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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현대차 정규직 노조, 동료를 노예로 만들 셈인가"

[현장편지] 문용문 지부장께 쓰는 공개 서신

2013년 새해 첫 여행을 희망버스 12호차를 타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철탑 농성장과 한진중공업으로 다녀온 후 울산으로부터 긴박한 소식들이 연이어 날아들었습니다.

1월 7일 처음으로 들려온 소식은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을 1월 9일부로 정규직으로 발령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최병승 조합원은 해고된 지 8년 만에 그토록 간절했던 정규직 전환을 이뤘는데 "너무나 일하고 싶지만 나 혼자 정규직으로 일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신규 채용을 강행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현대차는 2013년까지 1552명을 신규 채용하는데 85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에서 5100명이 원서를 접수했다고 밝혔고, 언론들은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을 포함해 마감일인 1월 9일에는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신규 채용 원서를 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1월 8일 오후에는 울산지방법원 집행관과 용역경비 100여 명이 송전 철탑 농성장에 들어와 강제 퇴거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들은 현수막 10여 개를 떼어내고 농성 천막을 철거하려고 했으나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지역 노동자들이 연대해 간신히 막아냈습니다. (☞ 관련 기사 : 현대차 농성장 철거 시도…노조 "고등학생 용역 알바 동원")

하지만 법원은 다시 농성장을 철거할 예정이고, 오는 14일까지 천의봉·최병승 조합원이 철탑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1인당 3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15일부터 강제 퇴거할 계획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조직적으로 불법을 저질러온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에 대해서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한 법원의 새해 첫 선물이 '비정규직 농성장 강제 철거'였습니다.

▲ 8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송전탑 점거 농성장인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 주차장에서 울산지방법원의 집행관(오른쪽)이 플래카드를 철거하려 하자 박현제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장이 몸으로 막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는 신규 채용 강행, 정몽구 손 못 대던 법원은 강제 퇴거 시도

지난해 12월 27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일부를 선별 채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해 노사 간의 특별 교섭이 중단되었고,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회사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신규 채용 강행과 농성장 침탈에 이어 회사는 파업을 이유로 비정규직 노조 간부와 조합원에 대한 대대적인 징계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마 그 대상은 신규 채용 원서를 내지 않은 조합원들일 것입니다.

회사는 "비정규직 노조가 현장 정서를 외면한 채 비현실적인 주장과 철탑 농성을 고집하고 있다"며 "현실을 고려하면 조만간 투쟁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비정규직 노조의 '모든 사내 하청 정규직화'라는 요구와 투쟁이 실패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새해 벽두에 시작된 대대적인 공격

이 전쟁의 와중에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문용문 지부장은 8~9일 아산공장과 전주공장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만났습니다. 그가 강조해왔던 △최병승 정규직 전환 △불법파견 정규직화 방안 △해고자 복직 등 3대 방향에 대해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 설명하겠다는 것입니다.

문용문 지부장은 지난해 12월 27일 "이번 투쟁과 교섭에서 불법 파견 문제만큼은 해결해야겠다는 목표로 최병승 동지는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하고, 10년 동안 피해를 본 100여 명의 해고자를 복직시키는 사측 제시안을 이끌어내기도 했다"며 "또한 수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도출해내고자 노력 중이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신규 채용 합의에 반대하며 교섭을 막자 문 지부장은 특별 교섭 중단을 선언하며 비정규직 노조에 대해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했습니다.

다음날인 12월 28일 열렸던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의 긴급 대의원 간담회에 제출된 문서 <불법파견 13차 특별교섭 사측 제시안 비교>를 보면 문용문 지부장이 왜 목숨을 걸고 철탑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조가 반대하고 있는데 노사 합의를 하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가 불법 파견 정규직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현대자동차지부(정규직 노조)는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인 최병승의 근속을 2년이 경과한 2004년부터 인정하고, 소급 임금 등은 소송 결과에 따른다는 내용에 대해 '대법 판결 이행 약속, 정규직 전환 쟁취'라며 '진전된 내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 최병승은 8년 전인 2004년 12월 노동부에서 불법 파견 판정이 났을 때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했습니다. 최소한 2007년 6월 1일 최초의 법원 판결이던 현대차 아산공장에 대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불법 파견을 인정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나왔을 때 정규직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후 엇갈린 판결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최소한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고등법원의 잘못된 판결을 파기하고, '현대차 사내 하청은 불법 파견이므로 정규직'이라고 판결했을 때 최병승을 두말없이 정규직으로 발령 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차는 2011년 2월 20일 파기환송된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난 뒤에도 정규직으로 발령 내기는커녕 도리어 '해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고,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이 또다시 현대차의 불법 파견을 확정한 최종 판결을 내려도 1년이 되도록 '쌩까고' 있었습니다. (☞ 관련 기사 : 김진숙 "박근혜, '정리해고 자제' 말할 게 아니라…")

대법원까지 8년 싸운 최병승…그간 정규직 노조는 어디에?

현대자동차가 1월 9일자로 정규직 발령을 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대차 회사가 지난 10년 동안 저질러온 불법을 인정하고, 대오각성해서 이제라도 불법을 바로잡겠다는 뜻입니까?

1월 9일 현재 85일째 철탑 농성을 하고 있는 최병승 조합원은 신규 채용을 중심으로 한 노사 합의에 반대하며, "동료들을 배신하고 나 혼자 정규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 발로 철탑에서 내려와 출근하지 않을 테고, 회사는 근무할 의사가 없고 인사명령 불이행으로 해고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 관련 기사 : 현대차, '최병승 농성 안 풀면 정규직서 해고' 시사)

2004년 노동부 판정부터 2012년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8년 동안 정부와 법원이 불법 파견이라고 했는데 현대자동차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정규직으로 발령 낸다는 것이 '진전된 내용'이라고요?

