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기 3일 전 일본에서도 중의원 선거가 있었다. 결과는 자민당이 전체 480석 중에서 294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되었고, 31석을 획득한 공명당과 연립하여 총 325석(과반은 241석)으로 자민당과 공명당이 연립정권을 구성하게 되었다. 반면 50년 만의 정권 교체를 통해 여당이 되었던 민주당은 기존의 230석에서 57석으로 의석이 줄어 궤멸에 가까울 정도로 참패했다. 또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 도지사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도 54석을 얻어 이제는 일본 전체의 우경화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번에 집권한 자민당의 주요 공약을 살펴보면, 일본 내부에서도 우려가 크다. 현재 일본의 경기 침체와 격차 문제를 해결하려면 좀 더 진보적인 복지국가 정책이 필요함에도, 이전의 자민당 방식인 토건국가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당시 자민당 아베 총재는 "일본은행이 건설 국채를 가능하면 전부 사게 하겠다"고 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10년간 200조 엔을 투입하는 이른바 대규모 '국토강인화(国土強靱化)'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관계를 강화하여 건설 국채를 모두 일본은행이 사게 하는 방식으로 금융의 양적 완화를 시행하고 건설 사업을 다시 활성화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법인세도 대담하게 인하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사회보장 관련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생활보호 대상자의 지급 수준을 현재보다 10%나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과감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아사히>조차 사설을 통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朝日新聞, 2012년 11월 20일). 자민당은 우리나라의 "부자 되세요"나 4대강 개발과 같은 건설 국가적인 방식으로 다시 한 번 대규모 토목 사업을 전개하는 등 지방에서 표를 얻기 위해 과거에 단골 메뉴로 활용하던 '이익 유도형 정치'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을 공식화하였다.
이미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에 부동산 가격이 30%가 떨어진 것이 아닌, 30%로 떨어진 심각한 "거품 붕괴"를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지금도 전체 국가 GDP의 200%가 넘는 거대한 재정 적자를 껴안고서 어렵게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엔화를 발행하여 메우면서 다시 한 번 전국적으로 건설 사업을 대규모로 벌이고, 그로 인한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무제한 방출"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의 재정 적자 규모는 882조 엔으로 한화로 1경440조 원에 달한다. 일본 인구 1억2700만 명에게 1인당 680만 엔(한화 8000만 원)이 넘는 엄청난 빚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엔화가 국제 결제 통화가 아니고 일본이 국제통화의 발권 국가가 아닌 이상, 미국과 달리 일본은 결국 무리한 경기 부양 때문에 장기 침체의 늪에 더욱 빠져들 것이고, 국가 채무는 더 부풀려지고, 사회적 격차와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국민은 민주당에 대한 반감과 한국을 상대로 한 독도 문제, 러시아를 상대로 한 쿠릴열도 문제, 중국을 상대로 한 센가쿠열도 문제 등 주변국과 벌인 영토 분쟁으로 나타난 국민 감정 때문에 이런 자민당의 무리한 토목건설 중심의 경기 부양 정책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일본을 대표하는 저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최근 국민의 성향을 "영토 문제가 국민 감정의 영역으로 들어와 취한 상태"로 비유하며,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남는 것은 두통뿐"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해 12월 16일 총선 현황판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AP=연합 |
일본 민주당의 붕괴가 자민당 재집권의 가장 큰 요인
정치적으로 극우적인 자민당의 아베 총재가 다시 정치 일선에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20년간 계속된 경기 불황, 심각한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 그리고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격차(양극화) 문제,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방사능 유출 사건 등 날로 악화하는 일본의 국내적 상황 등 다양한 원인이 모두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영토 분쟁 등 대외적인 이슈를 통해서 분위기 전환을 모색하려는 정치가들의 의도에 일본 국민이 따라간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에 있다.
