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그렇게 스스로 행동을 견제하는 힘의 작용을 느낀다, 마침 그 김두관 씨가 해남 땅 끝에서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여 야당 진영 후보자들의 면면들이 거의 모두 표면화되었다. 여당 측은 여하간 모두 짐작하는 대로고. 김두관 씨가 '평등사회'를 들고 나왔는데 그가 전부터 조소앙 씨의 삼균주의를 따른다고 말해온 점에서 짐작해온 바와 같다. 그는 아마 우리 민중들이 옛날부터 말해 오던 '대동사회'의 꿈을 말하는 것 같다. 더 확장해서 이야기하면 동학운동의 정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같다.
▲ 5일 국회 경제민주화포럼 창립식에 참석한 손학규 고문과 문재인 의원이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야당 후보 모두가 그들의 정견을 집약한 캐치·프레이즈를 내놓았다. 문재인 씨는 '상생과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 손학규 씨는 '저녁이 있는 삶', 정세균 씨는 '빚이 없는 사회' 등등이다. 그 가운데서 솔직히 말하여 '저녁이 있는 삶'이 가장 와 닿는다. 표현이 소박하고 실제적이면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참, '주홍 글자'만 없었더라면 싶다. 언론에서 '주홍 글씨'라고 써왔는데, 어느 신문 논객의 지적을 보니 '글씨'가 아니고 '글자'가 맞겠다. 글자는 말의 기호가 아닌가. 너대니얼 호손 소설의 'A' 표시도 '글씨' 아닌 '글자'여야 옳을 것 같다.
전부터 언론에서 선거기간에 빠지기 쉬운 '경마식 보도'를 나무라 왔었다. 선거는 누가 선두를 달리느냐로 결정이 되기 때문에 경마를 보도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 되기 쉽지만, 국민의 염원과 직결된 선거에서 가치 판단을 제쳐 놓아가며 선두 달리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보도하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들은 지금 거의 모두가 '경마식 보도'에 빠져 있다. 특히 안철수 교수 문제를 두고는 그렇다. 그에게는 '백지위임'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대통령 선거를 놓고서는, 특히, 누가 될 것 같으냐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도 잘못이다. 누가 될 것 같으냐도 물론 중요하다. 그것이 선거의 초점이다. 그러나 누가 되어야만 마땅하다는 가치의 문제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는 누가 될 것 같으냐보다는 누가 되어야만 하느냐는 차원에서 생각할 것이고 그래야만 올바른 선택인 것이다. 선거 전에서의 가치를 놓고서의 싸움, 정책 대결은 그 뒤의 정치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후보들이 지금의 시대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그 해결을 위해 어떠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민심을 어떻게 읽고 있으며 시대정신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민심이나 시대정신을 말함에 있어서 자칫 유식한 상층의 그것만을 보기가 쉽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헛짚을 수도 있다. 하층에 흐르는 민심을 읽어야 한다. 표면화된 의식만이 아니고 잠재의식까지도 느껴야 하는 것이다.
▲ 8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뉴시스 |
선거 관찰에 크게 참고가 될 책이 나왔다. 조지 레이코프의 <폴리티컬 마인드> 번역서(7월 7일 <한겨레> 서평)인데, "유권자들 뇌 구조의 2% 정도에 불과한 의식적 이성, 이른바 계몽적 이성의 힘" 운운은 지나치게 이성을 얕잡아 본 것 같으나 '전쟁 트라우마', '애국심 프레임' 등은 그럴듯하여 와 닿는다. 특히 우리의 상황은 지금 거대 보수언론의 종북 프레임에 끌려가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중요 외국 신문 특파원은 최근 "종북"에 관한 기고문에서 "감정적으로 흥분하여 보도하는 미디어의 모습"이라고 점잖게 비판하였다.
선거의 계절, 정치의 계절을 맞이하면 사람들은 흔히 일종의 착각에 빠지곤 한다. 선거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그러한 순진한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짜 정치는 국제정치의 틀 속에 갇혀 있다. 재벌 등 대기업의 힘에 눌려 있다. 시장의 힘이 어쩔 수 없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을 남기기도 하지 않았는가.
