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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DJ)→169(盧)→16(MB)…위기의 남북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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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DJ)→169(盧)→16(MB)…위기의 남북대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제19호 <1>

1. 6.15 이후 당국간 회담 전개과정

2000년 6.15 공동선언 채택 이후 남북관계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접근시각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지만, 6.15 이후 남북관계 전개과정은 남북관계사에서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6.15 이전의 남북당국간 회담이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정치적인 맥락에서 추진되었다면 이후의 회담은 다방면에 걸쳐 매우 실질적인 분야로 확대되어 왔다.

대북강경의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6.15 이후 250여회의 당국간 회담이 양적으로만 확대되어 왔을 뿐 질적인 발전이 없었고,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고 폄훼한다. 그러나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당국간 회담은 분단과 대치라는 한반도 특수성을 감안할 때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87회의 당국간 회담을 개최한 국민의 정부시절 회담의 주된 특색은 남북대화의 틀을 구축하고 이를 확대하려 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관계 전반을 총괄·조정하는 남북장관급회담이 시작되었고, 국방장관회담,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적십자회담 등 분야별로 큰 틀의 대화체제가 구축되었다.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이산가족상봉, 군사실무회담 등 하위 실무급 대화채널도 마련되었다.

이러한 남북간 대화채널이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구축될 수 있었던 요인은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의 규범력 때문이었다. 남북 정상간 합의의 구속력은 남북대화의 실천성을 담보하였고, 남북 당국자 모두 대화에 집중하여 남북회담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러한 남북간 대화와 협상의 개시는 2000년말 북미대화, 2002년 북일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잘될 것만 같았던 남북대화도 9.11 테러, 미 공화당 행정부의 등장 등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침의 현상이 발생하였다. 북한이 테러와의 전쟁 등에 따른 남측의 비상경계조치, 합동군사훈련 등을 남북대화와 연계시키면서 남북관계의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2002년 공개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 서해교전 발발 등은 남북대화와 협력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적 갈등은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임을 드러냈다.

▲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장면. ⓒ연합뉴ㅡ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정치·군사적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남북관계 발전이 어렵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북핵문제, 한반도 긴장완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기본 목표로 두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화를 추진하였다. 북핵문제, 정전체제 지속의 원인이 냉전구조에 있다는 인식에 따라 남북대화를 통해서는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대북 강경접근을 완화할 것을 주문하였다. 9.19 공동성명(특히 4항.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협상을 위한 별도 포럼 설치)은 참여정부의 입장과 미국, 중국 등의 입장이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참여정부 시기에는 29회의 군사분야 회담이 추진되어 남북 대결과 긴장상황에 있어왔던 서해의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간 합의점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오래전부터 정치·군사적 문제를 미국과 해결하려 하였고, 남측으로부터는 민족공조를 주장하면서 경제적 실리만을 획득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 왔다.

특히 참여정부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비판론의 핵심은 북한은 정작 변하지 않고 있는 데 한반도에 드리워진 냉전적인 구조(예를 들면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 지속 등)가 문제라는 식의 접근이 결국 북한의 협상칩만을 높이고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균열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아래 169회의 남북대화가 제도화 되면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사업 등 각종 남북경협사업이 정착되고 사회문화 분야 인적교류 등이 활발해지면서 6.15 이후의 남북관계를 한단계 도약시킨 것은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제협력의 추진성과와 북핵, 서해 평화정착 등 안보문제와의 불균형성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대화는 16회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는 북핵문제와 평화정착을 위한 이전 정부 협상과정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면서 출발하였다. 북한이 그간 남북대화 과정에서 보여왔던 합의와 보상, 파기를 반복하는 태도를 시정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남북관계 발전이 어렵다고 보았다. 남북화해협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북한은 핵실험을 진행했었고, 많은 대북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비핵개방 3000 구상은 핵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경제보상 패키지를 제시한 것으로 과거정부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로운 동시에 핵문제를 일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북핵문제 해결에 남북대화·협력을 묶어놓음으로써(선 북핵-후 남북관계) 북핵문제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대화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참여정부가 북핵문제와 남북대화의 선순환 구조 마련을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하려고 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한 그러한 대화가 의미없다고 치부해 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선변화만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에서 6.15 공동선언, 10.4선언 등 과거 남북간 합의를 부정하는 태도마저 보임으로써 기존의 남북대화 채널이 단절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아래 추진된 16차례의 남북회담도 거의 실무적 차원의 대화였고, 이마저도 남북관계의 경색에 따라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2. 시사점과 교훈

2000년부터 12년간 대북정책을 추진해 오면서 남북관계의 전기도 마련했고, 화해협력도 경험하였고, 남북간 신뢰가 무너지면 남북관계가 일거에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도 경험하였다. 앞으로 당국간 회담을 추진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당국간 회담의 추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를 통한 신뢰회복이다. 혹자는 북한의 변화가 없다고 하지만 6.15 공동선언이후 남북대화 추진과정에서 북한은 기존의 명분싸움에서 실리위주로 대남기조를 전환하였다.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은 신뢰를 구축하는 첩경이 될 뿐 아니라 남북간 상호 의존도를 심화시킬 수 있다.

