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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악마인가 희망인가

[해외 시각] '차베스 4선'을 바라보는 두 시선

지난 7일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우고 차베스 현 대통령이 4선에 성공했다. 남미 좌파 정치세력의 한 축인 차베스의 승리에 남미 각국은 환호를 보낸 반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미국에서는 일리애나 로스-레티넨 하원 외교위원장(공화당)이 투표조작 혐의를 제기하는 등 그의 승리가 탐탁잖은 분위기다.

차베스가 1998년 집권한 이후 베네수엘라의 변화에 대한 서방 언론의 평가도 박한 편으로 남미에서 가장 높은 폭력범죄율, 높은 인플레이션, 열악한 사회기반시설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반면에 브라질 출신 언론인 페페 에스코바 <아시아타임스> 통신원이 분석하는 차베스 당선의 의미는 정 반대다. 에스코바는 8일(현지시간) <알자지라>에 기고한 칼럼(☞
원문 보기)에서 차베스가 소수 엘리트에 의해 장악되어 왔던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빈곤을 개선하고 대외 의존을 줄여나갔음을 강조했다.

남미의 시각으로 보면 차베스는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과 함께 남미가 서방의 선진국에 종속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인물이다. 차베스식 정책이 보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베네수엘라 내부의 갈등과 부패를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서방의 지나친 '차베스 악마화'는 남미의 현실을 냉정히 인식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장애가 된다. 에스코바가 쓴 칼럼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4선에 성공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연합뉴스

차베스, 그가 또 다시 당선된 이유

그가 또 한 번 해냈다. 우익 범대서양주의자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는 우고 차베스는 유엔(UN)과 유럽연합(EU), 미주기구(OAS)의 감시 하에 극도로 투명하게 치러진 선거를 통해 공정하게 (베네수엘라) 대통령직에 재선출됐다.

이번 선거는 2가지 방향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우익에서 민주주의 옹호자로 개종한 (야당 후보) 엔리케 카프릴레스와 - 그는 워싱턴 컨센서스(*중남미 개도국의 미국식 발전모델을 지칭함. 역자)에 줄을 선 매판 계급를 대변하는 변호사다 - 차베스의 대결이다. 다른 하나는 남미의 진보 진영과 (남미 국가들이) 고분고분한 의존국(client state)이 되기를 바라는 빅브라더 사이의 대결이다.

차베스의 당선은 무엇보다도 (그가 주도한) 볼리바리안 혁명이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베스 정권은 많은 오류와 무절제한 개인 숭배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주권을 회복시켰고 공공서비스와 사회정책, 최저임금 인상 등에 부를 재분배했다. 차베스의 말처럼 '21세기판 사회주의'라고 불릴 수 있다. 남미에서 이는 확실히 보다 평등한 사회를 향한 길이다.

유세 과정에서 차베스는 스페인 식민지배에 맞섰던 토착민 테케 부족과 카라카스 부족을 통솔해 베네수엘라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통하는 지도자 구아이카이푸로의 이미지를 보이려 했다. '우리는 모두가 구아이카이푸로'라는 구호는 이 국가가 억압에 맞서 투쟁했던 토착 원주민들의 저항에 뿌리를 두고 세워진 나라임을 강조하면서 공감을 얻었다.

석유로 문맹을 근절하다

엄연한 사실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지구상에서 -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한 - 가장 큰 산유국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베네수엘라 석유는 소수의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엘리트들에 의해 개발되어 왔으며, 석유 수익이 교육이나 주거, 소득 개선에 기여할 가능성이 없었다.

차베스 정권의 기록은 수직적 구조의 사회를 어떻게 점진적으로 수평화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차베스 정부는 적어도 정부 예산의 43%를 사회정책에 사용했다.

실업률은 20%에서 7% 이하로 내려갔다. 지난 10년간 적어도 22개의 공립대학이 세워졌다. 교사 숫자도 6만5000명에서 35만 명으로 늘어났다. 문맹이 근절됐다. 대부분의 남미 국가에서 꿈으로 남아있는 농업 개혁도 계속되고 있다.

