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를 논할 때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가 민족공조냐, 한미공조냐이다.
민족공조를 통해 통일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한반도는 이미 국제사회의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있기에 민족공조만을 부르짖는 것은 설익은 주장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한미공조나 국제공조만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생존이 걸려 있는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미국 등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사진 북한 핵문제 해결방법에 대해 한미공조를 강조한 조선일보 11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흔히 보수ㆍ우익을 대변하며 친미ㆍ반북을 주장하는 신문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조선일보의 논조는 분명히 친미적이고 냉전적이다. 대북경제협력 등 남북교류와 직접 대화채널을 통해 어떻게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권을 유지해보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보다는 '北 중유지원여부 14일 결정, 美선 "즉각중단" 강력 요구'(조선일보 11일자 1면)란 제목에서 나타나듯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에 힘을 실어준다.
***2002.11.11 '北과는 교류하고 美와는 갈등하고'**
이 같은 조선일보의 입장은 11일자 사설 '北과는 교류하고 美와는 갈등하고'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한·미·일 3국이 엊그제 도쿄에서 열린 회의에서 대북 중유(重油)공급 문제에 관해 합의하지 못한 것은, 북핵(北核) 공조체제의 이상징후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위험한 일"이라며 "한·미·일 사이에 엄청난 의견차이와 내부분란이 있는 것처럼 비쳐질 경우, 북한은 이같은 상황을 역이용하려 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3국이 요구해 온 '신속한 북한의 비밀핵개발 포기'라는 목표 달성도 어렵게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6일 싱가포르를 출발한 대북중유지원 선박이 공해를 떠도는 상태가 "표류하는 대북공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같은 불신과 혼선의 큰 책임은 김대중 정부에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핵 해결과 남북경협의 병행추진'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되는 대북사업들"이란다.
조선일보는 "이래서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그리고 북핵문제의 외교적·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낮게 만들어 자칫하면 엄청난 위기로 번지게 할 수도 있다.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현정부가 이런 위험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북 교류사업을 눈 딱 감고 밀어붙이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한미간 갈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 주장대로 "북한의 핵포기를 압박하기 위해 이달분 중유공급부터 중단해야 한다는 미국측 주장이나, 예정된 중유공급을 중단할 경우 섣부른 위기에 휩싸일 수 있다는 한·일의 입장은 모두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 놓고도 조선일보는 일방적으로 미국 주장을 따르지 않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며 그 책임을 지라고 호통치는 것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북한 문제에서 손을 떼라는 것은 정부 보고 미국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식물인간이 되라는 말인가.
조선일보의 한반도 문제 해결방법이 민족공조보다는 한미공조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설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항상 반자주적ㆍ친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4.10.20. '한미관계의 새 조명'**
8년 전 북한 핵문제로 한반도에 위기감이 고조됐다 북미간 극적인 제네바합의로 긴장이 완화됐을 때 조선일보는 "이제 우리는 미국에만 의존하는 단선 외교의 한꺼풀을 벗어야 한다"며 "그것은 전통적 우호관계 또는 실리적 이해관계의 유지 속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94.10.20. 사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북미 제네바합의 체결 하루 전인 94년 10월 20일자 '한미관계의 새 조명'이란 사설에서 "이번 '미북합의'에 내포된 변화중에 우리 장래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은 한미관계의 성격변화"라며 "미국의 정책기조가 변화했다면 우리의 대처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미국이 우리나라에 군사적ㆍ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나라이지만 "미국의 변화를 맥없이 추종하고 있을 수 만은 없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번 미북 협상과정에서 우리의 결정적 실수가 있었다면 그것은 미국의 정책이 바뀌고 있다는 상황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한미공조만 외치면서 걸핏하면 외무장관의 '조르는 외교'에만 의존했던 것에 있다"고 갈파했다.
한반도 문제를 놓고 정작 주인공인 한국 정부의 주도적인 목소리가 없었음을 비판하며 "우리는 이제 자율적인 '동북아 정치권'의 형성에 발맞춰 다자간 게임을 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어제는 한국 정부의 자주성을 강조하고 오늘은 미국과의 공조과정에서 생긴 외교적 마찰을 비판하고 있다.
***1993.3.8. '핵대책은 신중히'**
조선일보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93년 3월 12일)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할 즈음 조선일보는 3월 8일자 '핵대책은 신중히'란 사설에서 "북한의 핵정책은 단순히 북한의 핵무기 개발능력의 차원에서 검토될 것이 아니라, 북한의 위기관리 정책의 문제로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남북한 관계개선의 초점은 북한의 핵문제에 있기 이전에 북한의 위기관리 정책의 수정에 있으며, 이에 따른 대남정책의 수정변화에 있다"며 "이 점에서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해 중요한 것은 북한의 기존 대남정책에 대한 지나친 유연반응 정책보다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북한의 위기관리 정책을 보다 전진적으로 수정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상은 단순히 대 북한 핵정책의 재검토 차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체제의 틀속에서 북한의 위기의식을 해소시키고, 이와 함께 동북아 경제협력의 틀속에서 북한의 경제위기를 풀어나가는 대안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새로운 길로 들어서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정책은 위기관리 정책의 문제' '대남정책의 수정변화' '한반도 평화통일' '동북아 평화체제와 경제협력' 등은 최근 조선일보가 비판하는 현 정부가 내세우는 '햇볕정책'의 골자들이다. 어제 주장한 '한미관계의 재조명' 역시 남북한이 미국 등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 주변국들에게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주도권을 뺏겨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분명한데 오늘은 미국과의 공조가 시원치 않다고 질책하고 있다.
헷갈린다. 신문이 상황에 따라 비판의 대상을 달리하고 다른 주장을 펴는 것은 민족공조를 우선하느냐, 아니면 한미공조를 우선하느냐는 뚜렷한 원칙하에서 용인된다. 각각의 주장은 그런대로 한 신문의 논조로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이나 어제는 민족공조, 오늘은 한미공조를 우선시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흔히 비판하는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동안 남북관계에 있어 정부가 바뀔 때마다 흔들려온 대북정책은 최근까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외세에만 의존시키는 결과를 잉태해온 게 사실이다. 오늘날의 남북관계가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갖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으나 그래도 남북간 직접 대화채널이 열려있다는 사실로 인해 한반도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문은 낙서장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보여주는 대미관의 변화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유화정책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으로 변화하며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대미자율론에서 한미공조 강화론으로 바뀌는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내용의 변화 역시 김영삼 정부가 김대중 정부로 바뀌며 나타난 현상이다.
조선일보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한반도의 휴전선도 그대로라는 점이다. 신문은 정부에 대한 호오의 감정에 따라 멋대로 만드는 낙서장이 아니지 않은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