2007년 정상회담이후 총리회담, 경제협력공동위원회 등 급속도로 확장된 회담에서 북측은 "남측에서 하자는 데로 할 것이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 지 설명해 주면 우리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식으로 언급했다고 한다. 핵문제에도 북한은 처음부터 미국과의 대화만을 계속 주장하였다. 그러나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후 부터는 남측을 핵문제와 평화체제 구축의 대화 상대방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나온 조선신보('07.10.4)는 "앞으로 9.19 이행 국면에서의 6.15 실천은 북남관계가 외세와의 관계보다 뒷전에 밀려나고 제약당하기 일쑤였던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남북대화는 "6자회담 합의의 이행과정을 촉진시키는 추동력"이라고 주장하였다. 남북대화가 북핵문제 악화, 남북관계 불안정성에 기인한 부분적인 경색국면을 보였지만, 남북간 최소한의 신뢰회복을 통해 유지되면서 급변하는 정세변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수단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대화는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에서 출발하였으나, 그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기존합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천안함·연평도 사태 등을 거치면서 당국간 회담은 실종되었다. 남북관계 경색 속에 정략적인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비밀접촉이 진행되었고, 그것을 북한이 폭로하는 웃지 못할 사건도 남북간 신뢰의 부재에서 연유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둘째, 이제는 보다 세련되고 발전된 방향으로 큰 틀에서 포용해 가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협상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남북차원의 접근과 미국·중국 등 국제사회와 북한과의 관계 변수를 종합·포괄하는 전략을 입안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수요가 매우 현실적인 과제가 된다.

북한이 최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차기 정권의 탄생을 위해 무리하게 우리 내부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북한 역시 남북관계의 수요가 지대함을 의미한다. 조건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던 북한이 사전조치의 일부를 받아들여 미국과 2.29 합의를 이끌어냈던 이유도 북미대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올해 말과 내년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지도부에서 새로운 진용이 갖춰지는 만큼 북한과의 관계 설정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전략을 갖고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지에 따라 주변국들의 행동반경이 정해질 것이다. 한국과 미국, 중국 등 주요국들이 북핵문제와 관계정상화를 위해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완벽한 정책 공조를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통해 주변국의 대북정책에 따라 남북관계가 좌지우지되는 현상도 최소화하여야 하여야 하며, 일관된 목소리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남북간에도 각종 대화채널을 복원하여 기존 합의의 이행문제, 정치·군사적인 문제와 경제협력·인도지원을 포괄적으로 연계하는 틀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최후의 체제보위 수단으로 유지하고 있는 북핵문제를 남북관계와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연계시킬 것인지 지난 정부들이 추진해 온 북핵정책과 남북대화 병행전략을 동시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북한의 요구사항과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교한 대화 기술(技術)을 마련해야 한다. 차기정부가 어떻게 구성될 지 예측할 수 없지만 북한은 내년에도 어김없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차기 정부의 태도를 물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처럼 두 개의 공동선언을 무시하면 또다시 남북관계 경색이 불가피하다. 지금부터 기존 합의사항을 재평가하고 재점검하여 북한과 어느 부분부터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 나갈지에 대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주먹구구식으로 이것해보고 저것해보고 하는 식으로 하면 북한의 대남전략과 무리한 요구에 휘둘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에 가장 파급력이 큰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북한 지도부에 큰 변동이 있고, 지난 5년간 남북관계의 앙금을 털어내기 위한 '포괄적인 대화 및 화해, 신뢰구축 패키지'가 필요하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의 대북관이 매우 엄격해졌다. 대북정책의 정치·정략적 접근으로 대북정책을 둘러싼 여론도 양쪽으로 갈라져있다. 남북간 아무리 합리적인 대화를 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이를 수용하고 뒷받침해줘야 성공할 수 있다.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국론을 결집하는 노력과 함께 합리적이고 균형된 남북대화를 추진한다면 남북관계는 빠른 시일내에 정상화될 수 있다.

국민들을 납득시키고 북한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남북대화는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하며, 보다 발전된 방향으로 진화하도록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이후 1990년 통독까지 18년의 시간이 걸렸음에 비추어 볼 때, 이제 앞으로 5년-10년은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2년 7·8월호(제19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6.15 12주년과 남북관계: 시사점과 교훈'입니다.

* 원제 : 6·15 이후 당국 간 회담 전개과정: 시사점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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