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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통큰 기부'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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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통큰 기부'의 불편한 진실

[해외시각] "삶의 권리는 부자의 변덕에 의존해선 안돼"

지난 25일부터 29일까지 스위스의 고급 휴양지 다보스에서는 세계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이 개최됐다. 올해 포럼에서는 세계 경제위기를 의식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적극 옹호했던 과거의 태도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의 문제를 찾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명확한 결론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이러한 가운데 세간의 박수를 받은 이는 세계 빈곤퇴치를 위해 전면에 나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빌 게이츠였다. 빌 게이츠는 포럼 기간 중 기자회견을 열어 에이즈, 결핵 퇴치 등을 위해 설립된 기금에 7억5000만 달러(약 843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통큰 자선가'의 면모를 보였다. 선진국들이 경제 위기를 빌미로 최빈국 원조에서 발을 빼는 분위기에서 게이츠는 경제 위기는 '핑계'가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사회 운동가인 로버트 뉴먼은 '바람직한 부자'의 모범이 되고 있는 게이츠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악역을 맡았다. 뉴먼은 27일(현지시간)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에서 질병 퇴치를 위한 부자들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그들의 자선 행위가 최빈국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뉴먼은 게이츠와 같은 재벌들의 자선 재단이 원조를 핑계로 농민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유전자 변형 작물의 재배를 시험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또 과거 MS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에 반발했던 사례를 상기시키며 게이츠가 내놓은 수억 달러의 돈이 정말 순수한 자신의 돈인지에 대해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뉴먼은 빈곤층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선이 아닌 정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하면서 언제 마음이 변할지 모르는 억만장자의 기부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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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AP=연합뉴스

자선활동은 정의의 적이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빌 게이츠가 세계의 빈곤층을 대표하는 연설자가 된 건 이상한 일이다. 그는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 펀드에 4억7800만 파운드(약 843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고, 다보스 포럼 참석자들에게 세계 경제 위기가 원조액을 삭감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앨 고어가 석유업체 옥시덴탈오일의 주주임에도 기후변화 운동을 주장하던 어두운 시기를 연상케 한다. 물론 게이츠도 세계의 빈곤층이 아닌 부자들을 대변한다. 그의 목소리는 컸지만, 그가 선언한 개발 모델은 잘못됐다. 자선은 정의의 적이기 때문이다.

자선 활동이 결코 선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자선 활동은 놀라운 일을 해냈다. 재벌로부터 소아마비 백신을 받느니 차라리 백신이 없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백신을 줘야 한다. 하지만 감시와 민주주의적 통제가 없는 권력이 초래할 혼란에 주의하라.

소매식품 유통기업 세인스버리의 회장이었던 존 세인스버리는 민주적인 방식으로는 생물공학을 이용한 농업을 추진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개츠비 재단을 통해 일방적으로 이를 실행할 수 있다. 우리는 개츠비 재단의 생물공학 프로젝트 목적이 빈곤국에 식량 안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

그러나 당신이 인도의 카르나타카주 농민연합 같은 단체의 말을 들어보면, 식량 안보는 그들이 유전자변형 작물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치는 이유가 된다. 생명공학을 이용한 작물은 병해에 취약해 많은 양의 석유화학 농약과 살충제, 살진균제(다들 싸지 않은 제품들이다)가 필요하다. 감당하기 힘든 이 비용은 석유 가격에 따라 함께 올라갈 것이고 소농 가구부터 먼저 파산시킬 것이다. 동시에 작물 병해는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전 세계에서 투입되는 모든 화학 물질은 유전적으로 변형된 작물의 수확을 방해하는 병해를 막지 못한다.

개츠비 재단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특히 아프리카에서 농업 분야에 더 깊게 관여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지방의 빈곤층에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의 해결책은 좋은 결과로 끝나지 않는다. 사이비과학을 이용한 농업에서 독재자의 오만함이 드러났을 때 길고 심각한 재앙이 초래된다.

1820년대 제정 러시아 서부의 노브고로드에서 차르알렉산더 1세가 시행했던 모델에서부터 1920년대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였던 히크먼 프라이스까지 그랬다. 역사학자 사이먼 샤만은 <미국의 미래>에서 프라이스가 "힘없는 이들에게 자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주기 위해 54평방마일의 땅을 사 25대의 트랙터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프라이스는 트랙터는 밤낮없이 일했고, 그 결과 거대한 토지는 황폐화됐다. 그러나 그걸 중단시키려는 시도는 일어나지 않았다.

먼저, 억만장자들이 기부하는 이 수억 달러가 정말 거저 주는 돈이냐는 골치 아픈 질문이 있다. 미국전자협회(AeA)의 이사회에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들어가 있던 시절에 AeA는 전자제품를 만들 때 최소 5%의 부품을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사용하고, 독성 물질의 사용을 금지하자는 유럽연합(EU)의 제안에 반발했다. AeA는 EU가 인위적인 무역 장벽을 세우려 했다면서 세계무역기구(WTO)로 사건을 가져갔다. (그리고 미국 NGO '퍼블릭 시티즌'에 따르면 AeA는 납과 같은 중금속이 인체나 환경에 위협이 된다는 증거가 없다는 경악스러운 주장을 펼쳤다)

현재 EU는 이러한 주장에 싸워 이길 만큼 충분히 거대해졌고, 또 추해졌다. 그러나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런 분쟁을 벌일 자금이 없다. 따라서 이들은 전국적인 말라리아 퇴치 운동 대신 고장난 구형 컴퓨터에서 나오는 카드뮴, 크롬, 수은에 노출된 이들에 대한 건강보험에 돈을 쓰는 처지가 될 것이다.

빌 게이츠 자신은 AeA가 MS의 지지를 받으며 벌인 일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선가의 돈이 납세자에게 가야할 기업의 비용으로부터 나온다면, MS가 부분적으로는 푸에르토리코나 싱가포르에 적을 두고 적은 세금을 낸다면, 빛나는 자선 재단 뒤에 있는 진짜 자선자들은 게이츠 부부보다 더 '누더기 바지 차림의 박애주의자'(The Ragged Trousered Philanthro-pists)로 보일 것이다.

자유시장 지지자들은 이런 말로 억만장자 자선가를 보호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들이 이기적으로 골프장이나 부동산에만 돈을 쓰는 게 낫다는 건가?" 난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말은 결국 낙수효과(trickle-down)는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

핵심은 빈곤층이 우리에게 자선을 구걸하는 게 아니라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왕이 자신의 생일에 사형수 1000명의 형 집행을 유예할 때 누구도 이러한 '용서'를 정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재벌이 말라리아로부터 수천 명을 구한다고 해도 정의가 될 수 없다. 인류는 삶의 권리를 위해 부자의 변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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