모습이나, 강대국인 미국에 대항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서로 힘을 합쳐 살 길을 찾는 움직임은 바로 비동맹 이념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오다는 그러나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동북아 평화연대' 같은 구상은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과도 견줄만큼 성장한 경제·군사 강국인 중국이 있는 동아시아에서 평화연대를 실현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가능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사진 1 : 오다와 현순혜〉

***고이즈미 총리의 '폭주'와 와타나베 회장의 '훈수'**

재일조선인이자 화가인 아내 현순혜 씨의 출판기념회에 동행해 3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오다는 최근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일본 극우·보수 세력의 머릿속은 '일본은 군수산업을 가진 보통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득차 있다고 분석했다.

오다는 최근 일본 보수파의 수장(首長)인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신문 회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했던 진짜 이유는 "폭주(暴走)를 막고 보통국가로 나아가고 싶은 보수 본류의 심리"에 있다고 설명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보수파이긴 하지만 미국 의존적인 사고를 하고 국민여론을 핑계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일본식 일본'의 길을 막는 것을 일본 보수의 '본류'가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와타나베를 위시한 일본의 진짜 보수파들은 총리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것으로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도록 하는 동시에 평화헌법 9조를 수정할 명분을 쌓아 군수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 한다는 것이 오다의 분석이다.

오다는 "경제와 정치에서 군사적인 색채를 띤 구조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며 "일본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 소위 '신보수'들이 등장한 것은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의 위상이 흔들리는 배경에서였다면서, 최근 새로운 보수파가 등장하는 한국의 상황은 일본의 전후사(戰後史)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오다 마코토는 누구인가**

그 명성에 있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에 비견되는 오다는 1970년대 일본에서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주도하며 평화운동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최근 저서 〈전쟁인가 평화인가: 9월 11일 이후의 세계를 생각한다〉에서는 물론 그 전에도 미국 중심의 군사적 패권을 비판하고 비동맹 이론을 전파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최근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국 〈BBC〉방송의 라디오 드라마 '교쿠사이'의 원작자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미국의 양심' 노엄 촘스키와 교류하며 국제 평화운동의 중심에 서있다.

1970년대 한국에서 '해적판'으로 출간되어 엄청난 판매를 기록했던 〈나는 이렇게 보았다〉의 작가이기도 한 오다는 일본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모임인 '9조회'에 참여하며 헌법개정 반대 여론을 이끌고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주에 서울의 한 호텔에서 오다와 만났다. 이 인터뷰는 〈내 조국은 세계입니다〉를 펴낸 그의 아내 현순혜 씨의 통역으로 이뤄졌다.

***"한국 '신우파'의 등장은 일본 전후사의 답습"**

프레시안 : 최근 일본 우파들의 목소리가 너무 큰 듯하다. 1990년대 소위 일본 '신우파'들이 등장했던 배경은 무엇이었나.

오다 : 일본은 전후 60년 동안 경제대국의 위상을 달성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거품경제론이 부상했고 1990년대에는 (경기침체로) 경제대국에 대한 의심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일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다시 물으며 우파들의 이야기가 국민적인 시선을 끌게 됐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가 흔들릴 때 자신을 붙들어줄 무언가를 찾는다. 미국도 지금 그러한데, 대개 약한 자들에게 그 불만을 쏟아낸다. 자신이 있다면 그러지 않는다.

프레시안 : 일본이 다시 경제회복기에 접어드는 것 같다. 그런데도 우익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는 이유는.

오다 : 일본 경제는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다. 전후(戰後) 일본은 중산층을 튼튼히 하고 그 위에 풍요로움을 실현했다. 이것이 일본 경제성장의 비밀이자 진수였다. 미국은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중산층을 기르고 그 위에 파이를 키웠는데 일본도 그 과정을 답습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본은 과거와 비할 수 없이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해졌고 중산층은 붕괴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서도 볼 수 있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본 경제가 과거와 같이 회복됐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프레시안 : 1980년대 한국의 지식인들과 학생들에게 현대사에 대한 새롭고 진보적인 관점을 제시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란 책이 있다. 최근 그에 대한 비판서 격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나왔다. 또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세력도 등장했다. 이런 움직임을 두고 한국에서도 '신우파'가 생겨났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이 역시 일본과 유사하게 한국의 경제가 안 좋아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나오는 현상이라는 해석이 있다.

