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실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차별과 상대적 박탈감…절망의 공장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정규직 1만6000명, 하청 2만2000명)은 2010년 당기순이익 3조7000억 원, 2011년 5조 원가량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하청노동자들은 성과 분배의 주체가 아니다. 주주들과 정규직들의 돈 잔치에 상대적 박탈감과 인격적 차별을 받고 있다. 그나마 주어지는 쥐꼬리만 한 격려금도 업체사장들의 탐욕에 칼질당하기 일쑤다.
이 또한 사측의 시혜나 복지차원이 아닌 2004년 박일수 열사의 죽음의 대가다.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는 열사의 인간 선언의 피 값이고 분노를 달래기 위한 노무관리의 일환일 뿐이다.
하청노동조합 가입하는 순간 출입증 발급을 중지하고 블랙리스트를 상시 운영하며 노동조합의 씨를 말리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쏟아 붇고 있다. 심지어 선거 때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잔업까지 강요하며 정치적 자유를 박탈하는 회사,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라고 강요하는 회사,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위해선 해고와 블랙리스트,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회사, 하청노동자들에겐 절망의 공장이 바로 현대중공업이다.
▲ 현대중공업 광고에 등장한 배우 안성기. ⓒ현대중공업 |
'노동기본권' 말살, '생산제일' 경영…동서에 조선소 세워 '하청노동자' 양산
현대중공업은 삼호 중공업과 미포조선을 포함해 포항과 군산, 용연 공장 등을 거느린 그야말로 동서를 종횡무진 누비는 굴지의 세계1등 조선소다. 이들 조선소의 공통점은 한결같다. 노동기본권 박탈과 조직적인 산재은폐다.
현장에서 일하다 다쳐도 짐짝처럼 트럭에 숨겨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성과위주의 안전관리와 생명경시의 경영방침이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현장마다 안전스티커와 현수막이 넘쳐나지만 생산 우선의 방침이 바뀌지 않는 한 안전제일은 공염불일 뿐이다.
현대중공업을 제외하고(120%대, 인원수로는 최고) 삼호중공업, 미포조선, 힘스(포항, 군산, 용연 공장)의 사내하청 비율은 정규직 조합원 대비 20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수만 명에 이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도 누리지 못한 채 정규직의 60%도 안 되는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삼호 중공업(정규직 2500명, 하청 7000명)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달 새 하청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은 작업장이다. 회사의 안전조치 소홀과 안전 불감증, 생산제일 주의가 빚은 참극이었다.
현대미포조선(정규직 2700명, 하청 7000명)의 어용노조와 노무관리의 행태는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민주파 활동가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조차도 차단하며 감시와 협박을 일삼고 하청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이미 현장은 정규직 노조의 묵인과 방조, 악랄한 노무관리로 인해 업체의 막가파식 횡포는 일상화 되어 가고 있다.
누가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었는가? 수출 91% 실적과 기업이익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보다 우선될 수 있는가? 이런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이것이 동서 균형발전의 진실이다. 동서에 조선소 세워 하청 늘리고 이윤을 위해 하청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회사가 현대중공업이다.
17년간의 무쟁의 시간은 '노동자의 영혼'을 매장시킨 세월
현대중공업은 평균 근속이 19년이다. 이 말은 회사가 좋아서 오래 근속을 한다는 말이 아니다. 고령화가 되고 있는 증거요, 매년 천여 명의 퇴직자가 발생해도 신규인력을 채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규채용은 고작 생색내기용이나 지역여론 환기용으로 이용된다. 그 빈자리를 하청노동자들이 채우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조선산업 전반의 하청노동자 증가를 보면 1999년 1만8889명에서 2007년 7만744명으로 3.79배나 증가했다.
여기에 가장 일등 공신이 정규직 어용노조다. 정규직 노조는 노조로서의 경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오로지 회사와 한 몸이 되어 회사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이런 노조에 비정규직문제는 논의에 대상도 아닐 것이다.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대중투쟁기관의 임무를 망각한 세월이 17년이나 흘렀다.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의 영전 앞에 폭력과 욕설을 퍼붓는 것도,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도 놀랄 일이 아니다. 17년 동안 회사의 꼭두각시 역할에 충실했고 비정규직 양산에 눈 감고 받은 두툼한 성과금엔 하청노동자들의 눈물이 있음을 과연 알까? 17년은 노사 평화의 시절이 아니라 노조로서 자기 무덤을 파는 세월이었고, 노동자의 영혼을 매장시킨 세월이었다.
울산과대에서 끌려나온 청소노동자…말뿐인 '양극화 해소'
지난 2월17일 울산과학대학 졸업식에서 1인 시위가 있었다. 울산연대노조 김순자 지부장은 "정몽준 이사장님! 춥고 배고픈 청소노동자를 아십니까?"라는 팻말을 높이 치켜세웠다. 10년 넘게 일한 직장이지만 시급 4500원에 세금 제하고 나면 고작 손에 쥐는 건 85만 원이다. 최저 생활비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김 지부장이 관계자들에 이끌려 나오던 모습을 보고 졸업식에 참가한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회에 나갈까? 참된 인간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시키고, 무한 경쟁과 정글의 법칙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현대재벌의 교육관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범 현대가들이 모여 아산나눔 재단을 만들어 나눔을 실천한다며 떠들고 있다. 현대중공업 그룹과 정몽준은 사재 2000억 원을 출연했다.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이유였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정말 진정성이 있다면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양극화부터 해소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정규직에 60%도 안 되는 저임금과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을 방치한 채 사회적 양극화 운운 하는 것은 정치적 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이 학교와 사회재단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현대중공업의 참모습이다.
노동기본권 보장과 연대 통해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비정규직 양산의 선두주자, 하청노동조합 탄압의 선두 주자, 블랙리스트를 운영하며 생존권을 위협하는 기업, 대주주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헌신하는 기업, 정규직 노조를 벙어리와 소경으로 만든 기업, 중역들의 자리보존을 위해 산재를 은폐해야 하는 기업이 바로 현대중공업이다. 하청노동자에겐 절망의 공장이 현대중공업이다.
이런 회사는 더 이상 생기면 안 되는 기업이다. 그리고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은 이미지 정치가 아니라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연대다.
ⓒ현대중공업 |
'국민 배우'라면 이웃의 고통과 아픔도 함께해야
국민배우란 친근한 이미지와 수준 높은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 안성기,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굶주린 어린이를 도와 달라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던 배우 안성기!
안성기는 이런 현실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화려한 성과 뒤엔 노동기본권과 정치적 자유마저도 박탈당하며 소모품으로 살아가고 있는 하청노동자 수만 명의 희생과 눈물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인간적 성찰과 따뜻한 연대가 있을 때 국민배우의 이름값을 할 것이다.
* 이 글은 <참세상>에 동시 게재됐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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