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패튼 유럽연합(EU) 대외관계집행위원이 미국의 패권주의적 외교정책을 정면 성토하고 나섰다.
패튼은 사실상 유럽연합의 국무장관격으로, 지난해 5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갖기도 했던 유럽의 대표적 평화주의자 가운데 한명이다.
패튼은 미국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의 발언을 정면반박하는 형태로 미국의 유아독존형 패권주의를 비판함으로써 앞으로, 유럽이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강한 제동을 걸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착각에 빠졌다"**
패튼은 처음부터 부시 미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이에 대해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13일자)에서 "미국의 국제정책에 대해 패튼이 좀 과민한 게 아니냐"고 비난했다. 그러자 즉각 패튼이 발끈 하고 나섰다. 패튼은 다음날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국제문제를 자기 입맛대로 밀어붙이는 일방주의를 포기하고 국제협력 조성에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반격을 가했다.
패튼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집착과 군사력 과시욕을 '극도로 잘못된 것'(profoundly misguided)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패튼은 '빈곤, 인신매매, 독재정권 등 세계화의 어두운 측면'을 지적한 뒤, "또다른 오사마 빈 라덴의 출현을 피하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세계화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튼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예상하지 못한 빠른 시간에 놀라운 승리를 거둔 것이 미국의 능력에 대해 과신을 부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러한 과신은 몇가지 위험한 본능을 강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군사력 발휘가 진정한 안보를 보장하는 유일한 토대이며 미국은 자기자신밖에 믿을 게 없다는 것, 그리고 동맹국들은 선택적으로 유용할 뿐이라는 단순논리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패튼은 . "9.11 테러사태의 교훈은 미국의 리더십과 국제적 협력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요구된다는 것"이라면서 미국의 각성을 촉구했다.
***"진정한 친구는 맹목적 추종자가 아니다"**
프랑스와 독일도 패튼의 비판에 대해 동조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거둔 승리감에 도취된 미국이 동맹국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독주하고 싶은 심리를 자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후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는 미국이 대테러리즘 전쟁의 다음단계로 이라크를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이라크에 대해 군사행동을 감행한다면 이 지역에 불안을 확산시켜 미국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 다시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유럽 일각에서는 미국이 테러리즘과 '불량국가'를 퇴출시키는 유일한 수단으로 군사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패튼은 이같은 유럽의 목소리를 대변해"진정한 친구는 맹목적 추종자가 아니다"고 말하면서 "미국 정책의 흐름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는 우리로서는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에 대해 "미국의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유럽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패튼과 파월의 이같은 설전은 테러리즘과 세계화에 대해 미국과 유럽의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미운 오리새끼' 영국**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설정에 유독 한나라만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럽의 미운 오리새끼'라 불리는 영국이 바로 그 나라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수상은 미국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9.11 사태 이후 조성된 국제공조체제를 훼손시켰다는 영국 외교관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블레어 정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 원인은 영국이 미국에 밀착한 '앵글로색슨주의' 정책을 취함으로써 군사,경제적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 14일 미국과 공동으로 핵실험을 하고 핵실험 자료를 공유하는가 하면, 미국의 차세대전투기를 최우선적으로 공급받기로 하는 등 그동안 미국과의 유착을 통해 막대한 반사이익을 거둬왔다.
블레어 총리는 또한 국내적으로도 이스라엘 건국의 실제 막후주도자인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등이 여전히 막강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친이스라엘적인 미국정책을 반대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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