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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긴 펜싱 경기장 '1초'…원인은 유럽 텃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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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긴 펜싱 경기장 '1초'…원인은 유럽 텃세

[런던올림픽] 시계 미스터리…횡포에 울음 쏟은 한국 여검객

육상, 수영 못지않게 펜싱경기에서 시간 계측은 매우 중요하다. 올림픽 종목 중 사격의 총알 다음으로 빠른 게 펜싱의 검일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나는 검객들의 동물적인 공격에 의해 승부가 바뀔 수 있다. 국제펜싱연맹(FIE)의 공식 스폰서가 정확함을 생명으로 하는 스위스의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 티쏘(Tissot)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30일(현지 시각) 영국 엑셀런던 사우스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에페(epee) 개인전 준결승에서 시계는 고장난 듯했다.

올림픽 펜싱의 고장난 시계

신아람은 이 경기에서 연장 종료 1초 전까지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과 5-5 동점을 기록 중이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신아람이 결승에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신아람이 경기 전 추첨에서 어드밴티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신아람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누르고 꿈에 그리던 결승 무대에 오르는 순간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1초는 너무도 길었다. 세 번이나 하이데만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냈지만 여전히 경기장의 시계는 1초를 나타내고 있었고, 심판은 경기를 재개시켰다. 납득하기 힘든 경기 진행이었다.

신아람은 하이데만의 네 번째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채 6-5로 패했다. 경기 뒤 신아람은 눈물을 훔치며 피스트(펜싱 경기를 하는 무대)에 한 시간 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는 8000여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고서야 경기장을 쓸쓸히 빠져나갔다. 한국 코치진이 시간 계측 문제에 대해 항의를 해봤지만 국제펜싱연맹은 판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이 경기의 승자인 하이데만도 "시간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한 시간 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않던 신아람은 5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동메달 결정전에 나갔지만 이미 그녀는 심리적으로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펜싱 경기가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경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승부는 이미 결정나 있었다. 신아람은 중국의 쑨위제에게 힘없이 패했다.

▲ 시간 계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결승 진출에 실패한 신아람 선수. ⓒAP=연합뉴스

아직도 펜싱이 유럽인만의 스포츠인가?

펜싱은 1896년 제1회 올림픽 때 정식 종목이 됐을 정도로 전통이 깊은 종목이지만 지금까지 유럽의 전유물이었다. 국제펜싱연맹도 1913년 프랑스에서 창립됐다. 자연스레 펜싱은 '유럽의 텃세'가 지배하는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매김했고, 대부분의 메달은 유럽인들이 차지했다. 이 때문에 국내 펜싱계는 유럽 선수들에게 유리한 판정이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지난 29일 펜싱 남자 사브르 16강전에서도 한국은 유럽의 텃세에 당했다. 14-14 동점 상황에서 구본길은 독일의 막스 하르퉁과 동시에 공격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심판은 하르퉁의 공격만 득점으로 인정했다. 구본길은 애매한 마지막 판정에 대해 비디오 판독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이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 요청을 이미 두 차례나 사용해 더 이상 제대로 이의제기를 할 수 없었다.

올림픽은 겉으로는 가장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행해지는 인류의 스포츠 제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올림픽에는 배타적인 면이 많다. 실제로 20세기의 올림픽은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아마추어 선수만을 위한 대회였다.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지 않는 아마추어 선수만이 페어플레이와 좋은 스포츠맨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 고귀한 올림픽 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시대 조류의 변화와 올림픽의 상업화 때문에 최근 많이 퇴색했다.

올림픽은 서구인들의 잔치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제3세계 국가들은 1970년대 이후에야 올림픽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런 올림픽의 국제화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크게 기쁘게 했다. 하지만 반대로 유럽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강했던 종목에서 '이변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를 감수해야 했다.

끝까지 올림픽에서 유럽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종목 중 하나가 펜싱이다. 신아람에게 좌절을 안긴 '멈춰버린 1초'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제펜싱연맹의 시간 계측은 너무 아마추어 같았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1980~2001년 재직) 시절부터 국제화, 상업화라는 기치 아래 빠른 속도로 발전한 올림픽에서 펜싱의 여전한 유럽 중심주의는 시대착오적이다. 지금은 몇몇 돈 많고 지체 높은 유럽의 귀족들이 근대 올림픽 발족을 위해 뛰던 19세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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