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은 17일째 평택에 있는 집에 못 가고 있다. 요즘 그는 농성장에 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취재 요청을 받아들이며 하루를 보낸다. 단식 기간이 길어지면서 잠이 많아졌다고 했다. 매일 저녁에는 천주교에서 대한문 미사를 오고, 가끔 문화제도 열린다. 대한문 앞 농성장은 12명이 3개 조로 나눠서 지키고 있다.
김 수석부지부장은 1993년에 쌍용차에 입사했다. 2009년 정리 해고되지 않았다면 만 20년 차다. 거리에서 보낸 시간이 5년째다. 지난 추석 연휴 때는 대한문 앞에서 합동 차례를 지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대한문에서 두 번째로 맞는 추석이었다.
그는 "파업 끝나고 수감됐을 때 일주일에 서너 통씩 아내에게 '가족과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편지를 썼는데,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집에 안 오면 '아빠'가 아니라 '아저씨'라고 부르겠다"고 농을 건네는 아들에게도 못내 미안하다.
그는 "12명이 여기서 곡기를 끊고 연휴를 보냈는데, 이젠 끝났으면 좋겠다"며 "회사도 6년 만에 흑자를 냈고 대주주도 정상화를 언급한 만큼, 해고자 전원이 공장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보내는 삶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에는 "제2의 '먹튀'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문 앞에는 경찰 버스가 주차됐고, 경찰 수십 명이 화단을 지키고 있었다. 분향소가 화단으로 바뀐 것 말고는 변한 게 없는 풍경이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24일 서울 시청광장 천막 농성장에서 단식 15일차를 맞은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수석부지부장. ⓒ프레시안(최형락) |
"민주주의와 민생 문제는 분리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왜 단식했나?
김득중 : 다섯 번째 추석을 앞두고 더는 길거리에서 명절을 보낼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회사도 6년 만에 흑자를 냈고, 대주주도 언론에 "조기 경영 정상화"를 언급했다. 해고자를 일상으로 돌리는 데 정부와 자본이 나서야 한다.
프레시안 : 쌍용자동차 문제가 '국정원 개혁' 같은 다른 정치적 상황 때문에 상대적으로 묻힌 데서 오는 절박함도 있을 것 같다.
김득중 : 우리 욕구보다는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 회담에서 여야가 갈라졌다. 국회도 정상적으로 안 열렸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태도 났다. 노동 문제와 정치적 이슈가 분리되지 않는데도, 분리되는 느낌이다. '민주주의의 권리'와 '노동자·민생 문제'가 같이 가야 하는데, 특정 이슈가 생기면 노동 문제가 밀리는 게 안타깝다(쌍용차 해고자들이 단식하며 생활하는 서울 시청광장 천막 농성장 바로 맞은편 민주당 천막 당사에는 "민주주의 회복해서 민생을 살리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편집자>).
쌍용차가 할 일, 정부가 할 일
프레시안 : 기업노조인 쌍용자동차노동조합과 회사는 쌍용차 문제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득중 : 동의한다. 2009년 파업 당시에도 우리는 정리 해고 문제에 대해 노사가 합의하자고 주장했다. 공장 밖으로 밀려오면서도 회사와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지난 10년간 노사 대화로 풀자고 했는데, 이제 와서 회사가 노사가 대화해서 풀자고 얘기하는 건 긍정적으로 본다. 물론 그동안 서로 갈등, 불신이 쌓였지만 (회사가 대화할 의지를 보이면 풀 수 있다).
▲ "상하이차의 '먹튀' 논란과 회계 조작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비단 쌍용차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2, 제3의 '먹튀'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물론 회사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다르다. 정부는 2009년 파업이 남긴 과제를 여러 각도로 해결해야 한다. 살인 진압한 경찰 책임자 문제, 정부가 건 손배·가압류 문제가 있다. 상하이차의 '먹튀' 논란과 회계 조작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비단 쌍용차만의 문제는 아니다. 투기 자본이 원하는 기술만 빼먹고, 정리 해고하고 빠지는 것을 규제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먹튀'가 생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은 다쳐도 설비는 꿋꿋하게 지켜냈다"
프레시안 : 쌍용차지부의 싸움에 대한 비난 댓글들을 보면, '회사 이미지 깎아서 회사 망하게 하려느냐'는 반응이 많다.