오다 : 한국의 현상을 보면 일본의 전후사(戰後史)를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전후 경제성장은 (군수산업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평화산업'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는데, 성장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군수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신우익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식 경제성장 과정을 답습한 한국에서도 새로운 한국식 정체성을 만드는 대신 군수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드시 나올 것 같다는 점이다. 현재 자라나는 세대가 그런 목소리에 호응한다면 10~20년 뒤에는 반드시 그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래에 한국이 일본의 현재 모습을 답습하지 않고 한국 나름의 새로운 정체성을 가질지 여부를 가르는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일본 우파 "보수 본류로 가자"**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일본 우파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오다 : 과거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 사건이었다. 당시 천황은 그 장교들을 사형시키면서 그들의 '폭주(暴走)'를 다 묻어버리고 보수 '본류'의 길을 걷자면서 군국주의의 길로 접어들었다. 쿠데타는 오히려 역설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때와 유사하게 지금 일본의 보수파들은 분란을 겪으면서도 보수 본류로 가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최근 주가조작과 분식회계로 구속된 호리에 다카후미 '라이브 도어' 사장은 당시 청년 장교들의 '폭주'를 되풀이한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고이즈미 총리 역시 어떤 의미에서 폭주를 하고 있다.

그러자 정통 보수 우익지인 〈요미우리〉신문의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은 〈아사히〉신문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오늘의 일본은 너무하다. 야스쿠니 참배는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신우익'이나 다른 우익 세력도 하지 못하는 그런 말을 보수의 수장(首長)이라고 할 수 있는 와타나베 회장이 했고, 그걸 〈아사히〉가 보도했다는 것은 〈요미우리〉와 〈아사히〉 모두 이제부터는 보수 본류가 주도하는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내 분석이다.

와타나베가 참배를 비판한 것은 야스쿠니에 A급 전범이 묻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이즈미가 한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여론을 등에 업고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있는데 와타나베는 그걸 반대하면서 얼핏 진보파가 됐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와타나베가 참배를 비난함과 동시에 평화헌법을 없애야 한다고도 주장한다는 점이다. 비밀의 열쇠는 여기에 있다. 와타나베는 신사 참배를 '폭주'로, 평화헌법 폐지를 보수 '본류'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인들이 보수 본류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 위험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정말로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그런 움직임에 대한 분명한 대안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가 득세하는 상황은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보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공화당의 차기 주자로 알려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전쟁의 빛과 그림자를 다 체험한 사람으로 미국 보수의 본류를 이끌고 있다.

세계 각국 보수주의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그동안 '폭주'를 했던 부시, 고이즈미, 호리에 같은 사람들을 '묻어버리고' 정통 보수로 가려 한다는 하나의 도식을 찾을 수 있다.

***일본 보수본류, 군사화와 군수산업 보유 지향**

프레시안 : 와타나베의 발언은 한국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면 와타나베는 고이즈미의 행동이 위험할 정도로 극단적이라고 본다는 것인가. 고이즈미 식으로 밀어붙이면 장기적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계산을 했다는 말인가. 그런 계산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보수 본류라는 말인가.

오다 : 그렇다. 고이즈미는 청년 장교들이 그랬던 것처럼 '춤을 추는 사람'으로 비친 것이다.

프레시안 : 와타나베 회장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평화헌법 개정을 원하는 논리적 연관성은 무엇인가.

오다 : 와타나베는 일본 역시 독일과 같은 '군수산업도 가진 보통의 나라'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본은 평화헌법 때문에 지난 60년 간 군수산업을 갖지 못했는데 헌법을 고쳐서 그 길로 가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차대전 후 미국이 했던 전범재판이 아니라 일본 자체에서 추진하는 전범재판 같은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독일처럼 과거청산 과정을 거친다면 군수산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스쿠니 참배는 과거청산과는 반대되는 행위여서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와타나베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무서운 이유이고, 경제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이런 와타나베의 주장이 국민적인 호응을 크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진 2: 오다〉

프레시안 : 고이즈미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나.

오다 : 고이즈미는 일본은 미국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철저히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미국의 필요성을 배제한 '일본식 일본'을 원하고 있고 그것은 일본 보수 본류의 열망이다.

와타나베는 '세계 속의 일본'이 아니라 일본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공산주의자도 좌익도 아닌, 진짜 자유주의자인 나 역시 일본 중심의 사고방식에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점은 와타나베는 그렇기 때문에 평화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렇기 때문에 평화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입구는 같지만 출구가 다르다.

최근 국제적인 상황을 보면 세계 전체가 조금씩 전쟁의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는다. 2차대전 후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인식됐던 것은 평화였지만, 그 후 60년이 지나면서 모든 국가들에 군사적 색채를 띤 경제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1970~80년대 이후 나타났는데,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에서도 군사적인 색채를 띤 구조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이 독일과 같은 보통국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국민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김일성과의 만남…'비동맹' 신념 공유**

프레시안 : 선생의 비전은 무엇인가.

