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미군에게 잔인한 달인가. 바그다드와 팔루자를 비롯한 이라크 곳곳에서 미군 사상자들이 마구 늘어나고 있다. 4월 6일 하룻동안 라마디에서만 12명의 미군이 죽었다. 지난 1년 동안 대미 무력저항을 주도해온 수니파뿐 아니라, 시아파 무장세력의 저항이 새로이 치열해짐에 따른 결과다. 이라크 전역이 혼전(混戰)에 빠져든 양상이다.
그러나 막상 사정을 알고 보면, 미군 사망자보다 이라크 현지인들의 사망자 숫자가 훨씬 많다. 최근 팔루자 병원에 실려온 사망자들 가운데는 어린이와 부녀자들도 있다. 그럴수록 이라크 민중들의 분노는 깊어간다. 세계적인 반전여론에 아랑곳 않고, 유엔의 결의마저 비껴가면서 1년 전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던 미 부시행정부의 무리수는 많은 이라크 인들을 슬픔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아들을 잃은 여인은 울부짖는다. "이것이 부시가 말하는 해방이고 자유인가?"
같은 시각, 멀리 미국에선 미군 전사자들의 어머니들이 울부짖는다. "왜 내 아들이 부시의 석유를 위한 전쟁에서 죽어야 했는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가족들의 슬픔은 크다. 이라크에서 몸과 마음을 다쳐 돌아온 부상자들과 그 가족들도 참담한 괴로움을 겪는 중이다. 지구촌의 반전 평화론자들은 부시 미 행정부를 향해 "당신들의 침략적 대외정책을 수행하려고 이라크 국민들을 희생시키고 미국의 젊은 병사들을 하나의 소모품처럼 쓰고 버려선 안 된다"고 목청을 높여왔다.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이 그의 책 『모든 적에 맞서서』(Against all Enemies)에서 밝혔듯, 사담 후세인은 알 카에다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부시를 둘러싸고 있는 신보수주의자(neocon)들의 시각에선, 이라크 침공은 어디까지나 '테러와의 전쟁'이다.
***"내가 여기서 왜 싸워야 하나..."**
(사진설명) 2004년 2월 말보로대학에서 반전평화운동을 주제로 강연하는 하워드 진(@말보로대학)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인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비롯, 미국은 지금껏 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스무살 안팎의 젊은 미국 병사들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전선으로 실려간다. 만난 적도 없고 다툰 적도 없는 적을 향해 총을 쏘면서, 심리적 갈등을 느낀다. "내가 왜 그들을 죽여야 하는가" "왜 여기서 싸워야 하나..." 힙합음악을 들으며 컴퓨터 모의전투(simulation) 게임을 즐기던 미국 젊은이들은 이라크 실제상황이 컴퓨터 게임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이라크 주둔 미군병사들의 긴장은 실제상황이다. 전투와 긴장이 거듭될수록, 병사들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 상처는 깊어간다.
일단 총을 들고 순찰을 돌거나 이라크 반미 게릴라들과 총격전을 벌일 때는 그런 회의감보다는 긴장감이 앞선다. 그러나 부대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면서 병사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맞는다. 낮에 민가를 뒤져 용의자들을 붙잡을 때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의 외마디가 귓가를 맴돈다. "내게도 그런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있는데..." 피 흘리며 죽어가던 같은 또래 이라크 전사(戰士)의 고통스런 눈빛이 어른거린다. 그렇게 불면의 밤을 지샌다.
이라크에서 정신질환으로 후송되는 미군 숫자가 늘어난다는 소식은 이른바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증상이 번졌던 베트남전쟁 때를 떠올린다. 정신질환 판정을 받고 후송된 미군 병사는 2003년 말까지 596명에 이르렀다. 베트남전쟁 때처럼 명분 없는 싸움에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침략군으로서 끼어든 탓에 많은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이 심리적 갈등을 느끼고 있음을 짐작케 해준다.