김득중 : 서운하지만 잘 모르고 그럴 수도 있고, 알면서 의도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 댓글이라는 게 그렇다. 국정원 직원이 단 댓글을 보듯이 개의치는 않는다.
중요한 건 진실의 문제다. 여전히 회계 조작에 대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기간에 청문회를 통해 회계 조작 의혹들이 어느 정도 사실로 파악됐다. 쌍용차 정리 해고 사태는 '회계 조작과 기획적인 파산'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주면, 조금 더 알면 누구도 그런 댓글을 달 수 없다.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는 노조가 세상에 어디 있나? 파업 참가자 그 누구도 회사가 망하길 바라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경영진이 만든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를 살리려고 했을 뿐이다. 상하이자동차가 신규 채용, 투자, 신차 개발을 하겠다는 모든 약속을 저버리면서 기술만 빼가려는 것을 제지하려 했을 뿐이다.
2009년 정리 해고에 반대해 파업할 당시에도 공장이 단전, 단수됐는데도 우리는 도장관(페인트 공장)만은 우리끼리 자가 발전해서 돌렸다. 페인트가 굳어버리면 자동차를 다시 생산하기까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는 77일간 엄청난 분노와 암흑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사람은 다쳐도 치료도 못 받으면서 설비는 꿋꿋하게 지켜냈다. 파업 끝나면 우리가 다시 일할 공간이고, 공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진압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벌어졌는데도 파업 끝나고 바로 차가 출시됐다.
▲ "당시 우리는 77일간 엄청난 분노와 암흑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사람은 다쳐도 치료도 못 받으면서 설비는 꿋꿋하게 지켜냈다." ⓒ프레시안(최형락) |
현장으로 돌아오라는 동료들
프레시안 : 노사 갈등이 길어지면서 상처도 많겠다. 현장에 돌아가도 동료들이나 회사와 어색할까 걱정되지 않나?
김득중 : 작년 이맘때만 해도 공장 정문에서 선전전을 하다가 현장에 출근하는 옛 동료들을 만나면 서먹서먹함, 서로 미안함과 같은 묘한 기류들이 있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좋아졌다. 현장 동료들이 악수하고 포옹하고 "고생한다"는 얘기도 하고,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옛날에는 관리자가 있으면 눈치 보면서 우리가 나눠주는 선전물 받아서 정문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지금은 쓰레기통이 없어졌다. 우리 홍보물도 적극적으로 받아간다. 공장 출입문이 5곳인데 선전물 부스를 두 배로 늘렸다. 부족하다.
2009년 당시에 우리가 자본에 의해 갈라지고, 어쩔 수 없이 본인의 고용과 생존을 지키려고 대립했다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서로 화합하고 치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 3월에 무급휴직자 454명이 복직하고, 회사가 6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고,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회장도 정상화 의지를 선언했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2009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마음 한구석에 서로 미안함이 있는 것 같다.
▲ "마음 한구석에 서로 미안함이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남은 건 복직뿐…"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못다 한 말씀 부탁한다.
김득중 : 쌍용차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다섯 번째 가을을 맞고 있다. 1년 6개월 이상 대한문에서 길거리 노숙 투쟁을 했다. 김정우 지부장이 41일 단식했고, 세 명이 171일 동안(한 명은 116일) 15만4000볼트 전류가 흐르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송전탑 고공 농성을 했다. 올 초에는 인수위 앞에서 15일 노숙 농성을 했고, 지금은 12명이 대한문에서 곡기를 끊는 추석을 보냈다. 이젠 끝났으면 좋겠다. 전원이 공장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보내는 일상을 찾았으면 좋겠다. 어느 해고자나 마찬가지 마음이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쌍용차뿐만 아니라 '정리 해고, 비정규직, 노조 탄압' 문제로 민주노총 안에 70여 개 넘는 사업장들이 긴 싸움을 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뭔가 해줬으면 좋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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