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중증질환 국가 책임, 선거용 캠페인일 뿐이었다고?
박근혜 후보는 당선된 뒤 여러 가지 공약을 뒤집었다. 누가 그를 약속과 신뢰, 원칙의 정치인이라고 했는가? 이번 공약 수정·폐기 파동은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는 정치적 목적으로 상당 부분 조작되었고 크게 과장된 것임이 드러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 공약을 계속 지킬 의지가 있다'고 하면서도 선택진료비, 상급 병실료, 간병비는 각자의 선택에 따른 진료이기 때문에 보장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대선 과정에서 처음부터 선택진료비 등 3대 비급여 항목은 보장성 범위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지만 선거 캠페인용으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을 내걸었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 6일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는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진 후보자는 대선 과정에서 처음부터 선택진료비 등 3대 비급여 항목은 보장성 범위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지만 선거 캠페인용으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을 내걸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박근혜 후보 공약집에는 비급여 포함 100% 진료비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 문제의 4대 중증 질환(암,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 희귀난치병)과 관련해서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이라는 제목으로 '총 진료비(건강보험 적용 진료비와 비급여 진료비 모두 포함)를 건강보험으로 급여 추진하고 2016년까지 4대 중증질환 보장률 100%로 확대'라고 기록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건강보험에서 보장 받을 수 있는 비율을 기존 75%에서 올해 85%, 2014년 90%, 2015년 95%, 2016년 100%로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박근혜 후보는 쪽방촌에 갔을 때, 어르신들을 만났을 때, 유세를 할 때도, 공보물에서도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부담"을 공언했다.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텔레비전 토론 때는 더욱 분명하게 '비급여를 커버해서 100% 보장하겠다'고 했다. 또 동네마다 펼침막을 내걸었다.
이처럼 분명하게 비급여를 포함해서 진료비 전액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공약을 인수위 이름으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이름으로 뒤집고 있는 현실을 어찌 보아야 하나? 인수위와 공약을 총괄한 진 장관 후보자의 말이 맞다면 박근혜 당선인과 캠프는 처음부터 공약으로 포함되지도 않은 내용을 오로지 당선되고 싶은 욕심에 거짓으로 약속한 것이 된다. 만약 이들이 공약한 내용을 뒤집기 위해 원래부터 공약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 또한 용서할 수 없는 국민 우롱행위이다.
국민으로선 공약집을 믿을 수밖에 없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공약집에 분명하게 비급여 항목을 포함해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을 국가가 책임진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이 공약을 없던 일로 돌리는 태도는 대국민 공약 파기 행위로서 명백한 사기 행위라고 생각한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뻥'으로 판명돼
기초노령연금 공약도 마찬가지다. 2013년 법을 즉시 제정하여 65세 이상 모든 노인층에게 월 20만 원씩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은 소득 하위 80%의 노인까지 2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후보 공약보다 더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인수위는 소득과 국민연금 납부 기간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공약을 왜곡·변질시켰다. 국민연금을 오래 부은, 더 안정된 사람들을 더 우대하고 국민연금을 아예 부을 수 없거나 짧은 시간 동안만 부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홀대하는 결정을 하였다. 그 결과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을 부추기고 국민연금의 존재 근거를 약화시켰다.
대통령 취임 2주 만에 사기죄와 허위 사실 공표죄로 고발하다
약속은 천금 같이 무거운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약속에서 출발한다. 보통 사람들 간의 약속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무게를 가지고 있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전에 정치인들이 약속 파기를 손바닥 뒤집듯 흔한 일로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선거 때는 지킬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서 경쟁적으로 거짓 공약을 남발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힘센 기득권 정치 세력끼리 서로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없던 일처럼 만들어 버리는 일이 너무나 흔했다.
