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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현대차 간부 "동료 못 쫓아내면 내가 잘린다"

관리직들이 노조를 만든 이유…"구사대 동원되고 흡연까지 감시 받아"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과장급 이상 관리직 사원들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일반직지회'를 설립했다.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자신들이 '파리 목숨만 못하다'고 여겨서다. 일반직지회는 과장급 사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취업 규칙과 사측이 가동한 '퇴출 프로그램' 때문에 노예처럼 살아왔다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지난 2009년부터 과장급 이상 사원들을 대상으로 '역량 강화 교육(PIP : 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을 실시했다. 현대자동차 측은 '역량 강화 교육'에 대해 "간부 사원급 가운데 고과가 낮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무 능력을 향상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직지회는 PIP가 사원 교육을 빙자한 '퇴출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차가 PIP 시험 성적과 근무 태도를 근거로 교육 대상자에게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주고 해고시킨다는 것이다. "3년 이내 2회 이상 징계를 받으면 해고할 수 있다"는 취업 규칙이 해고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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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는 시간까지…일거수일투족 시간별 감시"

PIP 대상자로 선정된 과장·차장·부장급의 40-50대 노동자들은 1년에 두 번, 2주일씩의 경영학 교육을 이수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책 한 권 분량의 수업을 듣는다. 교육 중에 전화를 받거나, 자세가 불량하거나 졸면 감시자가 일일이 감점을 준다. 오후 7시부터 12시까지는 그날 배운 내용을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보고서를 제출한 뒤에는 그다음 날 오전에 칠 시험에 대비해 공부를 한다. 빨리 자야 새벽 3-4시다.

2주일간의 교육 기간이 종료돼도 끝이 아니다. 현업에 복귀한 PIP 대상자들은 매일 업무일지를 작성하고 부서장 평가를 받아야 한다. 2009년 PIP 교육 대상자로 선정됐다가 2011년 해고된 A 씨는 "회사는 PIP 대상자의 하루 일과를 관찰해서 컴퓨터에 '관찰 일지'를 입력하는데,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시간별로 감시한다"며 "심지어 담배 피우는 데 10분 걸렸다는 내용까지 시간 단위로 입력했다"고 말했다.

▲ 현대차가 PIP 대상을 평가하는 인사권자에게 배포한 관찰 일지 작성 매뉴얼. '다른 팀에 가서 팀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다닌다', '전날의 술자리 흔적이 근무 시간에도 남아 있다', '마지못해 일을 하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 '일을 하면 완벽하지 않다', '출근하면 신문이나 인터넷부터 본다', '주어진 일을 욕먹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한다', '사람들을 선동한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 항목이 나열돼 있다. ⓒ프레시안
▲ 현대차가 PIP 대상을 평가하는 인사권자에게 배포한 관찰 일지 작성 매뉴얼. 위 사진의 '평가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문구가 시간별로 입력된다. ⓒ프레시안

대부분 관리직 노동자들은 PIP 대상으로 선정되면 끊임없이 퇴사 압박을 받는다. A 씨는 "'위로금이라도 받고 나갈래, 징계 해고 당할래?' 하는 식으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며 "끝까지 사직을 거부하면 '근무 태만, 업무 지시 불이행'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고 말했다. A 씨는 퇴출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끼고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나간 동료가 있었어요. 회사 상사가 측근들을 데리고 집까지 찾아가서 모든 가족이 보는 앞에서 얘기했다는 거예요. '회사 그만 나가라. 네가 일 못하면 나가줘야지 젊은 애들도 들어오지. 위로금 받고 나가라'고 했대요. 가족들이 그 모습을 보고 울었다는 거예요."

"동료를 쫓아내지 않으면 내가 쫓겨난다"

직장 내 선후배 관계가 망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PIP 대상자들을 퇴출시킨 경험이 있는 B 씨는 "PIP 대상자인 부하 직원을 쫓아내지 못하면 자신이 잘린다는 절박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각 사업부별로 인력 퇴출 목표치가 할당된다는 것이다.

