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고리원전은 대도시인 부산에 위치한 만큼, 만에 하나 사고가 생기면 그야말로 대재앙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최고의 원전 소송 전문가인 카이도 유이치, 가와이 히로유키 변호사는 2일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홀에서 대한변호사협회 환경인권소위원회가 주최한 '탈원전을 위한 한일변호사 세미나'에 참여해 이같이 주장했다.
가와이 변호사는 "동해에는 거대 해구와 지진 할당층이 있는데, 그 부분이 흔들리면 동해에서 대형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난다"며 "그 결과 한국의 핵발전소(원전)가 쓰나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동해 인근이 아니라 일본 서해안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해도 문제다. 그는 "지진으로 해저 지반이 올라오면 쓰나미가 일본 방향뿐만 아니라 동해 방향으로도 퍼진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국의 소방방재청은 일본 서해안에서 지진 해일이 발생할 경우 동해안까지 해일이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30분~2시간에 불과하다고 예측한다.
▲ 폐허가 된 후쿠시마. ⓒ도요다 나오미 |
"부산에서 후쿠시마 사고 나면 반경 100km 지역 폐허될 것"
문제는 같은 원전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한국이 일본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와이 변호사는 "한국은 좁은 국토에 비해 핵발전소가 너무 많은 데다 그마저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다"며 한국에 원전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피해가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한국 정부가 왜 부산 근처에서 원전을 가동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일본 위정자조차 그런 짓은 안 한다. 만에 하나 부산의 고리원전이 후쿠시마 때와 같은 사고를 일으킨다면, 반경 100km 이내 지역이 완전 폐허가 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적어도 일본은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반드시 대도시가 아닌 인구 과소지역에만 핵발전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사태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자'면서 원전 20기를 40기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건 미친 짓이라고 본다"며 "그렇게 되면 한국은 핵발전소 초과밀밀집 국가가 된다"고 덧붙였다.
가와이 변호사는 휴전 상황이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에서 한국이 왜 핵발전을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30분 만에 부산의 핵발전소에 제트기를 날려 보낼 수 있다"며 "일본에는 오사카에만 핵발전소 14기가 모여 있는데, 입장을 바꿔 북한이 전투기를 10대만 동원해 자폭 공격을 하면 일본이 견딜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핵발전소는 하나의 거대한 정밀기계이기 때문에 전투기 한 대가 배전, 펌프, 디젤엔진 등 어느 하나만 고장 내도 전체가 망가진다"며 "일본 내부에서조차 항공기나 군용기로 인한 악의적인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기존의 원전 사업보다 더 위험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고속증식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전의 원자로에서는 중성자 속도가 저속인 것과는 달리, 고속증식로는 중성자 속도가 고속인데다 많은 양의 플루토늄이 발생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카이도 유이치 변호사는 "고속증식로 사업은 기존의 원전보다 100배 정도 위험하다"며 "만약 재처리나 고속증식로에서 대사고가 일어난다면 일본 국토의 절반 정도 면적에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일본 국토가 한국 국토의 1.7배임을 고려할 때 한국에 고속증식로 대형사고가 일어난다면, 남한 국토 대부분에 사람이 못 살게 되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국가가 원전의 위험성 여부 입증해야 하는데 한국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한국 정부와 법원의 인식이 1970년대 일본보다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카이도 유이치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기각 결정된 고리원전 1호기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 소송 판결문을 보고 "어디서 많이 본 글이다 싶었다"며 "해당 판결문은 1972년 일본에서 최초로 제기된 이가타 원전 가동중지 가처분 소송 판결과 '행정의 재량권'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두 판결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당시 일본의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 이카타 원전의 가동을 언제든지 멈춰야 한다"며 "이 때의 안전심사 기준은 과거의 기준이 아니라, 현재의 과학 기준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또한 "안전심사 기준에 불합리한 점이 있거나 심사 과정에서 간과하기 어려운 과오가 있으면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고리원전 소송 기각 당시 부산지방법원은 "한국수력원자력은 현시점에서 고리원전 1호기의 계속운전에 따르는 잠재적인 위험요인에 대한 기술적 통제를 적절하게 수행하고 있다"며 "고리원전 1호기에서 방사능 재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는 구체적인 위험을 인정할 만한 소명자료가 없다"는 기각 사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노후한 고리원전에서 앞으로 벌어질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원전이 위험한가에 대한 입증책임을 국가에 부여하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카이도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소송에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부과하지만, 일본에서는 국가의 행정체계가 모든 증거를 갖고 있음을 감안해 행정소송에서의 입증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확실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리원전의 안전성과 관련해 한국의 소송단이 요구한 자료 공개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한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을 겨냥한 말이다.
카이도 변호사는 "원전 사고에는 '사전 예방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일본의 이가타 원전 소송에 대한 판결은 헌법에서 화학물질의 안전성에 대한 '사전 예방 원칙'을 구체화했다"고 평가했다. 사전 예방의 원칙이란 중대하고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는, 그 가능성만으로도 원척적인 위험 요소를 미리 금지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실제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 전문가들은 대기 중에 방출된 세슘만 히로시마형 원자폭탄 168개분 이상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며 카이도 변호사는 "대기에 방출된 것만 그 정도이고, 토양과 해양에도 현재 방출이 진행 중"이라며 원전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 뒤 잠시 고향을 방문한 일본 주민들. ⓒ도요다 나오미 |
"지진 거의 없는 독일도 원전 위험하다고 판결"
원전에 대한 출구 방책은 없을까. 카이도 변호사는 "독일에서는 소송을 통해 완공됐지만 한 번도 가동하지 못한 채 폐기된 원전이 있다"면서 "독일 행정법원은 피고 측이 지진에 대한 위험성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고 소개했다. 그는 "독일도 한국처럼 지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국가"라며 "독일 소송은 한국에 귀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인 지난해 6월 2022년까지 원전을 전면 폐기하기로 결정한 국가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총리 보좌기구 윤리위원회에서는 원전에 찬성했던 인사들조차 '만장일치'로 원전 폐기에 합의했다. 당시 독일 윤리위원회는 "원전으로 발생할 이익을 고려해도 사고가 났을 때 위험성이 너무 크다"며 "핵에너지를 리스크가 더 적은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다면 핵 발전을 그만 두는 게 윤리적으로 올바르다"고 판단했다.
원전을 멈추면 전기 대란이 일어난다는 반론에 대해 가와이 변호사는 "일본의 원전 추진파도 똑같은 주장을 했지만, 54개 원전이 전부 정지된 지금 일본에는 전기 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의 화력발전 실가동률은 50%, 원전은 61%, 수력발전은 19%였다"며 "일본은 현재 화력발전 실가동률을 50%에서 70%로 올림으로써 원전 발전 정지로 실효되는 전기생산분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원전 어느 한쪽 사고 나면 양측 다 손해…한일이 손잡아야"
가와이 변호사는 "규슈 지역에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 남한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반대로 부산 고리원전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규슈와 야마구치현 주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며 "한일 정부가 모두 핵발전소를 멈추도록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일이 서로 손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다른 국가 정부나 시민들까지 나서서 '후쿠시마 사태'로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걸까 두려워하고 있다"며 "한국이 나서서 일본이 더러운 방사능을 바람에 날려서 고기, 생선 등 먹을거리를 오염시킨 데 대해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 먼저 배상을 요구해야 일본 내부에서도 원전을 완전히 그만 둬야 한다고 반성할 수 있다"며 "정치권이 안 하면 시민들이라도 모여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에 소송을 걸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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