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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천만에! 내년 봄에 촬영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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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은퇴? 천만에! 내년 봄에 촬영 시작된다"

[뉴스메이커]임권택, 제작중단됐던 100번째 작품 〈천년학〉 재개키로

생각보다 임권택 감독은 밝은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용인에 있는 그의 아파트. 바깥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겨울바람이 임 감독의 마음 속에도 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100번째 연출작품인 〈천년학〉이 만들어지지 못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였다면 지난 주말쯤 그는 이 영화의 첫 촬영을 위해 전남 장흥으로 내려갔어야 했을 터였다.

국내 영화계를 대표하는 '국민감독'으로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왔다. 그에게 감독상을 안겨줬던 칸영화제 측에서도 '어서 빨리 만들기만 하라'며 이미 초청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천년학〉의 제작은 갑자기 중단됐다. 돈이 사단이 됐다. 투자사인 롯데시네마와 제작사인 태흥영화사 모두 제작중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임권택 감독은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마음을 비운 것일까? 임권택은 99편의 작품으로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box] *글씨 색깔도 차별화할 것
(제목) 〈천년학〉의 제작이 중단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사연은 이랬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35억원. 강우석 감독이 이끌던 시네마서비스는 이 영화의 제작비에 '풀 베팅'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네마서비스는 임 감독의 전작 두 편, 그러니까 〈취화선〉과 〈하류인생〉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 꽤 많은 손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임 감독이기 때문에' 주저없이 그의 100번째 작품에 제작비를 대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시네마서비스의 재정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근들어 다시 정상화되긴 했지만 그 당시 시네마서비스는 급격한 경영난에 직면했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강우석 감독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까지 만들었다.
바로 그때쯤이었다. 〈천년학〉의 프로듀서이자 임권택 감독과는 오랜 세월 영화적 동지로 옆을 지켜 온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이 투자 파트너를 '힘든' 시네마서비스보다는 좀더 안정적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롯데시네마로 바꾸기로 했던 것. 시네마서비스는 조금 기다려 달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사단이 났다. 시네마서비스 대신 투자를 약속했던 롯데시네마가 스타시스템(주연급으로 빅 스타를 기용해 관객을 모으려는 상업영화의 방식 -편집자)을 고집하며 갑자기 투자를 철회했기 때문. 이 과정에서 급기야 프로듀서인 이태원 사장마저 이 영화의 제작을 포기하겠다고 통보하기에 이른 것. 이 얘기들의 일부는 일간신문들에 의해 대서특필됐다.

프레시안무비 : 어떻게 된 건가?

임권택 : 아마도 당신은 내가 좌절 끝에 영화계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 왔을 것이다. 그런 예상을 깨서 좀 안된 얘기지만 〈천년학〉은 내년 봄에 촬영에 들어가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이 얘긴 바깥에다 대고 처음하는 셈이군. 그러니 사람들한테 다시 알려줘. 임권택이가 〈천년학〉을 다시 하기로 했다고?

프레시안무비 : 그러면 원래대로 제작은 태흥영화사가 맡고 투자는 롯데시네마가 맡기로 한 건가?

임권택 : 아니다. 두 쪽 모두 이미 이 영화는 포기한 상태다. 영화를 100편 가까이 만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처럼 대기업 자본의 속성을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새로운 투자자가 나섰다!**

프레시안무비 : 그러면 새로운 투자자가 나섰다는 얘긴가?

임권택 : 그렇다. 누군지는 밝힐 수 없지만 어떤 투자자들이 나섰다. 중간에 영화평론가가 역할을 했고.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기로 했고 촬영과 관련해서도 전권을 주기로 했다. 요 며칠동안 정말 엄청난 반전이 있었던 셈이다.

프레시안무비 : 그게 누구인가?

임권택 : 1월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까지 밝힐 수 없다. 그쪽과의 약속이다. 다만 중간 역할을 했던 평론가든, 새로운 투자자든 당신 같은 40대 그룹이다. 임권택이가 돈이 없어서 영화를 못하게 됐다는 사실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다. 당신도 그런가?

프레시안무비 : 물론 나도 그렇다. 상대방을 밝히지를 않으니 투자 결정이 났다는 것도 100% 신뢰하기 어렵다.

임권택 : 그건 정말 확실하다. 얘기가 완전히 끝난 상태다. 내년 봄, 늦어도 3월쯤에는 차질없이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프레시안무비 :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과는 거의 모든 영화를 같이 해 온 사이다. 이번 일로 둘 사이가 갈라졌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임권택 : 그건 절대 아니고… 태흥이 극장사업 때문에 요즘 조금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사이에는 문제가 없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이태원 씨가 이제는 영화제작에 대한 의지를 잃은 것 같다.

프레시안무비 : 태흥의 이태원 사장이? 그 전설의 제작자가?

