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시간 중에서도 특히 최근 들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노동시간이다. 한 정치인이 표방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한국 사회 노동자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는 한국의 노동시간에 지친 노동자들은 오늘도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야근에 돌입한다.
야근만 있는 삶
오랫동안 장시간 노동은 미화되어 왔다. 늦게까지 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쉬는 날도 없이 회사에서 죽치는 사람이 바로 회사의 필요에 헌신하는 이상적인 인재라는 공식이 받아들여졌다. '장시간 노동'은 곧 '바쁨'과 동의어이고 '바쁨'이 '유능함'의 증거로 활용되다보니 당연히 야근은 피할 도리가 없다. 야근을 안 하면 일을 안 하는 것처럼, 혹은 일이 적은 것처럼 보인다. 옆 사람이 야근을 하면 나도 해야만 될 것 같다. 사실 모든 근로시간이 반드시 근무시간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야근을 부추기는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눈치껏 야근'도 만연하지 아니한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이나 온라인 쇼핑에 전념하다보면, 이래서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인가 싶다.
물론 업무량이 너무 많다. 그리고 일의 특성상 시간외 근무가 필요한 경우도 당연히 있다. 문제는 야근을 엄청나게 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고 정말이지 너무 바빠도 인력을 더 충원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인재는 이 모든 일들을 야근을 불사하며 해 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건강하면 이상하다. 만성피로와 두통에 시달리고, 어깨는 늘 아프다.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회사 일에서 손을 뗄 수가 없어 회사 근처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와 일을 병행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아침마다 종합 비타민과 피로 회복제를 삼키다보면 이러다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쉴 수 없으니, 휴가인들 온전히 갈 수 있겠는가. 주어진 연차를 다 쓰자니 눈치 보이고, 사실 일이 많아 휴가 낼 시간도 없는데 11월이 되자 어김없이 남은 연차는 다 소진하라는 방침이 내려왔다. 허울만 좋기로는 회사 내 여러 가족친화정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가족 양립 지원을 위해 가족간호휴가나 탄력근무제 등을 마련해 두는 회사도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있는 줄도 모르거나, 안 쓰거나, 못 쓰니 허울뿐이다.
일-가족 양립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희생해야 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아픈 부모님을 간병하려면, 자녀의 학교를 방문하려면 연차를 사용해야 하는 현실이다. 평소 퇴근이 늦다보니 아이들 얼굴 보기도 힘들어 미안한 나머지 황금 같은 주말은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의 시간은 회사의 시간이며, 토요일과 일요일 동안 나의 시간은 아이들의 시간이다. 내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시간 관리 서적이 끊임없이 출판되고 꾸준히 팔리는 이유는 시간 압박을 느끼지만 하루 24시간은 정해져 있어 내 마음대로 늘일 수 없으니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 관리 서적도 속 시원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대부분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탓할 뿐이다.
오늘만 있는 삶
하루 24시간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은퇴 이후의 노년기 삶에 대해서 준비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최빈사망연령이 90대가 되는 시점인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와 있다.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긴 여성들은 2020년이면 100세 시대를 맞는다고 한다. 80세 시대와는 달리 100세 시대에는 은퇴 이후 살아가야 할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 "인생 이모작"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가운데 특히 남성보다 오래 사는 여성에게 노년기의 시간과 생활에 대한 무게는 더 크다.
은퇴 이후의 자신의 삶이 어떠할 것 같은지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은 "폐지 줍는 노인" 혹은 "제주도 푸른 밤"이다. 은퇴 이후 삶에 대한 막연한 절망과 막연한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노년기에 대한 그림이나 준비가 구체적이지 않은 데에는 장시간 노동의 역할이 크다.
자신의 생활과 삶을 돌볼 여지를 주지 않는 장시간 노동은 어느 날 그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을 대비하지 못하게 한다. 은퇴에 대한 준비가 막연할수록 실질 은퇴연령은 점점 더 늦춰질 것이다. OECD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30개 회원국의 40세 이상 중고령층을 대상으로 실제 평균 은퇴연령이 얼마인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은퇴연령은 남성 71.2세, 여성 67.9세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40세 이상 중고령자는 정년퇴직 후 남성은 약 11년, 여성은 약 8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남성이 퇴직 후 가장 장기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한국 여성 역시 멕시코 여성(10년) 다음으로 노동시장에 오래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한국노동연구원, 2009). 실질은퇴연령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은퇴 이전에 노후대비를 충분히 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단순화하자면 젊은 시절의 장시간 노동이 생애를 통틀어 장기간 노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노동자의 기준
조앤 윌리엄스(Joan Williams)의 "이상적 노동자 규범(ideal worker norm)" 개념은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이상적 노동자란 전일제에 시간 외 노동을 하면서 양육시간이나 가족시간은 소비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노동과 노동조직이 이러한 규범 위에 구축되면, 돌봄 제공자는 이상적 노동자 상을 실천할 수 없다. 이상적 노동자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중 핵심은 이동이 자유로워야 하고 회사를 위해 모든 시간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존에 필요한 노동을 전담해 줄 사람 또한 필요하다. 이상적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누군가의 조력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별화된 사회에서 이상적 노동자로서 수행하는 사람은 주로 남성이고, 이상적 노동자를 돕는 조력자는 주로 여성이 된다.
