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어요. 구청 가정복지과장이 직원 30명 데리고 임시 어린이집에 갑자기 들이닥치더니 '이제 우리가 이 곳을 접수하겠다'며 소리지르고, 구청측이 데려온 열쇠공은 현관 문고리를 아예 바꾸겠다고 달려들어 엄마들과 실랑이 벌이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고…. 완전히 아수라장이었죠."
지난 5일 강북구청의 '꿀꿀이죽 어린이집 폐쇄 및 구립 어린이집 검토, 양심교사 재고용' 결정으로 일단락된 듯했던 '꿀꿀이죽 사태'는 13일 구청과 학부모의 충돌로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이유 1 : 전 어린이집의 취사부 재채용**
갈등의 '표면적' 원인은 전 고려어린이집의 취사를 담당했던 이모씨의 재채용 문제.
학부모들은 "이모씨는 사건의 중요 증인이고 꿀꿀이죽을 끓인 장본인이지만 원장의 강요에 의한 것인만큼 그의 어려운 형편을 고려해 다시 고용할 것을 5일 요구했고 구청측은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였다"며 "그런데 지난 11일 이씨가 구 의회에서 원장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하자 구청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북구청 가정복지과 관계자는 14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강요든 자의든 어쨌든 꿀꿀이죽을 직접 끓였던 사람을 임시 어린이집에 재고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구청은 학부모들 주장처럼 이모씨를 채용하겠다는 말을 명확하게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유 2 : 강북구청 "민원 및 주민감사 취소해라" VS 학부모 "우리가 왜?"**
다른 앙금도 있다. 학부모들은 "임시 어린이집은 구청 관할이라는 측면에서는 사실상 구립 어린이집과 다를 바가 없다"며 필요 물품의 구비 등을 요구했고, 구청 측은 이를 들어주며 학부모들이 시청에 접수한 민원을 취소하고 주민감사 운동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학부모 대책위 박민선씨는 "우리가 '주민감사 추진'을 중단할 뜻이 없다고 하자 구청 관계자가 12일 임시어린이집에 찾아와 일방적으로 취사부 이모씨의 해임을 통보했다"며 "양심교사들이 이에 문제제기하자 그는 '내 돈 주면서 내가 부리는데 당신들이 왜 참견이냐. 당신들은 가서 애나 보라'는 식으로 폭언을 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강북구청 관계자 역시 "민원과 주민감사 청구 중단 문제는 우리 직원들이 구립 어린이집 설립을 위해 일할 시간을 불필요하게 감사 자료 제출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며 "학부모들은 취사부 채용건 하나 양보 못하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유 3 : 학부모 "우리도 임시어린이집 운영 주체" VS 강북구청 "이제 학부모는 빠져라"**
구청과 학부모들간의 대립은 결국 '임시 어린이집의 운영권' 문제다. 학부모대책위는 "구립이 세워질 때까지는 현 임시어린이집이 구립어린이집이나 다름없다"며 "학부모대표, 교사대표, 구의회 대표, 구청 책임자로 운영위를 구성해 지원 및 운영 문제를 정확히 하고 운영책임자를 선임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강북구청은 학부모들의 요구가 과도하다는 생각이다. 강북구청 가정복지과장은 13일 임시어린이집을 찾아 "학부모들이 구청에 운영을 책임지라고 요구하니 우리가 접수하겠다"며 "이제 학부모 대책위는 운영에서 빠지라"고 요구했다.
이에 학부모 대책위 최수정씨는 "아이들과 학부모는 구청의 관리감독 부실로 인한 피해자임에도 구청은 그간 경로당 하나 덜렁 내주고 방치해 오다 이제 비난여론이 잠잠해지니 '접수' 운운하며 본색을 드러내는 거냐"고 분노했다.
***부모라는 이유로 시련 주는 사회**
지난 5일 강북구청의 '문제 어린이집 폐쇄, 구립 어린이집 신설' 결정은 늦었지만 여론의 환영을 받았다. 비록 '꿀꿀이죽' 같은 충격적 사건이 동인이 됐더라도 지자체가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한 좋은 선례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갈등으로 공든 탑은 무너졌고, 결국 학부모대책위는 15일 수유역에서 다시 한번 항의 집회를 열기로 했다. 부모 되기가 이렇게 시련과 고난으로 가득한데 누가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싶겠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국민들이 보육과 교육 문제에 대해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이렇게 일선 지자체에서부터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가족부가 아무리 열심히 캠페인을 벌이면 뭐 하나. 지자체의 이런 태도로는 백년가도 출산율이 늘기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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