오다 : 비동맹을 추구하는 세계적인 움직임이 부활하지 않는다면 온 세계 사람들이 평화를 이루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내 꿈에서 희망의 빛으로 보이는 곳은 라틴아메리카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군사적인 색채를 띤 정치·경제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유일한 지역이 그곳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비동맹의 희망을 가지고 있고 세계적인 추세를 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군사적인 측면으로 세계가 나아갈 수 있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다. 군사대국화 혹은 군사화가 하나의 길이라면, 그에 대항하는 반(反)군사화가 있을 것이고, 끝으로 정치·경제에서 군사적인 색채를 벗어버리는 비(非)군사화가 있다. 나는 반군사화가 아닌 비군사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는 더 질기고 긴 싸움이 필요하지만 더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있다. 한국의 선택은 일본의 선택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 중국을 방문했다. 모랄레스가 민주화 투쟁을 한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는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이 그를 초청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되지 못해 아쉬웠다.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 유럽이 걸어온 제국주의의 길이 아니라 제국주의로 피해받은 피식민지 신생독립국의 길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그를 초청해 '동지애' 같은 걸 나눴다면 좋았을텐데, 고이즈미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극단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한국과 중국은 고이즈미의 신사참배에 항의해 국교단절까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없다면 완전한 독립국으로서의 정체성을 과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민족적 긍지를 보여준다면 한국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적어도 '등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3: 오다 저서 사진〉

프레시안 : '비동맹'을 말하셨는데, 한국의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종종 '동아시아 평화연대' 같은 구상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너무 이상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걸 실현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늘 따라다닌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던 한국인들조차 비동맹이나 평화연대 같은 구상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오다 : 내가 말하는 비동맹은 동아시아 평화구상과는 다르다.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해법이다.

동아시아 평화연대는 중국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중국은 자원대국이면서 군사대국으로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다. 중국은 과거의 소련처럼 앞으로 미국과 견줄 수 있는 초강대국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중국이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평화연대가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는 경제대국이긴 하지만 아직은 비군사적인 나라로, 아주 불완전한 대국이다. 하지만 중국은 앞으로 미국과 견줄 만한 초강대국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봤을 때 동아시아 연대는 이상론에 불과하고, 그런 글을 읽으면 아무런 감회가 없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인재 외에는 자본도 군사력도 없는 '가난한' 나라다. 라틴아메리카의 볼리비아도 자원은 있지만 가난한 나라다. 이처럼 가난한 나라들이 서로 간의 협력을 통해 강한 국가들의 틈바구니에서 서로 돕고 서로 이끌고 나가자는 것이 비동맹의 핵심이다.

프레시안 : 비동맹이라는 용어는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 제3세계 국가들의 자주노선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지금 말하는 비동맹의 개념과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것인가.

오다 : '비동맹'이라는 개념의 핵심을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나에게 그 개념을 가장 명확하고 쉽게 설명해준 사람은 고(故) 김일성 북한 주석이었다. 내가 김 주석과 일대일로 만난 1976년은 북한이 비동맹을 선언하면서 국제적인 연대를 모색하던 시기였는데, 도대체 그게 뭐냐는 내 질문에 김 주석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예전부터 초강대국의 간섭을 받으며 고생해왔다. 우리는 가난한 나라다. 우리 외에도 세계에는 가난한 나라가 초강대국보다 더 많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벗어난 신생 독립국가들은 모두 그렇다. 그런 나라들끼리 서로 돕고 이끄는 국가동맹이 비동맹이다."

김 주석의 말은 내가 생각하는 비동맹의 개념 바로 그것이다.

***"헌법 9조의 개정에 대한 보도규제 있다"**

프레시안 : 끝으로 최대의 현안이 되고 있는 평화헌법 9조의 개정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달라. 오다 선생은 평화헌법 개정 반대운동을 하는 '9조협회'란 곳에 몸담고 있는데 이 단체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소개해 달라.

오다 : 고이즈미는 자신의 인기가 높던 시절에 평화헌법 개정을 언급했다. 그런데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일본 국민들의 여론이 조성된 데는 9조협회의 활동도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런데 9조협회의 활동은 일본의 중앙 신문들에는 잘 보도되지 않았다.

〈사진 4: 오다 사진〉

〈아사히〉와 〈마이니치〉, 〈요미우리〉 등에서는 전혀 우리의 활동을 다뤄주지 않았다. 그 문제와 관련해 내가 〈아사히〉의 논설위원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보도규제의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실제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지방 신문들은 사설과 기사를 통해 평화헌법 개정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가 오랜 세월 시민운동을 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사회는 모순이 축적되어야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국의 군사독재정권 말기에도 그렇지 않았는가. 사회 곳곳까지 민주화의 갈망이 미치자 그것이 폭발했던 것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평화헌법을 지키자는 싸움도 그렇다고 본다. '도저히 안 되겠다' 혹은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할 때 사람들은 움직이고 그에 따라 사회도, 역사도 움직인다. 일본에는 평화헌법 개정 주장에 대해 '이것은 너무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집회를 해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열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 국민들의 열기가 뜨거운 상황이니 고이즈미 총리도 잠시 주춤하고 있다. 고이즈미를 비롯한 보수파들은 여론의 열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다. 애초 계획은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국민투표가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 지금은 야당인 민주당마저 제2의 자민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커졌다. 헌법 개정을 둘러싼 일본 국론은 현재 이분화돼 있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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