"PIP 대상자를 반드시 쫓아내야 한다는 임무가 인사팀을 거쳐서 사업부장에게 주어집니다. 사업부장은 주어진 퇴출 목표치를 달성해야 하니, 다시 부서장에게 압박을 가합니다. '저 사람을 쫓아내지 않으면 너한테 최하위 고과를 준다'고요. 퇴출 실적이 부서장의 실적에 반영되고, 각 부서장들의 실적은 다시 사업부장의 실적에 반영됩니다. 약육강식 시스템이죠."

일반직지회가 지난 4년간 PIP 교육을 받은 271명 가운데 연락이 닿은 22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152명(66%)이 징계를 받았다. 자진 퇴사하거나 해고된 사람도 75명(33%)에 달했다. 3명 중 2명은 징계를 받고, 3명 중 1명은 퇴출된 셈이다.

일반직지회는 현대차가 KT와 마찬가지로 '불법 퇴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정리 해고를 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지난해 현대차의 순이익은 9조 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회사가 합법적으로 인력을 퇴출하기 위해 취업 규칙의 징계 조항을 악용한다는 것이다. (☞ 관련 기사 : KT, 또 '살생부' 직원 대상 보복 인사?, 이마트, '불법적인 인력 퇴출 프로그램' 가동, "고용 안정 지도해야 할 노동부가 직원 해고")

현대차 "PIP는 합법…일부 사원 징계 해고는 불가피"

PIP가 '불법 퇴출 프로그램'이라는 주장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얼마 전에 (PIP로 퇴출된 해고자들이 제기한 소송의) 1심 판결이 났는데, PIP는 정당한 프로그램이라는 판결이 났다"고 강조했다.

각 부서에 '퇴출 목표치'가 할당돼 인사권자 실적에 반영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현대차 관계자는 "해당 팀이나 부서가 상대 평가를 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며 "평가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팀장이든 부서장이든 일부 사원에게는 하위 고과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PIP를 통해 해고나 징계를 당한 사람은 극히 일부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더 높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반직지회는 "회사는 형식적으로 일부를 살려주는 척하지만 한 번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그 사람은 이듬해 PIP 대상자로 또 선정된다"고 주장했다.

PIP 대상자의 66%가 징계를 받고 33%가 사실상 해고됐다는 반박에 대해서 현대차 관계자는 "업무를 제대로 못하면 회사로서는 업무적인 손실을 얻을 수 없으니 일부가 징계나 해고를 당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전체 간부 사원 규모 1만 명에 비해) PIP 대상자로 선정된 인원 자체가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구사대' 동원된 간부 사원, 간부 사원 감시하는 부서장

▲ 보초를 서는 간부 사원. 평상시에는 보초를 서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거 등 단체 행동을 시도하면 '기동대'로 편성된다. B 씨는 "본 업무 말고도 보초를 서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일반직지회는 '퇴출 프로그램'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일반직지회는 과장급 이상 관리직 노동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구사대'로 동원돼 격무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 관련 기사 : "먹다 남은 통닭 먹음"…현대차 소름 돋는 사찰)

울산 공장에서 일하는 B 씨는 "비정규직 인원이 철탑에 올라간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4개월 동안 3일에 한 번씩 24시간 방호 보초를 섰다"며 "평일 야간 보초 근무에 편성되면, 낮 근무는 일과대로 하고 밤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24시간을 풀(full)근무했다"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부서장이나 상급자들은 간부직들이 보초를 정 위치에서 잘 서고 있는지 순찰하면서 감시한다"며 "우리가 부당하게 근무 외적으로 보초를 서는 것도 못마땅한데, 감시까지 하니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이 입수한 현대차 내부 문건을 보면, "최근 하청(비정규직 노조) 동향 및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만전을 기할 것. (보초를 서는 간부 사원의) 식사 시간, 자리 이탈, 조기 퇴근 등에 대해 부서장이 수시로 방호 근무자를 순찰할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 '부서장 전달 사항'이라는 제목으로 도착한 이메일. "최근 하청(비정규직 노조) 동향 및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만전을 기할 것. (보초를 서는 간부 사원의) 식사 시간, 자리 이탈, 조기 퇴근 등에 대해 부서장이 수시로 방호 근무자를 순찰할 예정. 간부 사원은 7시 이전에 반드시 출근토록 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프레시안

