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철새' 사라진 조중동 지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철새' 사라진 조중동 지면

98년 탈당은 변절, 2002년 탈당은 면죄부(?)

"생존의 '욕망과 두려움' 속에 눈앞의 양지만 찾아간다면 철새라고 부르기에도 미흡하다." "우리 정치인들을 철새라고 불렀다가는 자칫 '철새모독'이 되기 쉽다."

지난 14일 각각 민주당과 자민련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전용학 의원과 이완구 의원, 그리고 탈당시기를 저울질하는 민주당 후보단일화협의회 동조인사들의 행보를 두고 김지영 경향신문 논설위원이 15일자 '경향의 눈: 철새도 노선은 있다'며 쓴 글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 못지않게 갈지(之)자 행보를 그리며 정치상황에 따라 논조를 바꾸는 게 바로 한국 언론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정치인들의 무원칙과 해바라기 근성을 비판해야 할 언론 스스로가 대통령을 만드는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하다 보니 "내 편이 하면 로맨스요, 상대편이 하면 불륜"이라고 보도하는 게 예삿일이다.

각 신문이 추구하는 정치철학이 다르다는 것은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며 이를 통해 사회의 다원성이 보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언론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은 비판할 때는 비판하는 일관성이다. 한국 정치판이 아무리 난장판이라고 해도 언론마저 난장판이 옳다고 떠들기 시작한다면 한국 사회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말이다.

정치이념과 철학도 없이 대선후보의 당선가능성만을 좇아 한나라당에 입당한 의원들이 "이회창 후보의 집권을 통한 정치안정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세"(전용학 의원) "한나라당이 이 나라의 장래를 맡을 수 있는 책임정당"(이완구 의원)이라고 변을 늘어놓아도 명색이 한국의 주류언론이라는 신문들은 이를 비판하지 않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신경무 화백의 15일자 조선만평.>

***철새정치인들에게 면죄부 준 조선일보**

오히려 조선일보의 경우 15일자 신경무 화백의 '조선만평'을 통해 "'철새' 경력없는 사람 어디 한번 돌 던져봐!!"라고 큰 소리치며 돌 던지는 전용학, 이완구 의원의 모습을 눈치보지 않는 용기있는(?) 정치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두 의원처럼 '한나라행' 용기를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의원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돌린 채 애먼 담배만 태운다. 민주당 후단협 의원들에게 한나라행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길인데 왜 망설이고 있느냐는 꾸중으로 들릴 정도다. 대한민국 발행부수 1등인 조선일보가 철새정치인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만평만이 아니다. 조선일보 15일자 머릿기사 제목은 '민주 전용학 자민련 이완구 한나라 입당-대선정국 지각변동 시작'이며, 두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 의미를 분석한 3면 해설기사 제목은 '한나라 충청 정풍 차단'이다. 두 의원의 해바라기 행보에 대한 비판기사는 민주당과 자민련, 정몽준 의원의 반응을 보도한 게 전부며 사설과 칼럼에도 비판은 없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야 당연한 것이니 조선일보가 봐준 것일까. 아니다.

***"98년 국민회의 입당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변절자"**

조선일보는 지난 98년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민회의(현 민주당) 입당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여대야소로 바뀌었을 때는 '어떤 변신들'(98년 9월 12일자)이라는 류근일 칼럼을 통해 "최근의 일련의 '말 갈아타기' 사례들이 드러내고 있는 그 보기 흉한 모양새만은 도저히 그냥 참아줄 수가 없는 것"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류근일 칼럼은 "그야말로 낯 뜨거운 변신이요 낯 뜨거운 표변이고, 그러다 못해 지저분하고 너절한 사례도 눈에 띈다"며 독설 퍼부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국민회의 입당이냐고 말을 갈아탄 변절자 의원들을 질타했다. '사정변경의 원칙(?)'을 전제하고 볼 때도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민회의 입당은 볼썽사납다는 지적이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그런데 왜 지금은 똑같은 변절자들이 용기있는 정치인으로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조선일보 만물상 98년 9월 3일자는 "화합은 기회주의자들에겐 더없이 좋은 구실"이라고 지적했었다.

***어제 오늘 다른 건 중앙ㆍ동아일보도 마찬가지**

중앙일보를 보자. 15일자 머릿기사의 제목은 '민주 전용학ㆍ자민련 이완구 의원 전격탈당 한나라행'이다. 중앙일보 역시 두 의원의 철새행보를 비판하는 사설과 칼럼은 없고 '막오른 정계개편-대선정국 요동'이라는 해설기사로 두 의원의 입당에 대한 각 당의 반응을 살피는 데 그쳤다.

<사진 중앙일보 김상택의 만화세상 15일자.>

중앙일보 '김상택 만화세상'은 '독식'을 주제로 이회창 후보가 전용학ㆍ이완구라는 떨어지는 감을 혼자 챙기는 모습과 정몽준 의원이 "같이 먹자!"며 쫓아가는 모습, 노무현 후보와 김종필 총재가 몽둥이를 들고 분노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만평에서도 비판의 메시지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중앙일보 역시 98년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민회의 입당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관용을 베풀지 않았었다. 권일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98년 10월 1일자 신문에 쓴 '중앙포럼-철새 정치인은 사기죄?'를 보자.

칼럼은 새 정권들어 여당으로 향하는 철새 정치인들의 행보를 묘사하며 "이들은 하나같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당적변경 행위는 배신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지역대결 구도로 후보자 면면보다 정당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법조계 주변에서는 농반 진반으로 선출직 공직자의 탈당을 형법 제347조(사기) '사람을 기망하여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자'로 보고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고 했다. 또 "사회정의 측면에서는 배신이나 변절이 반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가치관도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의 탈당사태에서 달라진 것은 탈당한 당과 입당한 당의 차이 뿐인데 비판은 사라졌다.

과거 정치보도에서 비판정신과 야성이 강하다는 평판을 들었던 동아일보 역시 '철새들의 양지찾기'는 '대선 두달 전 '정계 빅뱅' 카운트다운'(3면 해설기사)의 신호에 불과하지 정치인들의 신의와 원칙이 붕괴된 난장판을 상징하지는 않는 듯 별다른 비판이 없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98년 당시의 의원 탈당과 입당에 대해선 9월 8일자 '떳떳지 못한 '여행(與行)' 백태'란 기사를 통해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 여당에 들어간 대부분 의원은 전형적인 '철새정치인'의 모습을 입당과정에서 여실히 보여줬다"며 "정치적 소신이나 철학은 전혀 없었고 오로지 이해관계만이 탈당과 입당의 전 과정을 지배했다"고 비판했었다.

동일 사안에 대한 한국 대표신문들의 보도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다. 어제는 미웠던 철새가 오늘은 반가운 이유가 무엇일까. 부수만능주의에 빠져 발행부수가 2백만부를 넘는다고 자랑하는 일류신문이 아니라 신의와 원칙을 강조하는 공정한 일류언론의 비판과 감시를 통해 한국 사회가 발전하고 개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아직도 요원한 듯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