『미국민중사』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미 역사학자 하워드 진(보스턴대 명예교수)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침공을 비판하는 대열에 앞장서 왔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공군조종사로서 독일 군과 시민을 겨냥한 공습에 나섰던 일을 뉘우치기도 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반전성향의 월간지 <진보>(The Progressive) 4월호에 기고한 '궁극적인 배신'(The Ultimate Betrayal)이란 글에서 그는 미국이 건국 이래 벌여온 전쟁들(멕시코전쟁, 남북전쟁,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글의 요점은 "역대 전쟁에 참전했던 젊은이들이 보상과 처우를 제대로 받기는커녕 결국엔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다(아래 글은 시사월간지 <신동아> 4월호에 필자가 옮긴 글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부시의 석유전쟁에 아들 빼앗기다니..."**
지난해 12월 30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제프리 게틀먼의 사진을 나는 잊지 못하겠다. 24살 난 게틀먼은 지난해 미군 하사로 이라크전쟁에 참전했었다. 유프라테스 강둑을 경비하다가 반미 게릴라가 쏜 파편에 얼굴을 맞았다. 5주 동안 미 육군병원에 혼수상태로 누워있다 깨어났을 때 그는 장님이 됐다. 그 2주 뒤 게틀먼은 동성(Bronze Star)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훈장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를 옆에서 돌보는 아버지는 말한다. "아마도 하느님은 네가 이라크에서 사람들 죽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고 여기셨나 봐(그래서 너를 장님으로 만드셨나 봐)"
이라크 침공 미군 사망자는 지난 1월 이미 500명을 넘어섰다. 그렇지만 1명 사망에 부상은 4-5명 꼴이란 사실은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다. '중상을 입었다'는 형식적인 보도는 미 국민들에게 실감나는 공포를 심어주지도 않는다. 펠드부시 하사의 부모는 육군병원에 입원한 아들 곁에서 거의 두달 동안 병구완을 해왔다. 펠드부시의 엄마는 어느날 병원 복도를 기어가는 여자 부상병을 봤다. 두 다리가 잘려나간 채 기어가는 그녀의 뒤를 이제 겨우 세 살난 아들이 어정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조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지구 반을 돌아 이라크로 보내고 싶어 안달했다. 미군 병사들이 무시무시한 첨단무기를 지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반미 게릴라들의 기습공격에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많은 병사들이 장님이 되고 불구의 몸의 된다.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불필요한 전쟁의 위험 속에 젊은이들을 몰아넣은 것 자체가 바로 부시행정부가 우리 젊은 세대를 근본적으로 배신한 것이라 봐야하지 않을까?
부상병들의 가족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그런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루스 아이트켄은 지난해 4월 4일 육군 대위인 아들을 이라크에서 잃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이 전쟁은 석유를 위한 거야"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우린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 싸웁니다"라고 대꾸했었다. 아들은 바그다드 공항 부근에서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말한다. "그 애는 자기에게 주어진 명령에 따라 싸웠겠지만, 이번 이라크 전쟁은 미 국민과 병사들에게 선전되는 그런 전쟁이 아니다. '부시의 석유'(Bush's oil)를 위한 전쟁에서 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다"
이라크 전쟁에서 사랑하는 아들 또는 딸을 잃었거나 다친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만이 부시에게서 배신당한 것이 아니다. 이라크 국민들도 부시로부터 배신당했다. 이미 두 개의 전쟁(이란-이라크전쟁, 제1차 걸프전쟁)과 12년에 걸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참담한 고통을 겪어온 이라크 국민들에게 부시는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미군의 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펜타곤(미 국방부)은 '충격과 공포' 작전을 자랑스레 발표했지만, 어린이와 아낙네들을 포함해 약 1만 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죽었고 수천 명이 불구의 몸이 됐다.
배신의 목록을 작성하자면 참으로 길다. 부시행정부는 세계평화의 희망을 저버렸다. 5천만명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뒤 유엔(국제연합)이 들어설 때 유엔헌장은 "전쟁의 고난으로부터 우리 인류를 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 국민들은 배신당했다. 냉전과 '공산주의의 위협'이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걷어들인 세금을 국방비로 낭비할 명분이 되진 못했다. 천문학적인 국방비는 미국의 어린이들 교육비를 갉아먹었고, 몸이 아픈 사람들의 의료혜택을 줄였다. 그뿐 아니다. 노인복지, 무주택자(homeless)와 실업자들에 나갈 지원금을 삭감하도록 만들었다.
***역대 전쟁들은 배신의 역사**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에서 젊은 병사들은 배신을 당해왔다. 자유와 민주주의, 국방의무와 애국주의 같은 숭고한(grandiose) 거짓말들을 들으며 전쟁터로 이송돼갔다. 미 독립전쟁 당시 젊은이들은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겠다고 독립을 선언했던 지도자들(이른바 Founding Fathers)에게 배신당했다. 그들이 헐벗고 장화조차 신지 못하며 고생을 하는 동안, 고급장교들은 사치를 즐겼고 상인들은 전쟁특수(特需)로 현금을 챙겼다. 급기야 수천 명이 폭동을 일으켰고, 그 가운데 일부는 조지 워싱턴 장군에게 처형당했다. 독립전쟁이 끝난 뒤 서부 매사추세츠의 농민들은 농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대들었지만, 무력으로 진압 당했다. 농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독립전쟁에서 워싱턴 밑에서 죽을 고생을 치렀던 퇴역군인들이었다.