(반면) 지배계급은 확실히 즐겁지 않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또는 볼리비아의 지배계급이 그랬던 것처럼(심지어 파라과이의 지배계급은 적법성을 가진 민주정부를 물러나게 하자는 '합헌 쿠데타'(constitutional coup)를 조직하려 애썼다). 베네수엘라 지배계급도 10년 전 - 언론사의 지원을 업은 - 3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대중은 "너희들은 (이 전선을) 지나갈 수 없다"(No Pasaran)라고 말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카프릴레스 후보는 어쨌든 민주주의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2002년 군부의 3일 쿠데타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감옥까지 간 인물이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전체에서 가장 나은 지니계수를 - 불평등이 가장 적다는 의미다 - 기록한 나라다. 2012년 1월 라틴아메리카경제위원회(ECLA)와 라틴아메리카-카리브경제위원회(CEPAL)는 1996년부터 2010년까지 아메리카대륙 전체에서 빈곤을 가장 많이 개선한 국가가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라고 밝혔다. 동시에 미국인들은 베네수엘라를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행복한 국가'로 '꼽은 여론조사 기관 갤럽의 발표를 듣고 즐거워 했을 것 같다.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남미의 언론사들이 베네수엘라를 탈출해 마이애미에서 마티니를 홀짝이고 싶은 꿈을 꾸는 이들의 기사를 계속 내보내는 건 놀라울 게 없다. 사실은 유럽의 미래에 기대를 접은 스페인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베네수엘라로 오는 형편이다.

서방 언론사들의 차베스 악마화는 안쓰러울 정도로 희화적이다. 최근에는 그가 죽음에 임박했다는 보도가 매일 나오고 있다. 쿠바 의사들이 그의 암을 성공적으로 치료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힘든 것이다.

차베스를 악마화하려는 핵심적인 이유는 그가 지정학적으로 미국 정부가 부리는 변덕을 받아주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중국 지도자들과 매우 밀접하고 복합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여기에는 가까운 미래에 하루 100만 배럴의 석유를 제공하는 안이 포함됐다). 그는 이란이 평화적인 핵 프로그램을 진행한 권리를 지지한다. 그는 자신이 불법이라고 여겼던 나토(NATO)의 개입으로 쓰라린 결말을 맺기 전까지 (리비아의) 카다피를 지지했다. 그는 시리아에서 체제를 전복하려는 이들이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라면서 시리아 정부를 지지했다. 그는 볼리비아, 에콰도르에서 니카라과까지 남미 전체를 가로질러 멈추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됐다.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롬니 정부'는 물론이고) '오바마 2.0 정부'가 현실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이라는 조건에서 베네수엘라에 '개입'할 가능성은 반반이다.

차베스 모델과 룰라 모델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2년 5% 성장할 전망으로 아르헨티나(2%)나 브라질(1.5%)을 뛰어넘는다. 부분적으로 사회주의화된 경제가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많은 신용, 더 많은 정부투자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꾸준한 경제 성장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내부적으로는 계급 투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빈곤층은 적어도 하위중산층으로 올라설 것이다. 새롭게 출연한 중산층과 상위 중산층의 경우 보다 많은 과시적 소비를 하고 싶어한다. 차베스 정권의 심장부에 있는 암덩어리는 근본적으로 비효율성과 부패에서 기인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대단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의 좌파 사회학자) 제임스 페트라스의 주장처럼 차베스의 사회정책이 점진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핵심은 지역 정부와 정치권의 부패를 근절하는데 있다.

남아메리카의 통합 차원에서도 좋은 소식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이제 남미 공동시장(메르코수르)의 회원국이다. 경제적 통합이 심화되면 남아메리카 국가연합(우나수르)을 향한 정치적 통합도 가속화될 것이다.

남미에서는 피해갈 수 없는 '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post-Washington consensus)의 부상에 대해 많은 토론이 벌어졌다. 두 개의 주장이 대두됐는데 하나는 차베스식 사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브라질리아 컨센서스라 불리는 브라질식 모델이다.

칠레와 콜롬비아, 우루과이, 올란타 후말라 대통령의 페루까지도 브라질리아 컨센서스를 따르는 것 같다. 브라질리아 컨센서스는 확실히 오바마가 '그 친구'(the guy)'라고 불렀던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의 정책을 의미한다.

차베스식 모델은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인기가 높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나 페르난도 루고에 반대하는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 파라과이가 취했던 혼합형 모델이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 정책들은 사회주의 경제 수준과 독립적인 대외정책 추구와 같은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경제성장, 평등한 사회, 진정한 민주주의와 점진적인 통합에 중점을 두는 기본적은 모델은 모두가 공유한다.

차베스식 정책이 보다 냉철하고, 보다 덜 대립하며, 한 개인에 보다 덜 의존한다면 남미의 통합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에는 거대한 장애물이 남아 있다. 파라과이, 온두라스에서 벌어진 쿠데타, 환경파괴 논란을 부추켜 볼리비아의 불안정을 야기하려는 시도, 차베스 악마화에 대한 미 정부의 지속적인 집착 등이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압도적 다수가 잊지 않은 게 있다. 2008년 부시 정부가 재창설한 미 제4함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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