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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와 브라질 노동당, 생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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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와 브라질 노동당, 생존할 수 있을까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115〉

2006년도 중남미 정치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연임 여부와 집권 좌파 노동당이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만약 룰라 대통령이 재집권에 실패한다면 현재 중남미 전역을 휩쓸고 있는 좌파지도자들의 향후 정치일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극빈서민들의 열렬한 성원을 업고 대권도전 4수만에 집권에 성공한 룰라와 브라질 노동당은 연 24%를 상회하는 고인플레 속에서도 블랙홀처럼 원자재와 곡물을 빨아들이는 중국을 경제파트너로 삼아 사상최대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등 경제면에서는 화려한 실적을 쌓았다. 그러나 룰라 행정부는 브라질 역사상 최대의 뇌물파동이라는 암초에 걸려 당과 룰라의 정치인생이 좌초될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진〉 보수우익언론들과 엘리트그룹들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는 룰라 브라질대통령이 철강노조원들과 함께 모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브라질 대통령궁

남미의 특성상 1~3월까지 정치적인 휴면기를 지나 4월부터 본격적인 대선가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각 후보진영은 벌써부터 활발한 물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집권당이라는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도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집권 노동당과 룰라는 주위에 지난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던 뛰어난 브레인과 리더가 없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수세기 동안 엘리트그룹의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브라질 정치계에서 서민 출신이자 지성이나 학문적인 배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룰라가 쟁쟁한 거물급 정치인들을 제치고 대권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뛰어난 정치감각과 학식, 영국신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상류층을 휘어잡는 세련된 사교매너와 수려한 외모를 갖춘 조제 디르세우라는 인물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지난 2002년 대선이 끝난 후 룰라의 불우했던 과거와 과격한 좌파 출신의 철강 노조지도자였다는 것 등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는 등 룰라에게만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디르세우의 역할은 그다지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룰라의 브라질판 '장자방'이라고 할 수 있는 법조인 출신 조제 디르세우는 1946년생으로 상 파울루 주 학생회장(UEE-SP)출신이다. 그는 군정시절 반정부인사로 몰려 투옥돼 혹독한 고문을 받기도 했으나 석방 후 쿠바로 망명, 그곳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79년 브라질로 돌아온 디르세우는 변호사 업무를 보면서 알게 된 좌파계 가톨릭지도자의 소개로 룰라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사진〉 룰라의 장자방 역할을 했던 조제 디르세우 전 수석장관(오른쪽)이 룰라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모습. @브라질 대통령궁.

그 후 디르세우는 제각기 다른 성향의 노조세력을 한데 묶어 노동당을 창당하고 노동당내 최고의 브레인으로 군림했다. 브라질 내에서 가장 강성노조인 철강노조를 이끌고 있었던 룰라는 디르세우의 후원으로 자연스럽게 노동당의 당수와 대권후보로 추대될 수가 있었다.

이때부터 룰라의 얼굴 마담으로 변신한 디르세우는 브라질 정계 안에서 룰라 알리기에 전력하는 한편 노동당이 수권정당으로서의 역량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디르세우는 브라질 정ㆍ재계인사들과의 안면을 넓혀 룰라에게 부정적인 엘리트 그룹을 설득했고,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군소정당들의 지지까지 이끌어내 노조 출신의 서민 룰라를 남미 최대의 경제대국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손발 묶인 룰라, 선심정책 펼지도'**

2002년 룰라의 집권으로 브라질 정부의 실세 중 실세로 부상한 디르세우는 자신의 업적을 과신해서인지 그때부터 생활이 변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기를 즐겼고 최고의 고급식당에서 값비싼 음식과 프랑스 와인을 즐기며 남미 상류층의 전형적인 파티문화에 젖어 들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그의 이런 생활은 노동당 내의 부정부패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고 급기야는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해 6월 총리격인 수석장관직을 사임, 룰라 곁을 떠났다.

브라질 국회 윤리특위는 뇌물수수에 대한 디르세우의 혐의를 인정, 국회의원직까지 박탈하고 향후 10년 동안 정치활동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해 그의 정치인생은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룰라 캠프 최고의 지성이자 노동당의 얼굴이던 디르세우의 몰락으로 룰라 재선가도에는 먹구름이 드리웠고 설상가상으로 노동당을 장악할 리더십을 가진 조제 제노이 총재마저 뇌물파동으로 룰라 곁을 떠났다. 따라서 룰라 곁에는 오는 10월 대선주자로 예상되는 조제 세하 상 파울루 시장 등 지성과 대중적인 인기를 겸비하고 나아가 확실한 지지기반까지 가진 라이벌들의 공격을 차단해줄 얼굴과 리더가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브라질 현지의 보수언론들은 그동안 룰라의 약점을 메워주었던 디르세우의 낙마를 틈타 룰라 대통령의 각종 약점들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룰라가 신문조차 읽지 않아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또한 브라질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베쟈(VEJA)〉는 최근호에서 "룰라가 독서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라고 꼬집으며 국가지도자로서 룰라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 정치평론가들은 재선 출마 선언시점을 놓고 장고에 들어간 룰라가 인기만회와 득표를 위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극빈층을 위한 선심정책이 아니겠느냐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실제로 룰라 행정부는 지난해 8월 군부가 처우문제로 실력행사를 할 조짐을 보이자 15%의 봉급인상을 단행했고 본격적인 대선레이스가 시작되는 오는 3월 25 %정도의 추가 봉급인상을 약속하여 군부의 불만을 잠재우기도 했다.

〈사진〉 '2005년 회고' 라는 제하의 브라질 시사주간지 〈베쟈〉의 최근호 표지. 브라질 집권여당 노동당의 상징인 붉은 별을 산산이 부서진 모습으로 묘사, 존폐 위기에 몰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브라질〈베자(VEJA)〉

룰라 진영은 현재 30개가 넘는 브라질 정당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른편엔 디르세우, 왼편엔 제노이를 앞세웠던 2002년 대선 당시의 인기와 지지도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한 측근들과 가족들의 뇌물수수 혐의가 확실하게 벗겨지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룰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 연정과 선심정책들이 어느 정도 약발을 받아 득표에 연결될지는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룰라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수우익언론들과 엘리트그룹들의 자질론에 대한 집요한 공격을 차단해줄 지성과 학식, 그리고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는 노동당을 이끌어줄 지도력을 두루 갖춘 제2의 디르세우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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