"과장에서 대리로 진급하게 해 달라(?)"

일반직지회는 이 모든 문제가 과장급 이상 사원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취업 규칙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2004년 현대차는 과장급 이상 사원들만 대상으로 하는 '간부 사원 취업 규칙'을 만들었으며 과장급 이상 노동자에게 개별적으로 취업 규칙 변경에 동의하는 서명을 받았다. 과장급 이상 사원들은 "찍힐까 봐" 상사의 지시대로 서명했고, 새 취업 규칙은 다시 이들의 발등을 찍었다.

간부 사원 취업 규칙에는 '1년 단위를 기준으로 하는 연봉제 적용', '업무상 필요하면 회사가 휴일 근무 명령 가능', '휴가는 25일 한도', '회사가 경영상 이유로 감원 가능', '3년간 2회 이상 징계를 받으면 해고', '간부 사원의 본분에 어긋나면 해고' 등 불리한 규정이 있다.

이 때문에 다른 현대차 노동자들은 법정 연차휴가 외에도 1년에 월차를 30개 추가로 쓸 수 있지만, 과장급 이상 노동자에게는 월차가 없다. 당연히 월차 수당도 없다. 과장급 노동자는 회사가 필요할 때는 취업 규칙에 따라 휴일에도 나와서 일해야 하지만 초과 수당이 없다. 현대차지부가 최근 단체협상에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기로 회사와 합의했지만, 간부 사원의 정년은 취업 규칙에 따라 58세다.

B 씨는 "과장 이상으로 진급하기 전에 대리급일 때는 기존 취업 규칙을 적용받고, 노조원으로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정규직 노조)의 단체협약을 적용받았다"며 "노조라는 테두리가 있었기에 회사도 막무가내로 억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조원이었다면 '구사대' 업무와 '퇴출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PIP 교육도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장, 차장, 부장들 사이에서는 "대리로 진급하게 해 달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현대차 근본적 위기…혁신 동기 사라져"

현대차가 간부 사원 취업 규칙으로 '제 살 깎아먹기'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현대자동차 기업을 유지하는 핵심 골간 조직인 간부 사원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사무실 관리자들에게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혁신적인 동기 부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고 우려했다.

박 전 위원장은 "특히 연구소 연구원들조차 부푼 희망으로 입사했지만 불과 얼마 가지 못해서 자기들의 고참 선배인 책임 연구원(과장급) 이상들이 파리 목숨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보게 되고, 연구소 고과권자는 승진 고과를 챙기느라 부하 직원(관리직·연구원)을 닦달하니 어떤 희망으로 연구 개발에 몰두할 것인가?"라며 "현대자동차 회사가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했다"고 평가했다.

일반직지회는 현대차에 △간부 사원 취업 규칙 폐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 범위 확대 △정년 연장 △역량 강화 교육(PIP) 폐지 △PIP 이후 해고·징계 무효화 △연·월차 누적분 소급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단체협상이나 임금협상은 현대자동차지부와 진행한다"며 "(일반직지회와) 따로 협상을 하기는 곤란하고, 노사 협상에서 (요구안이) 안건으로 올라오면 현대차지부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부 사원이 구사대로 동원돼 격무에 시달렸다는 주장에 대해 이 관계자는 "한 사람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는다"며 "돌아가면서 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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