집권 세력이 된 민주당에서는 3년 전의 획기적인 매니페스토 선거를 통해 보편적 복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던 진보 개혁적인 민주당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편적 복지의 확대와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의 열망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음에도, 국민의 열망과 요구를 외면하고 적절한 증세 정책 제시나 토목건설과 결별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자 결정적으로 민심이 돌아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민주당도 초기에는 공약대로 아동수당과 고등학교 무상 등록금 제도, 고속도로 통행료 폐지 등의 보편적 복지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하면서, 재원 마련을 위해 '체육관 예산' 심의 등의 적극적인 방식을 도입하여 토목 예산을 삭감하기도 했었다. 또한, 공공기관의 체질 개선과 함께 종래 관료 중심의 정책에서 정치 주도의 정책으로 바꾸는 과감한 개혁을 도모하였지만 이러한 개혁은 관료들의 조직적인 반발과 재벌 대기업들의 체계적인 반대, 그리고 보수 언론의 치밀한 방해 공작에 직면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렇게 민주당 정권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발생했던 쓰나미와 연이은 원전 사고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책이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소득에 비례하여 누진적으로 부담하는 소득세 인상 정책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부담을 지도록 하는 역진적인 소비세 인상 정책으로 그동안 민주당에 우호적인 세력이었던 시민·사회단체와 진보 세력들조차 등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의 민주당은 집권 초기부터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로 대표되는 '09년 매니페스토'로 모인 복지국가 세력과 간 나오토 전 총리, 노다 전 총리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 합쳐서 만들어진 정당이었다. 그러나 복지국가 쪽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포기와 정치자금 문제로 9개월 만에 하차하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은 신자유주의 쪽으로 변화되었다.
하토야마 이후 집권한 간 나오토 전 총리와 노다 전 총리는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 부응하여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추진하였으며, 대내적으로는 부자 증세 대신 소비세 증세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09년 매니페스토'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돌아섰다. 결국, 소비세 증세에 대한 반발로 민주당의 핵심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탈당하여 소속의원 48명과 함께 국민생활제일당(현 일본미래당)을 창당하면서 민주당은 양분되었다. 또 총선 직전에 소비세 인상과 TPP 추진에 동의하는 인사만 공천하겠다는 공천 조건에 대한 반발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당은 다시 나뉘었다.
결국 생활 정치를 중심으로 복지국가 정책을 추진하겠다던 민주당이 스스로 자신들의 선거 공약을 폐기하고 신자유주의로 전환한 것이 정치 변화를 바랐던 국민을 실망시켰고, 그 틈을 타서 극우 성향의 아베 총재가 다시 정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즉 여러 가지 대내외적인 변수가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민주당 정권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개혁을 포기하면서 급격하게 민심이 떠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정권의 근간이 흔들렸던 것이다.
아베 총재는 선거 기간 동안 집요할 정도로 민주당의 무능과 진정성 문제를 공격하였다. 이웃 나라인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는 G2의 하나로 급부상하고, 상대적으로 지금까지 동북아의 패자였던 일본의 급격한 쇠퇴라는 위기감이 영토 분쟁을 통해 촉발되면서 강한 일본에 대한 동경이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갔다. 마치 어려워진 민생에 대한 50대의 불안과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가 박근혜 후보를 불러내어 힘을 실어주었듯이, 일본 국민은 강한 일본에 대한 향수로 아베의 자민당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한국의 민주당은 일본 민주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결국 일본 민주당은 태생부터 이질적인 세력들이 모인 잡탕 정당으로서 한계를 가졌고, 이에 더해 국민이 기대하였던 복지국가 정책보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지지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조차 자민당과 차별성 있는 정책적 이슈를 제시하지 못했으니 총선 패배는 당연했다. 지난 2009년 선거에서는 경제 불황과 양극화로 고통받던 국민의 삶을 부각해 집권했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야당인 자민당이 진정성과 일관성에서 우위를 보였는데, 최근에는 소비세 인상으로 악화된 여론을 달래기 위해 자민당이 먼저 소득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표방했던 일본의 민주당이 우선하여 해야 했을 일들을 지금의 집권 자민당이 추진하면서, 역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한국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새누리당 진영이 민주당보다 복지국가와 경제 민주화를 더 잘할 듯 보임으로써 집권한 것처럼, 비슷한 일이 일본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일본의 선거 결과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강한 신념과 함께 실력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일본 민주당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복지국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복지국가 정책은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고 지속해서 유지될 수도 없으므로,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본의 민주당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도 일본 민주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반(反)복지 세력의 반발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선 공약을 수정하거나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일본 민주당의 전철을 밟을 것이고, 결국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박 당선자의 공약 중 상당 부분이 민주당과 겹치므로, 야당과 협조하면서 국민만 바라보고 여야를 아우르는 대통합의 복지국가 건설을 추진한다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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