여성을 돌봄자로 전제하는 이상적 노동자 규범은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선진국형 가족 모델인 1.5인 맞벌이 모델을 언급하면서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일-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보육지원을 확대하고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남성들이 이상적 노동자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성들이 조력자로서 역할을 수행하야 하며, 여성들이 가구소득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면 단시간 근로를 통해 생계를 보조하며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한다는 논리가 기반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가족 양립 정책은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돌봄을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여성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집으로 돌아가 돌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불평등한 시간
이상적 노동자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성별에 따라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비정규직이 여성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듯이 돌봄 제공자로 전제되는 여성들은 간헐적이고 단절적인 비정형의 고용패턴을 갖는 경우가 남성들에 비해 훨씬 많다.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결과는 맞벌이라 할지라도 가정관리시간이나 가족 보살피기 시간을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많이 할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간사용 분포는 노년기에도 이어진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은퇴 남녀 모두 연령이 증가할수록 TV 보는 시간이 늘어나지만 남성이 4시간 이상으로 여성보다 1시간 많은 반면, 남성의 가사활동 시간은 여성의 4분의 1 수준인 1시간 안팎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노후는 가난하고 아픈 시간이 될 확률이 남성보다 높다. 은퇴 전 연속적이지 않은 고용으로 인해 저축과 자산을 형성할 기회가 많지 않은 여성들은 노후 자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결혼 안에 있는 여성들이라 할지라도 남편과의 생활비 및 남편 간병 비용으로 자산을 사용한 뒤 남편 사망 후 본인의 생활비나 간병비는 충분치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간규범을 넘어서 : 노동시간의 재구성
일과 자신에 대한 돌봄, 타인에 대한 돌봄, 여가를 통한 재충전, 온전한 쉼은 필요한 시기가 따로 있지 않다. 이러한 필요와 요구는 언제나 동시에 발생한다. 하지만 현재의 노동시간 규범은 일에만 헌신하거나 돌봄에만 매진할 것을 요구한다. 여성도 남성도 생계 부양자인 동시에 돌봄 제공자이어야 하고, 자신을 계발, 발전시킬 권리를 갖고 있으나, 현재의 노동시간 규범은 일과 돌봄을 동시에 적정하게 수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남성에게서는 돌봄의 의무와 권리를, 여성에게서는 노동의 의무와 권리를 빼앗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일차적으로 희생되는 것은 자신을 돌보는 시간과 건강이며, 미래 설계 혹은 노년의 삶에 대한 기획은 언제나 뒤로 미뤄진다.
이에 노동시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노동시간은 누구나 적정하게 일하고 적정하게 돌보며 적정하게 쉴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이때 재구성되는 노동시간은 하루의 근로시간과 생애주기를 모두 포함한다. 하루의 노동시간 재구성은 실근로시간을 단축하여 노동이 과도하게 일상생활과 건강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생애주기 재구성은 일생 동안 삶을 지속하기 위한 인간의 다양한 활동이 순환되도록 함으로써 생애의 많은 시간 동안 "일만" 하다 대책 없는 노년기를 맞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시간 재구성은 이상적 노동자 규범의 재구성을 전제한다.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훌륭한 노동자라는 전제가 흔들리지 않는 한, 노동시간의 재구성은 불가능하다. 이상적 노동자 규범에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돌봄의 중요성이 포함되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일 이외의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실근로시간 단축이나 쉼과 노동, 기획의 시간이 공존하는 생애주기로의 전환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 한국여성민우회가 제안하는 성평등복지국가 정책과제 1. 점심시간 유급화 근로기준법 50조에 따르면 현행 노동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주 40시간, 1일 8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점심시간 유급화는 '휴게시간 제외' 부분을 '휴게시간 포함'으로 개정하여 실근로시간을 단축시키는 정책이다. 노동시간 단축 정책들 중 점심시간 유급화를 우선 과제로 제시하는 이유는 기준 노동시간의 양 자체를 재설정하는 제도, 소득감소 없이 실노동시간을 단축시키는 제도, 그리고 휴식시간이 생산시간과 배치되지 않으며 생산시간이라는 동전의 다른 한 면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노동시간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담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5일제' 시행이 토요일은 당연히 휴일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냈듯이 '점심시간 유급화'로 6시 퇴근에서 5시 퇴근으로 하루 노동시간의 기준자체가 달라지며, 하루 중 1시간의 휴식은 하루 노동시간의 전제이므로 노동시간처럼 지불되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2. 노동안식년제 안식년제는 일정기간 근속한 경우 재충전을 위한 휴직을 쓸 수 있는 제도로 이미 외국계 기업과 대기업 임원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 부분적으로 도입되어 있다. 노동 안식년제는 이 제도를 사회적 고용복지제도로 확대해,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이든,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이든, 경력이 연속적이든 단절적이든 일정 기간 일한 뒤에는 누구나 휴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기준 노동생애주기를 재구성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고용보험에 기여한 햇수를 기준으로 안식년 휴직 신청 자격을 부여하고 안식년 급여를 고용보험에서 부담하는 형태를 우선 제안한다. 현재는 노동생애주기 자체에 휴직이 일반적이지 않고 돌봄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요구가 있는 여성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분위기가 자리잡혀 있다. 하지만 안식년 휴직이 일반화되면 휴직을 쓰는 노동자가 기업에 부담을 주는 예외적 노동자가 아니라 보편적인 노동자가 될 수 있다. 즉, 기준 노동자 모델 자체가 변할 수 있다. 또한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작업장 내에 상시적으로 휴직자가 있을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10명분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3명의 휴직을 전제하고 13명을 고용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구상해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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