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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 정치' 하고 싶다면 비례대표부터 늘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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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 정치' 하고 싶다면 비례대표부터 늘려라

[복지국가SOCIETY] 제2의 민주화 운동이 필요하다

6월 22일 토요일 새벽, 용산역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변 창립에 앞장섰고 현재까지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이사장 겸 공동대표를 맡고 계신 최병모 변호사님, 경제 민주화 운동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 유종일 교수님과 전성인 교수님, 최근 종편의 인기 프로그램인 <썰전> 등에 출연하여 대중적 인지도를 얻고 계신 이철희 소장님 등 20여 명이 광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현지에서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이종걸 국회의원 등의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정치학 연구자로서 비례대표 연구에 크게 공헌하신 전남대학교 선학태 교수님도 합류하셨다. 그리고 대한민국 복지국가 담론의 원조이자 '역동적 복지국가'의 전도사인 이상이 교수님은 제주에서 광주로 가장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은 그동안 서울에서만 열렸던 '비례대표제 포럼'을 광주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정치인과 정권이 바뀌어도 국민의 열망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

행사를 공동 주최한 5.18기념재단 오제일 이사장님도 인사말에서 "지금까지 정치적인 논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재단의 사업에서 정치적인 부분은 배제하였지만, 이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완성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치 개혁 운동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전날 기말고사를 막 끝내고 쉬고 싶을 것임에도 광주·전남지역의 대학생들이 많이 참석하여 청년 실업과 등록금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하면서 높은 정치 의식을 보여주었다.

지난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 민주화,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그리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주요 쟁점이 될 정도로 복지국가에 대한 염원이 시대 정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었음에도 이러한 국민적 여망이 정치권을 통해 제대로 실현될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전체 노인들에게 두 배로 지급하겠다던 기초연금은 대폭 축소될 전망이고,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보장" 약속은 대국민 사기극으로 전락할 공산이 커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제시된 공약이 취임 1년도 못 되어 축소 또는 왜곡되고 있고, 생활상의 조그마한 개선이라도 일어나길 기대했던 국민의 바람은 무참하게 유린당하고 있다.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바로잡아 공정한 경제 질서를 달성하겠다던 경제 민주화 입법도 6월 국회에서도 물 건너가며 방치되고 있다. 사안의 절박함이나 국민들의 기대에 비추어 보면 민란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임에도, 정치권은 아직도 정쟁으로 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정치구조는 26년 전인 '6월 항쟁' 이후 6.29 선언을 통해 정립되었다. '87년 개헌 당시 3김 중심의 정치적 한계로 인해 단순 다수 대표제인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면서 이 땅에는 지역 중심의 거대 양당 구조가 정착되었다. 소선거구 단순 다수 대표제와 이로 인한 거대 양당 구도, 그리고 집권당 단독 정부 및 대통령제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 제도 조합에서는 본질적으로 현재 보이는 것과 같은 비효율적인 정쟁과 기득권 옹호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새누리당 당사 전경. ⓒ뉴시스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치 제도에 대해 논의해야

우리나라는 이미 작은 나라가 아니다.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넘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큰 나라다. 이제 대한민국의 시대적 요구와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 체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여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해 잘 준비되고 능력 있는 분들이 정당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어야 대한민국 정치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첫째, 다양해진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직능별, 전문분야별 비례대표를 강화하여야 한다. 정치적 대표성을 거주 지역으로만 반영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같은 선거구에서도 저소득 서민층도 있고, 중산층도 있으며. 고소득 상류층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1등 독식의 소선거구 제도에서는 다양한 계층과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를 할 수 없다. 비례대표제의 강화를 통해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분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 현재의 선거 제도에서는 정책 전문가나 국가 전체적인 입장에서 판단하는 사람들의 정치권 진입이 어렵다. 지역 단위의 활동 경험과 경륜만을 가진 분들에게 이러한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능력까지 요구하기는 어렵다. 시대 정신으로 자리 잡은 경제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포괄하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영역별 전문성도 갖추고, 이러한 정치 의제의 실현에 자신의 역량을 집중할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