하지만 거짓 공약은 범죄 행위이자 민주주의 파괴 행위임이 분명하다. 이제 더 이상 이러한 일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과 진영 후보자는 지난 대선 공약을 입안할 때 검토조차 하지 않은 '비급여 포함 100% 국가 보장'이라는 허위 사실을 공표했으므로 공직선거법 제250조 허위 사실 공표죄에 해당될 수 있다. 지킬 의사도 없으면서 허위 공약을 여기저기서 공표하여 유권자를 속여 표를 찍도록 유도하여 당선되었으므로 형법 제 347조 사기죄를 범한 것으로 나는 판단했다.
거짓 복지 공약이 선거 결과에 중대한 영향 끼쳤을 것
특히 이번 대선처럼 복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뜨거운 박빙의 선거에서는 복지 공약이 당락을 가를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박 대통령은 허위 공약을 통해 집권에 성공하였으므로 그 죄 여부를 심판받아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은 이전의 새누리당 전신 한나라당의 공약에 비해 여러모로 진일보한 것이었다. 특히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 지급' 공약 같은 경우는 보편 복지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보편 복지 진영의 전열까지 흔드는 효과를 보았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국가 부담' 공약은 무상 의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높아지는 것을 차단하고 자신에게 지지를 모아내는 효과를 보았다. 4대 중증질환이라도 무상으로 된다고 하니까 4대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가족은 물론 많은 노인들, 그리고 저소득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그 공약이 없었더라면 야당 후보를 찍거나 기권할 가능성이 있던 사람들의 표가 박근혜 후보로 상당히 이동했을 것이다. 만약 지금 박근혜 정부가 수정·변질·파기한 공약을 내걸었다면 박근혜 후보는 패배했을 수도 있다. 국민을 상대로 중대한 사기를 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번 행위는 국민 대다수를 상대로 한 점에서 피해자가 최대로 많고, 아프고 병든 사람들과 그 가족, 가장 의지할 데 없는 어르신들과 저소득층을 상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죄질이 매우 안 좋은 사기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 사기 공약을 해도 당선되면 없던 일로 되어버리는 시대는 이제는 끝내야 한다. 이번에 고발을 했다고 해서 무엇이 얼마나 바뀌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 등이 아니면 임기 중에 형사 소추되지 않는 헌법 조항을 들어 하나의 이벤트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는 걸 안다.
▲ 노년유니온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에 속한 회원들이 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 등의 대선 공약을 어겼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진영 장관 후보자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 |
검찰은 엄정히 수사하고 단죄해야
하지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으로서 무슨 행동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는가? 행정부를 맡은 자가 잘못을 범했을 때, 특히 정부를 맡는 과정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데 그걸 그냥 넘어가면 그러한 행동은 한도 끝도 없이 반복될 것이다. 잘못을 보고 용인하는 것은 사실상 공범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현재 존재하는 법률적 규정 때문에 대통령을 처벌할 수 없다면 퇴임 직후에라도 수사를 개시해서 분명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 이번 고발은 처벌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의 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정의, 도덕의 눈으로 불 때 박근혜 대통령이 중대한 죄를 범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으로 검찰의 태도를 주목하려 한다. 검찰은 대통령에 대해 현행 헌법상 수사와 처벌이 불가능하다면 지난 대선 때 그와 공모하여 공직선거법과 형법을 위반하여 대선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진영 장관 후보자를 엄격히 수사해서 처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결과 지상주의는 엄청난 부작용을 낳았다. 검찰은 이번 고발 사건 수사를 엄격히 해서 대통령 선거 과정 때 범한 이들의 혐의를 분명하게 밝히고 단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할 것이다.
거짓 공약 관행, 이번에 뿌리 뽑아야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제도이다. 국민들이 공약조차 못 믿는 세상이 된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공직자를 뽑을 수 있을 것인가? 이번 고발에 응답이 필요한 이유다. 거짓·허위 공약을 단죄하지 못하면 선거는 하나 마나다.
이번 고발 때 언론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에게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정의를 열망하는 이러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이 단결하여 좋지 못한 정치 풍토와 제도, 관행을 올바로 바꾸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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