그동안 정규직 노조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문용문 지부장, 이게 정말 '진전된 내용'인가?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문용문 집행부는 2016년 상반기까지 35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회사의 안에 대해 "채용 시기가 구체화됐고, 고용 방식은 신규 채용 방식 외 논의 여지를 밝혔다"며 이것 역시 '진전된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은 <현대차지부가 구상한 단계적 정규직화 방향성>이라는 문서에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요약하면 불법 파견 정규직화 규모를 회사가 제시한 3500명에서 확대하고, 사측이 원하는 신규 채용을 최소화해서 '근속을 우대하는 정규직화'를 쟁취하며,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경력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8500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 중에서 4년 동안 4000명 이상을 근속을 인정한 경력직으로 신규 채용해서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절반을 경력직 신규 채용으로?

현대차 문용문 지부장의 방향대로 노사가 합의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올해 회사는 8500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 중에서 '채용 기준에 적합한' 1552명을 경력직 신규 채용으로 뽑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정규직 정년퇴직자 자리 등 필요한 공정에 배치됩니다. 이들이 일하던 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채워집니다. 그 누군가는 물론 비정규직이겠죠.

경제 위기가 몰아닥치고 자동차가 팔리지 않아도 현대차가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지킨다고 가정해 2016년 상반기까지 4000명 이상이 정규직이 됐다고 칩시다.

회사의 채용 기준에 적합하지 않아 채용되지 않은 4500명과 비정규직이 일하던 자리에 채워진 노동자들은 노사 합의를 통한 공정 재배치로 불법 시비에서 벗어난 '합법 도급' 노동자가 될 것입니다.

회사는 정규직 신규 채용 때 이들을 우대하겠다고 했지만, 경제 위기와 자동차 판매 감소, 신차 생산과 자동화 등 수많은 이유로 언제든 쫓아낼 수 있게 됩니다. 5000명 이상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영원한 노예의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차지부가 주장하는 '경력직 신규 채용'은 불법 파견을 은폐하고 면죄부를 주는 것입니다.

사내 하청 5000명은 영원한 노예의 신분으로

'경력직 신규 채용'으로 노사가 합의하면 현대자동차는 '10년 동안 불법을 저질러온 회사'임을 감추고 '사상 최대 규모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회사'라고 언론에 대대적인 홍보를 할 것입니다. 정몽구 회장은 범죄자에서 존경받은 기업가로 둔갑하게 됩니다.

현대자동차 회사가 13차 특별교섭에서 제출한 <사내하도급 관련 별도 합의서>의 내용에는 불법 파견을 인정한다는 표현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현대자동차 종업원 및 사내 하도급 인원의 고용 안정을 확보하며', '노사는 사내 하도급업체 인원의 차별 해소를 위하여 사내 하도급 업체 인원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등의 내용은 모두 노사가 '사내 하도급 업체'를 불법 파견 업체가 아니라 합법 하도급 업체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노사 합의는 이후 재판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 '불법 파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 울산공장 송전철탑에 오른 천의봉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왼쪽)과 최병승 조합원(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합의서에 불법 파견 인정 한마디도 없어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문용문 지부장은 '경력직 신규 채용'을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새로운 역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문을 단 한 번이라도 정독했다면 일부 선별적인 경력직 신규 채용이 대법원 판결의 정신을 부정하고 불법 파견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2010년 7월 22일과 2012년 2월 23일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라는 자동 흐름 방식의 자동차 조립 생산에서는 합법적인 도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조립 생산 공정의 사내 하도급은 불법이기 때문에 생산 공정을 사내 하청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노사 합의서에는 현대자동차가 직접 생산 공정이든 간접 생산 공정이든, 1차 하청이든 2~3차든, 2년 이상 근무자든 2년 미만이든 '사내 하청(사내 하도급)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야 합니다. 합의서에는 사내 하도급을 인정하는 어떤 표현도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지난해 8조1000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고, 올해 10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남길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자동차에 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백번을 양보해서 '당장 모든 사내 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1~2년 안에 사내 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됩니다.

올바른 합의서 내용은 '사내 하청 사용 금지'

현대자동차 문용문 지부장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대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회사입니다. 문용문 지부장이 분노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비정규직 노조가 아니라 바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입니다.

2005년 지엠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 김학철 창원지부장과 간부들은 노동부에서 불법 파견 판정을 받은 900명에 달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일일이 만나 노동조합으로 조직했으며, 함께 싸워 감옥에 갔고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해고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2010년 3월 현대자동차지부 전주공장위원회 이동기 의장은 비정규직 노동자 18명의 해고에 맞서 정규직 노동자들을 설득해 세 차례의 잔업 거부와 공동 투쟁을 벌여 '아름다운 연대'를 실천했습니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불법 파견 사용에 대해 근본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방치하고, 때로는 부분적인 합의를 해준 사실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깊이 반성한다. 불법 파견에 대한 더 이상의 묵인 방조는 공동 범죄 행위라는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로 불법을 합법적인 정규직화를 통해 올바로 시정해 나갈 것이다."

2005년 1월 17일 현대자동차 전·현직 정규직 노조위원장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며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입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전·현직 노조위원장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굴뚝과 철탑에 오르고, 수십 일을 단식 농성을 하고, 연대 파업을 벌여 감옥에 가고, 해고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매일 아침 공장에서 출근 투쟁을 할 때 그들 옆에 선 전직 노조위원장의 얼굴을 본 기억도 없습니다.

2013년 1월,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불법 노동의 공범으로 남을 것인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아름다운 연대의 시작이 될 것인지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문용문 지부장의 답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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