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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홀로서기 "미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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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홀로서기 "미국은 없다"

"필요한 건 악의 축이 아니라 관용의 문화"

북한ㆍ이라크ㆍ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미국과 유럽간의 반테러 공조체제에 균열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유럽은 이슬람 국가들과의 유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미국 주도의 반테러 공조체제에 맨먼저 반기를 든 유럽국가중 하나는 독일.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 12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문명과 하모니'를 주제로 최초로 열린 유럽과 이슬람 72개국 외무장관회담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축이 아니라 관용의 문화"라며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을 비판했다.

이 회담에서 유럽연합 의장국인 요셉 피쿠 스페인 외무장관은 "수백년에 걸친 이슬람 문화의 기여가 없었다면 유럽은 오늘날의 유럽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유럽과 이슬람 국가간 공조를 강조했다.

이스탄불 회담은 유럽과 이슬람 문화권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터키가 주도한 것으로 유럽연합 국가들과 이슬람 국가들의 높은 관심과 뜨거운 호응을 받았으며 이란과 이라크 외무장관도 참석해 워싱턴의 '일방적이고 군사적인 외교정책'을 비난했다. 나지 사브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터키에 미국의 대 이라크 군사공격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 스페인 카세레스에서 열린 유럽연합 15개국 외무장관 회담 역시 미국에 대한 비판으로 격앙됐다. 이 회담에서 유럽국가 외무장관들은 이스라엘만을 두둔하는 부시행정부의 일방적인 중동정책과 이란ㆍ이라크ㆍ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의 표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외무장관은 미국의 흑백론적 외교정책을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 갈등의 책임은 일방적으로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는 이스라엘을 무조건 편들고 있는 미국에 있다고 지적했다.

베드린 외무장관은 또 세계가 중동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한 첫 단계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며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를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베드린의 제안은 현실적으로 팔레스타인 과격파의 힘을 더욱 강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회의에 부딪쳐 유럽연합의 결의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유럽은 중동의 바로 인접한 이웃으로서 중동지역의 평화문제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악의 축 발언은 우리를 더 이상 앞으로 끌고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도 "미국이 지난해 테러 이후 너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으며 정치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유럽연합 외교담당 집행위원인 크리스 패튼은 "부시 행정부는 아주 절대적이고 단순화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며 "세계의 유일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무든 일을 혼자 처리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패튼은 또 유럽인들이 자존의식을 높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유럽연합 국가들중 미국과의 공조관계를 우선시하는 나라는 영국이 유일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11일 대변인을 통해 '부시가 유럽 파트너들과 합의점을 찾고 있지 않다는 유럽 국가들의 비판은 적절치 않다'며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와의 전쟁이 가장 우선 순위에 있다'는 부시의 견해를 전달했다.

영국을 제외한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유럽국가들이 두 차례에 걸친 회담을 통해 밝힌 입장은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정책 위주의 세계질서에 따라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유럽국가들은 부시가 지난 1월 29일 국회 연두교서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확전을 시사한 이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한 탓인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부시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미국과의 이견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동지역에 대해서는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은 전통적 우방으로 여겨졌던 유럽국가들 뿐만은 아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또한 이라크를 문제로는 보고 있으나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은 유엔 결의 하에서만, 그리고 최후수단으로만 가능하다'며 "러시아는 블랙리스트(악의 축을 의미) 작성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간 외교정책에 대한 갈등과 관련해 독일의 FAZ(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는 12일 '테러와의 전쟁이 붕괴를 재촉하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지난해 9월 11일 이후 부시 대통령이 주창해온 테러와의 전쟁은 반테러리즘에 대한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FAZ는 처음부터 서로 적대국에 대한 밑그림이 다른 모스크바와 테헤란 베이징 델리 이슬라마바드 앙카라 리야드 파리 런던 등 모든 정부로부터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은 불가능했다며, 지금은 테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의 통일과 대량살상무기를 통해 세계안정을 해치는 테러위협국가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이 선행돼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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