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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깡패 코끼리가 아니라 돌고래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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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깡패 코끼리가 아니라 돌고래가 돼라

[창비주간논평] 국가 정보기관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국정원에 취직한 모든 직원은 ('7급 공무원'뿐 아니라!) 원장 앞에서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하도록 되어 있다. "본인은 국가 안전 보장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을 발휘하여 국가에 봉사할 것을 맹세하고, 법령 및 직무상의 명령을 준수·복종하며, 창의와 성실로써 맡은 바 책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직원도 분명 이런 선서를 하고 근무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의 유머', '뽐뿌' 같은 곳에서 수십 개의 아이디를 동원하여 댓글을 달거니 지우거니 하며 야권을 비판한 것이 국가 안전 보장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법령 및 직무상의 명령을 제대로 준수·복종한 것인지, 창의와 성실을 발휘하여 맡은 바 책무를 다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의 해명처럼 공식 업무를 수행했던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간엔 한국판 워터게이트라느니 대선 무효가 될 수도 있다느니 하는 엄청난 발언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국정원, 국가 안보와 시민 인권의 갈림길에서

말이 나온 김에 정보기관의 존립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근본적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군대가 없는 평화국가 코스타리카에도 보안기관이 있고 심지어 바티칸의 정부 내각에 해당하는 국무성에서도 정보 수집 활동을 할 정도이니 정보기관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그 질문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다만 이 글에서는 이른바 '정상적' 민주 국가에서 정보기관의 존립과 운영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고전적인 질문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번 사건이 지닌 문제들을 짚어보기로 한다.

우선 두 가지 전제를 해두자. 하나, 정보기관은 국가의 안전 보장을 위해 대중의 이면을 파악하려 한다. 즉 공동체의 보전을 위해 그 구성원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할 개연성이 높은 일을 한다. 모순적 존재이자, 목적과 수단이 정반대가 되기 쉬운 기관이다. 둘, 국외 정보와 국내 보안 정보 간의 업무 구분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지구화 상황, 냉전 종식, 북한출신 이주자들의 도래,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 등으로 국내외 상황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지 않은가. 국내 보안 정보를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정보기관이 대외지향적이냐 대내지향적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후자일수록 권위주의적 체제의 특성이기 쉽고, 그럴수록 정보기관의 주요 업무가 사회 각계각층 침투와 시민의 인권 침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 정부' 10년 동안 국정원 상층부에 개혁적 마인드를 지닌 인사들이 진출했고 과거사 규명과 같은 일을 하기도 했으나, 최근의 대내지향적 행보를 보면 국정원이 과거로 회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게 든다. 이렇게 되면 정보기관이 시민들의 자유를 실제로 침해하느냐 여부를 떠나 이른바 '냉장 효과'가 발생하여 언론·사상·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고삐 풀려 날뛰는 깡패 코끼리'를 제어하는 방법

정보기관이 정익(政益)을 위한 정책 친화적 정보에 치중하는지, 국익(國益)을 위한 정책 중립적 정보에 집중하는지 하는 문제도 민감한 사안이다. 이 점에서도 MB정권의 국정원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국정원장 자리부터 대통령의 수족을 앉힌 데다 시민운동가나 학자를 고소하는 등 노골적으로 정권 보위에 나서지 않았던가.

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 방식에 대한 질문도 해야 한다. 입법부, 사법부, 법 집행기관 등이 정보기관을 견제하는 것을 수평적 통제라 한다. 그러나 이번에 경찰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수평적 통제는커녕 경찰 스스로 정치의 충견 노릇을 했다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수직적 통제는 정보기관의 지도부가 하향식으로 직원들을 감독하는 것인데, 이번엔 국정원 스스로 문제의 직원을 옹호하고 나섰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시민사회와 언론이 상향식으로 정보기관을 통제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영향력이 큰 보수 언론들이 대선 정국에서 국정원을 제대로 감시했다고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국정원 직원의 아버지를 인터뷰해서 야당을 비판하는 무기로 삼기도 하지 않았던가? 요컨대, 이번 사건은 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가 모든 차원에서 실종된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되레 언론인을 고소하는 국정원을 보고 있자니 "고삐 풀려 날뛰는 깡패 코끼리"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이는 1975년 카스트로 암살 미수 사건 청문회를 주관했던 프랭크 처치 미국 상원위원이 CIA를 질타하면서 썼던 말이다.

▲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 김 모 씨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3차 조사를 받은 뒤 변호인과 함께 경찰서를 나서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정보기관 공직자라면 더욱 철저한 윤리 의식을

끝으로, 정보기관 공직자들의 직업윤리 문제가 있다. 국정원은 자체적으로 '직원윤리헌장'을 제정해놓았다. 높은 수준의 전문직 행동 규범을 규정해놓은 강령일 것이라고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그게 아니다. ①정의와 진리의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 ②먼저 알고 앞서 대비하여 국가의 안전을 확고히 보위. ③양질의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여 국익 증진에 기여. ④개인의 명예를 잃는 것이 전체의 명예를 잃는 것. ⑤동료애로 화합하고 평생 직원으로서 긍지를 소중히 간직. ⑥보안을 생명으로 알고 직무상 기밀은 끝까지 준수.

이런 내용은 정보기관 종사자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기본 직무이자, 목표 완수와 조직 보위를 강조한 가치관에 불과하다. 결과에 관계없이 추구해야 할 동기론적 윤리관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것들을 '윤리'라고 내세울 정도이니 국정원의 의식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마 ① 정도가 윤리헌장에 가까운 내용일 텐데, '정의와 진리'라니 이 역시 모호하고 생뚱맞다.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받들겠다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민의 안전 및 인권을 수호하겠다는 의지 정도는 피력해야 국가기관의 윤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의 의식 구조와 민주적 통제 결여라는 구조적 문제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지 않았나 싶다. 결국 정권의 민주적 통제 의지, 조직 문화의 철저한 혁신, 시민사회 및 언론의 수직적 비판과 감시가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우리는 민주 체제라는 조련사에 복종하는 영민한 돌고래 같은 국정원을 원한다. 고삐 풀린 깡패 코끼리? 독재시절이 그립다고 고백하지 않는 한 상상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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