셋째, 현재의 거대 양당 체제에서는 어느 정당도 다수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 48% 국민의 지지를 받고서도 다수당이 되지 못한 야당이 과연 52%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집권 여당의 정책에 동의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되는 일도 없고,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수 정당들 간의 항상적인 논의를 통한 합의 정치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가 실질적으로 반영되고, 관련 정책들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 정치"의 본령은 비례성 강한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이든 지방의원이든, 별로 하는 일 없이 권력만 누리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의원 숫자 늘리기에 대해 우리 국민의 동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음을 잘 안다. 현재의 구조에선 의원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민의가 더 잘 반영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체념해서는 안 된다. 비례대표 의원의 숫자가 늘어나도록 하고, 이들의 자질을 국민들이 충분히 검증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에 투입되는 비용 보다는 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나는 이게 바로 새 정치라고 생각한다.

▲ 5월 4일 민주당 전당대회 ⓒ프레시안(최형락)

실제로 최근 발표된 국회 입법조사처의 연구(NARS 현안보고서,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제도 개선 방안의 시뮬레이션 분석, 2013. 2)에 따르면,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 제도에서 양대 정당들의 경우 득표율 대비 의석율을 비교하면 이득율이 각각 1.18과 1.16로 나왔고, 통합진보당 등 소수정당의 경우 이득율이 0.42%로 나타났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대로, 보고서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도 때문에 지역주의 정당이 각각의 지역에서 싹쓸이를 하고 있음을 구체적인 수치로서 잘 보여주었다.

또한, 보고서는 낮은 비례성으로 인해 자신이 지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당의 후보가 당선되지 않는 사표(死票)가 과다하게 발생하고, 이로 인해 지역주의가 더욱 고착화되는 승자독식 구도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대안으로(현재의 지역구 의원 수를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 숫자를 54명에서 100명으로 늘리기만 해도 대구 경북과 부산 경남에서 민주당은 7석을 배출(물론 이때 새누리당은 16석을 더 가져감)할 수 있고, 소수정당들은 전국적으로 15석을 더 배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구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중앙당이 일방적으로 비례대표를 공천하는 것이 아니라 권역별로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의 순번을 정하게 하거나, 분야별 전문성과 활동 능력이 입증된 분들이 국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검증 시스템이 동시에 갖추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정당이 득표한 비율만큼 의석을 배분받는 것이다. 이렇게 정당별 득표 비율에 따른 비례대표성이 대폭 강화되면, 여야 정당들은 정쟁을 일삼기 보다는 총득표와 직접 연결되는 국민들의 생활 관련 의제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제 '제2의 민주화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는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지역주의 정당의 폐해를 처절하게 경험하였다. 국민의 70% 이상이 공공 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의 폐업을 반대함에도, 새누리당 출신의 지방자치단체장은 폐업을 강행하였고, 같은 당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도의회는 법인 해산을 결의하였다. 만약, 지난 국회의원 시의 득표율이 반영되어 경남 도의회에 새누리당이 아닌 의원의 비율이 40%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선진국의 경험을 보더라도, 다당제 구조 하에선 특정 정당이 과반 이상의 득표를 해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정당들 간의 연합 정치가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 합의제 민주주의가 살아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비례대표 확대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번 정기 국회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10분의 1 수준으로 당사를 축소하고 정당 연구소의 독립을 결정한 민주당은 정치개혁의 근본이 될 비례대표 확대를 당론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복지국가를 당헌 1조에 반영한 새누리당도 자신의 진정성을 비례대표 확대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비례대표 확대 없이는 복지국가가 불가능하다. 비례대표 확대 없이는 새 정치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정치세력은 비례대표 확대에 대한 입장을 국민에게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나는 광주 비례대표제 포럼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 인근의 5.18기념 공원을 둘러보았다. 역동적인 모습의 시민군 조각상과 광주 시민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기념 조형물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례대표제 포럼 행사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민주화 운동의 성지에서 마음이 숙연해졌을 것이다. 이제 '제2의 민주화 운동'이 필요하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통한 정치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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