정권교체란 그렇게 밥 먹듯 용이하게 되는 게 아닌 것인 줄 안다. 우선 정치에는 사이클이 있는 것 같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개혁 정권 10년이 지나서 보수정권인 MB 시대가 왔다. 그 정치 사이클이 그렇게 빨리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선거철에는 집권층의 잘못이 확대되어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이치도 아울러 참고로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권교체는 '민심의 들고 일어남'이라고 부를 말한 준(準)혁명적 상황에서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MB 정권에서 민심이 떠난 것은 분명한데 국민의 분노가 과연 '봉기'라고 표현할 만한 상황인가 하는 것이다.
좀 장기적 정치 시간표를 갖고 보면 YS정권의 탄생에는 거기에 훨씬 앞서서이지만 부마사태라는 민심의 봉기가 있었고, DJ 정권의 탄생에도 역시 오래 전에 광주항쟁이란 봉기가 있었다. 그러한 맥이 흘러왔다 할 것이다. 바다의 파도만 보지 말고 지층 밑바닥의 지각변동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보수의 힘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배경은 6.25다. 그 밖에 많은 측면이 있는데 여기서 굳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요인들이 마치 휘발유처럼 자극하고 선동하기가 아주 용이하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지난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보다 오른쪽에 서서 그러한 점을 노린 정치인이 있었다는 것은 이름을 대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다행히도 그 기도는 실패였다.
그러한 배경에서 개혁세력이 그 보수세력을 단독으로는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다. 다 아는 이야기로 DJ는 JP와 연합했으며, 노무현은 정몽준과 손을 잡아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슴에 와 닿는다고 했는데, 손학규 씨가 어떻고를 떠나, 내가 느끼는 민심은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국민의 간절한 원망(願望)을, 또는 꿈을, 시대정신을 어떻게 정확하게 파악하고, 캐치·프레이즈화 하고, 정책화 하느냐는 것이다. 자유당 말기에 '못 살겠다. 갈아보자'가 적중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소박한 차원보다는 세련도가 높아야 할 줄 안다.
▲ 10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
새누리당이 김종인 박사를 또다시 두 번째로 등장시켜 '경제 민주화'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어디까지나 선의로 보아 좋은 일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김 박사의 조부 가인(街人) 김병로 옹이 민정당(民正黨 아닌 民政黨)의 대표 최고위원으로 있을 때 박정희 장군의 최고회의 측 말을 까뒤집어 생각하려는 측근들을 꾸짖던 일이 회상된다. "그들이 좋은 말을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꼭 그것을 뒤집어 생각하여 꼬집어서야 어떻게 정치가 발전하겠는가. 그들이 좋은 말을 하면 일단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나중에 만약에 그대로 안 하면 따질 것은 따질 일이고…" 대충 그런 요지였다.
새누리당이 '경제 민주화'로 선거 전에 호객(呼客)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보는 측이 있어서의 이야기다. 지난번 국회의원 공천에서 드러났듯이 김종인 박사에는 거의 전혀 힘을 실어주지 않고서….
그러나 가인(街人) 선생의 말처럼 그들의 주장들을 일단 선의로 받아들여서 생각하자. '경제민주화'는 대단히 까다로운 과제이다. 벌써부터 크게는 두 가닥의 혼선이 보인다. 이름이 높은 장하준 교수 측과 또 다른 측이 의견이 확연히 갈라져 있다. 그리고 재계가 잠자고 있을 리가 없다. 벌써부터 그 논의가 '무용' 하다는 신문 칼럼을 볼 수가 있다.
경제민주화는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과 일부 겹치고 일부는 별개이다. 그 문제에 정신이 팔려 복지국가를 위한 논의를 소홀히 해서는 절대 위험하다. 그러다 보면 호객 행위에 속아 넘어 갈 수도 있다.
복잡한 이론적 문제이기에 별별 궤변가들이 다 등장한다. 멀쩡하던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선거의 계절은 변절의 계절이기도 하다.
지금 같아선 '씨알'들의 충격이 한번 가해져야만 할 것 같다. 모두 정신들을 차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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