임권택 :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태원 사장이 이제 제작에서 손을 뗐으면 하고 생각한 지 꽤 오래 됐다. 어떻게 보면 여기까지 나 때문에, 나와의 우정 때문에 우물우물 온 셈이다. 어찌 보면 이제 자유롭게 놔줘야 한다.

***내가 더 이상 흥행감독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을 것**

프레시안무비 : 롯데가 투자를 포기한 건 결국 캐스팅 문제였나?

임권택 : 그렇다고 하더라. 나도 직접 들은 건 아니다. 그런데 참 우스운 것이 내 영화는 비교적 새로운 배우들로 해서 성공한 게 많았다. 〈서편제〉의 오정해나 〈춘향뎐〉의 조승우나… 무조건 스타를 내세우기 보다는 배역에 잘 맞는 연기자를 고르는 게 내 영화는 더 맞는 일인 것 같다. 근데 그쪽에서 자꾸 스타를 얘기한다고 하니 갑갑했다. 근데 이렇게저렇게 생각해 보면 그건 핑계일 수도 있다. 〈서편제〉 이후 어디 변변한 흥행작품을 내놓은 적이 있어야지 내가. 그저 영화제에 낸다고 껍적거리고 다녔을 뿐이다. 아마도 더 이상 흥행성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쪽에서.

프레시안무비 :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지금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겠다.

임권택 : 그렇겠지. 그리고 그렇게 촬영을 서둘러야 했던 이유는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리모의 주문 때문이었다. 지난 10월 부산영화제에서 그를 만났을 때 프리모는 '기다릴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5월이 칸영화제니까 그 시간까지 작품을 대려면 적어도 4월에는 녹음, 편집에 들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촬영은 3월에 끝나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게 보통 급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이 굉장히 바빴다. 시나리오는 완성이 안됐지, 이거 또 몰아치기로 찍게 되는 거 아닌가 해서 불안불안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서 시간을 벌게 됐다. 내년 칸에는 못가게 됐지만, 오히려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만들어서 내후년 칸영화제에 출품할 생각이다. 나로서는 정말 잘된 일이다.(웃음)

***12년을 마음 속에 담아 왔던 작품**

프레시안무비 : 왜 〈천년학〉을 100번째 기념작품으로 선택했는지가 궁금했다.

임권택 : 이청준의 작품 가운데는 '남도라는 사람'이란 게 있다. 93년에 만든 이 책에는 큰 덩어리 단편 세 편이 있는데 '서편제'하고 '소리의 빛' 그리고 '선학동 나그네'다. 93년에 만든 〈서편제〉는 '서편제'와 '소리의 빛'까지만 만든 거다. 처음에는 '선학동 나그네'의 내용까지 찍으려고 했다. 근데 그땐 그걸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 작품에는 뭔가 몽환적인 분위기가 있다. 남동생이 누나를 찾아 선학동에 이르렀을 때 해가 지고 산너머 그림자로 학이 날개를 펴고 나르는 듯한 그림이 펼쳐진다. 그걸 찍을 수가 없겠더라고. 왜냐면 이건 상당부분 CG기술이 들어가야 한다. 그때는 그게 안됐다. 그래서 촬영을 포기했다. 근데 그게 12년 동안 마음속에 남더라. 그걸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해서 말이다.

프레시안무비 : 임 감독 영화에 CG가?

임권택 : 왜?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CG를 얼마나 많이 썼는데. 〈취화선〉에서 장승업이가 가마에 들어가는 장면 같은 건 결정적으로 CG가 아니면 불가능했던 것이다. 〈춘향뎐〉에서도 CG가 들어갔지. 티를 안내서 그렇지 CG를 많이 쓰는 편이다.

프레시안무비 : 〈천년학〉은 과연 어떤 작품이 될까?

임권택 : 어떤 사람들이 그러더라. 또 판소리 팔아먹는 영화냐고. 〈서편제〉의 후속 얘기나 마찬가지니 판소리가 안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작이 판소리가 축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판소리를 배경으로 하는 러브스토리가 축이다. 내가 언제 제대로 된 멜로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가. 내가 러브스토리를 찍으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도 검증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무비 : 며칠 사이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느낌이겠다.

임권택 : 전남 장흥군에는 이미 오픈세트를 두 군데나 지어 놓은 상태다. 광양시 매화마을의 세트는 광양시와 전남 도청이 3억 원을 지원해 줘서 만들었다. 진도에도 역시 군이 지원을 해서 작업에 들어간 상태고. 근데 정작 영화가 엎어지고 말았으니 내 속마음이 어땠겠는가. 내 체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세트 건설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지자체들과 그쪽 주민들이 이 영화계를 어떻게 봤겠는가. 무엇보다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했던 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돼 기쁘다. 그래. 기쁘다. 정말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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