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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이죽' 양심선언 교사들 "우리같은 처지 교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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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이죽' 양심선언 교사들 "우리같은 처지 교사 많다"

학부모들, 강북구청에 "원장 처벌하고, 구립 어린이집 세워라" 요구

"물론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특별히 정의롭다기보다는 정말 일말의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저희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일명 '꿀꿀이죽 어린이집 사건'을 폭로해 원장으로부터 강제사직과 함께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4명의 교사들은 약간 피로한 기색이었음에도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이 사건의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우리는 원장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교사 생명이 끊어진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라고 현재 느끼는 압박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후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사진 1>

***꿀꿀이죽, 과다 인원 수용, 원장의 無자격증, 탈세 의혹...**

'꿀꿀이죽 사건'은 서울시 수유동의 K모 어린이집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만든 '영양죽'을 아동들에게 제공한 사실을 일부 보육교사들이 학부모에게 폭로한 사건이다.

맞벌이로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이지 못해 어린이집의 '영양죽'을 특별히 믿었던 부모들은 이 청천벽력같은 얘기에 이모 원장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했으며, 이 원장은 이에 "교사들의 자작극"이라며 교사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

이번 사건으로 모여든 학부모들은 '내 아이만 만성장염, 식중독, 피부병, 물사마귀로 고생했던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에 또 한번 피눈물을 흘려야했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학부모 대책위(cafe.daum.net/kangbuk119)가 구성됐고 민주노동당도 현장 조사에 가세, 16일 국회 기자회견을 가지기도 했다.

<사진 꿀꿀이죽><사진 공문>

꿀꿀이죽뿐만이 아니었다. K어린이집은 구청 신고 인원(81명)을 훨씬 넘어서는 1백45명의 아이들을 수용하면서 1백명이상 시설에 필요한 영양사·조리사를 고용하지 않았고, 강북구청으로부터 간식지원비와 교사의 처우개선비를 지원받았지만 단 한 차례의 관리 감독도 받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현 K모 어린이집 원장은 운영자격에 필요한 '보육교사 1급 자격증'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설립인가 서류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등재돼있었다"며 "심지어 카드결제 영수증도 다른 가맹점 이름으로 찍혀있다"며 '탈세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보육교사들이 찍소리도 못하는 구조"**

김현정(가명,24)씨는 "처음부터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아니었다"며 "다만 원감에게 계속 건의해도 '이 바닥이 그렇다. 싫으면 네가 나가라'는 답이 돌아와 아이들을 위해서는 어머니들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며 "보육교사들이 원장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4명의 교사중 올해 보육학과, 유아교육학과를 막 졸업한 3명에게 K어린이집은 첫 직장이었다.

최유나(가명,25)씨는 "교사들이 힘이 없는 상황에서 학부모가 참여하는 운영위는 물론이고 자모회같은 최소한의 통로도 없는 상황에서 몇몇 어머니들에게 개별적으로 알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구청쪽에 먼저 알리지 그랬냐는 질문에 "구청에서 어린이집을 감독한 적이 있다거나 관리 책임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어린이집 연합회 행사에 구청장이 꼬박꼬박 참가하며 친분을 나누는데 우리가 제보해도 적극적이겠나. 이번 사건에도 구청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며 불신감을 표하기도 했다.

***"강북구 2백여개의 어린이집...원장끼리의 결속력은 매우 높아"**

서울시 강북구에는 2백여개의 어린이집이 있다. 보육교사들끼리의 모임은 없나.

이진희(가명,38)씨는 "보육교사들끼리 교류를 나누는 것은 솔직히 힘들다"며 "아침 7시반에 출근해서 7시에 일과가 끝나면 거의 매일 각종 행사 준비, 공문 만들기 등의 일거리를 줘 거의 매일 10~11시에 퇴근하곤 했다. 노동시간도 시간이지만 무엇보다 일단은 원장들끼리의 단합이 정말 단단해서 교사들끼리의 교류는 거의 불가능이다"라고 잘라말했다.

이들은 "우리 사건이 터지니 유아포털등에 교사들이 줄줄이 비슷한 사례를 올리며 괴로움을 호소하지만, 정작 일터에서는 문제제기를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학부모들이 활발하게 어린이집을 감시해야 한다. 구청의 관리감독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이번 일만 해도 구청이 제대로 감시했다면 생기지 않아도 될 일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 어린이집에 맡기는 부모들이 시간을 따로 들여 어린이집 감시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

<사진 2>

***"강북구청에 '구립 어린이집' 요구할 것"**

텔레마케터 강사였지만 K어린이집에 2년 넘게 다닌 6살 아들이 폐렴에 걸리는 바람에 5월 사직서를 내야했던 박민선(33)씨는 "물론 맞벌이하는 부모가 많긴 하지만, 부모들을 위한 최소한의 의견개진 통로가 있었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K어린이집의 부모는 어린이집의 조리실은 물론 수업방해를 이유로 교실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원장실에 설치된 CCTV로만 봐야했다. 교사들은 "원장은 평소 교사들이 부모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싫어했다"고 입을 모은다.

학부모들은 현재 강북구청에 ▲관리감독 못한 구청장의 공개사과 ▲정확한 진상규명 ▲원장등에 대한 법적조치와 처벌 ▲양심선언 교사에 대한 명예훼손고소 취하 ▲원비 환불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양쪽이 고발고소하는 동안 정작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사진 3><사진 4>

현재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은 구청이 임시로 마련해준 경로당용 단독 주택에 맡겨진 상태. 일주일간의 대여비 및 임시교사 비용은 강북구청이 마련했지만 학부모들은 그 후가 걱정이다. 특히 5~6세 아이들은 다른 어린이집에서도 티오가 없는 형편이다.

박민선씨는 "학부모들은 이참에 아예 강북구청에 '구립어린이집' 확보를 요구할 생각"이라며 "강북구의 국공립어린이집 비율이 서울시 평균(14%)보다 9%로 적은 데다가 수유2동은 구립 어린이집이 아예 하나도 없다. 이게 말이 되냐"라고 분개했다.

현재 강북구청은 홈페이지 팝업창을 통해 "수사결과에 따라 적절조치하겠으며 향후 50인이상의 집단급식소에는 구민으로 구성된 어린이집 급식지킴이를 파견하고 보육시설별로 '학부모 운영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부랴부랴 밝혔지만, 학부모들은 "현재 강북구청은 부모들이 요구한 K어린이집의 최초 인가서류 공개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이제라도 지자체의 책임있는 모습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어 향후 해결이 주목된다.

<사진 5><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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