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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홀로서기 "대미관계 재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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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홀로서기 "대미관계 재정립하자"

"미 천문학적 군사비 사회평등 위해 써라"

미국 부시 행정부의 전쟁정책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비판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독일 요시카 피셔(Fischer) 외무장관은 17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과의 인터뷰에서 "테러에 대한 국제적 연대는 그 자체로는 어떤 나라에 대한 침략이든 정당화할 수 있는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 특히 그것이 한 나라의 일방적인 판단에 의한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피셔 외무장관은 또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에 이라크 정부가 개입됐다는 그 어떠한 증거도 나는 받아보지 못했다"며 미국의 기록적인 군사비 지출예산에 대해 '근시안적인 군사적 안전개념의 상징이다. 그 돈은 사회평등과 더 나아가 세계빈곤지역의 권익 등 시급한 과제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18일자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 Frankfurter Rundschau)는 이외에도 프랑스 로랑 파비우스 재무장관의 말을 인용해 '미국은 미래의 안정을 위해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당면과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때때로 가난한 국가들이 원래 가난하게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럽과 북미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모색해야 할 때"**

유럽연합 의장국인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아즈나 총리는 "유럽과 북미간의 관계 설정을 새로이 모색해야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지금"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미국에 비교적 우호적 입장을 보여 왔던 이슬람 국가들도 워싱턴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 정부는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라크 정부에 대해서도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유엔의 사찰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했다.

예멘의 알리 압달라 살리 대통령은"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아랍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동정심을 앗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 테넷 미 CIA 국장은 지난 16일 예멘을 방문해 알카에다 조직원의 색출을 위한 공동작업을 요구한 것으로 보도됐는데 그의 이번 예멘 방문은 이라크 공격을 위한 사전 모색도 겸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유럽국가들의 부시 행정부에 대한 경고가 의미하는 것은 아즈나 스페인 총리의 선언처럼 '미국의 일방적 군사정책으로부터 유럽의 홀로서기'다. 물론 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현 정부의 비판이 단순히 다가올 선거에 대비한 인기용 발언이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부시가 지난 1월 29일 국회 연두교서에서 밝힌 '악의 축' 발언이 유럽국가들로 하여금 미국 주도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더 이상 끌려다닐 수는 없으며 유럽 나름대로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독일 FAZ '유럽연합을 하나의 국가로' 토론광장 열어**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이 지난해 9월 뉴욕 테러 이후 12월부터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의 견해를 묻고 있는 '우리는 더 많은 유럽을(즉 유럽연합의 역할 강화를) 원하는가'라는 토론광장은 이러한 관점에서 일반 유럽인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FAZ의 토론광장은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테러공격 이후 유럽은 외교정책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미 유럽의 민족국가 회귀 성향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외무장관과 유럽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강해져야만 하는가 아니면 각 국은 계속 자신들만의 수프를 요리해야 하는가"라고 화두를 던지고 있다.

FAZ 토론광장에는 18일까지 모두 12명이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글을 게재했고 11명이 각 글에 대한 댓글을 통해 반대나 찬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글 두 편을 간단히 요약해 소개한다.

'더 많은 유럽, 그리고 적은 연맹과 주들'이란 주제로 글을 쓴 미하엘 블록은 "진정 우리가 유럽을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유럽헌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미 부분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권리와 민주적으로 합법적인, 그리고 하나로 통합된 강력한 유럽의회를 통해 유럽이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록씨는 이와 함께 "더 많은 유럽이 되기 위해선 관료주의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많은 기관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연맹과 주들 등의 각급 기관을 축소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유럽과 함께 더 강해져야 하는 것은 다시 직접적인 시민의 결정으로 운영될 수 있는 공동사회다. 각 도시와 공동체들의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다른 연맹이나 주에 들어가는 예산절감을 통해) 추가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클레멘스 쉬나이더는 '미래의 강력한 유럽으로!'란 글에서 "19세기의 발명품인 국가는 이제 골동품이 됐다"며 "우리의 미래는 연대를 통해 하나의 강력한 유럽국가를 건설하는데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FAZ 토론광장의 글들 중에는 물론 유럽 각국의 문화적∙언어적 차이나 경제적 격차, 그리고 민족이란 정체성의 상실 등에서 빚어질 혼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눈에 띈다. 하지만 대다수의 글들은 유럽연합의 국가화를 찬성하는 쪽이며 그 배경에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과 유럽의 역할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유럽의 정치가들이나 언론들은 지금 부시의 악의 축 발언으로 인해 빚어진 국면을 오히려 미국에 대한 유럽의 외교노선 등 정체성 확립과 하나의 강력한 유럽공동체 건설의 호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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