지금의 뉴멕시코 지방과 캘리포니아 지방을 강탈했던 미-멕시코 전쟁(1846-7년), 그리고 남북전쟁(1860-4년)에서는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불만을 품고 탈영했었다. 부잣집 아들들은 돈을 써서 징집에서 빠졌고, J.P. 모건 같은 금융업자들은 전선에서 전사자가 늘어날수록 돈을 벌었다. 흑인병사들은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었다. 그럼에도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은 인종차별과 빈곤이란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배신의 기록이 보인다. 혹독한 전쟁에서 몸과 마음을 다친 채 돌아온 병사들은 불경기 속에서 실업자(失業者)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마침내 미 전역에서 2만명에 이르는 참전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워싱턴으로 모여들어 포토맥 강가에 텐트를 치며 농성을 했다. 미 의회가 약속했던 수당(bonus)을 달라고 외치던 퇴역군인들은 그러나 끝내는 총격과 최루탄에 밀려났다.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도 미국 행정부로부터 배신당했다. 그들은 부도덕하고 아무런 의미 없는 전쟁에 내몰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정부로부터 잊혀지길 바라는 그런 존재가 됐음을 깨달았다. 미국은 화학제재인 고엽제(Agent Orange)를 베트남에 마구 뿌려 수십만 명에 이르는 베트남 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암을 일으켰고 기형아를 낳도록 만들었다. 많은 미군병사들도 고엽제에 직접 노출돼 후유증을 앓았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고엽제의 영향은 별 것 아니라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다.
고엽제 제조회사인 다우 케미컬(Dow Chemical)이 1억8천만 달러를 피해자 가족들에게 보상해주기로 합의한 것이 전부였다. 소송을 건 10만 피해자 가구로 나눌 경우 고작 1천달러가 조금 넘는 액수였다. 미 행정부는 베트남에다 수천억 달러를 전쟁비용으로 쏟아 부었다. 그렇지만 집 없는 참전군인이나 재향군인병원을 드나드는 부상병들, 그리고 정신적 상처로 고통 받거나 자살하는 참전군인들이 속출해도 그런 문제점들을 풀기 위한 예산은 없었다.
제1차 걸프전쟁(1991년) 때 이라크 인명피해는 1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단지 148명의 미군이 전사했을 뿐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그러면서 20만6천명의 재향군인회원들이 걸프전쟁에서 비롯된 부상과 질병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미 국민들에게 숨기려 들었다. 재향군인회에 따르면, 걸프전이 끝난 뒤 12년 사이에 8,300명이 사망했고, 16만명이 육체적 정신적 장애(disability)로 고통을 겪고 있다.
***부상병들 따돌린 부시의 '깜짝쇼'**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참전군인들에 대한 배신은 이어졌다. 미군 병사들은 '해방군'으로서 꽃다발 환영을 받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반미 게릴라들의 저항으로 날마다 병사들이 죽고 다치면서 거짓말로 드러났다. 이라크 국민들은 미군이 자국 땅에 머무르는 걸 바라지 않는다. 지난해 7월 미 신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이라크 주둔 제3보병사단 장교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잘못 보도하지 말라. 내가 아는 한 병사들의 사기는 높기는커녕 바닥이다"
이라크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실명하거나 팔다리를 잃은 병사들은 부시행정부가 참전군인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줄여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시의 올해 초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은 참전군인들에게 경의를 나타냈지만, 수천 명이 부상당해 귀국하고 있는 사실은 숨겼다. 부시행정부의 이라크침공과 혼란스런 미 점령정책에 대한 미 국민들의 지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해지고 있다(세계적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4월 5일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미 국민들의 이라크 정책 지지율은 지난 1월 중순 때보다도 19% 포인트나 하락한 40%로 나타났다-역자 주).
추수감사절 때 부시가 이라크를 기습방문하자, 미 언론들은 떠들썩하게 보도했었다. 그렇지만 독일 란트스툴의 미군병원에서 부상병들을 돌보고 있는 간호사는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보기에 부시의 추수감사절 '깜짝쇼'는 (언론보도처럼)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미 육사(West Point)를 졸업한 젊은 중위를 비롯해 19명의 부상병들을 돌보고 있었다. 중위는 마치 어린아이마냥 주먹을 눈으로 비비고 머리를 앞뒤로 흔들어대며 절망감을 나타내곤 했다. 어떤 부상병들은 시력을 잃거나 팔다리를 잘렸다. 부시의 추수감사절에서 부상병들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주 고약한 일이었다. 부상병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은 미국 신문에서 그런 얘기들을 죽었다 깨도 읽지 못할 거야"
그런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미 작가 달톤 트럼보가 펴냈던 소설 『자니는 총을 가졌다』(Johnny Got His Gun, 1939년판)가 떠올랐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실명한데다 팔다리도 잃은 상이군인이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뿐 말을 하거나 듣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는 기억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연설들을 듣고 전쟁터로 나갔다는 사실을... 그는 마침내 전보를 보낼 때 쓰는 모르스 부호를 그의 머리로 두드려대 남들과 통신을 주고받는 방법을 익힌다. 그리곤 정부 관리들에게 학교 교실로 데려다 달라고 요구한다. 아이들에게 전쟁이란 게 어떤 것이라는 걸 말해주려고...그러나 그는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다. 작가 트럼보는 이렇게 소설의 끝을 맺었다. "그들은 오로지 그를 잊고싶어 했다"(They wanted only to forget him). 이라크에서 돌아온 상이군인들도 같은 요구를 한다. 우리가 그들을 잊지 말라고...
<관련링크> http://www.progressive.org/april04/zinn0404.html
필자 이메일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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