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권 위성 방송 <알자지라>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점령이 끝났다고 해서 이라크가 자국 원유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라고 7일(현지시간) 지적했다. 1973년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이라크 유전을 전면 국유화하면서 쫓겨났던 서방의 대형 석유기업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기회로 다시 진입했고, 이라크의 현 정부로 하여금 석유 사업 민영화를 확대하도록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라크의 원유 매장량은 1120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또 오랜 경제제재와 전쟁을 겪으면서 매장 원유의 90%는 아직 개발조차 되지 않았다.
▲ 미군 철군 이후에도 이라크 원유를 둘러싼 각축전이 계속되고 있다. ⓒAP=연합뉴스 |
미국 역시 향후 이라크에서 유전 개발에 힘쓸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난달 11월 백악관은 '에너지 협력'에 관한 미국과 이라크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미국은 에너지 분야 개발을 위한 이라크의 노력을 지지한다"며 "핵심 원유 시추 인프라의 보호를 포함해 이라크의 석유 생산을 가속화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원유의 최대 수입국 중 하나이며 올해 하루 300만 배럴, 내년에는 하루 330만 배럴의 원유를 사들일 계획이라고 이라크 정부는 밝혔다. 이라크 정부는 또 2017년까지 하루 최대 1200만 배럴까지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800만 배럴이 한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알자지라>는 현재 이라크의 생산 능력을 목표치만큼 확장하려면 최소 2000억 달러의 돈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외국 자본의 힘이 필요한 상황에서 엑손모빌, BP, 쉘과 같은 서방의 대형 석유업체들은 자사의 이익을 올리기 위해 이라크 석유개발 법안을 개정하려는 로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핵심은 이라크의 석유법(Iraq Oil Law)에 '생산물분배협정'(PSAs) 조항이 삽입되느냐 여부. PSAs는 외국 자본 유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인허가 절차를 줄이고 세금 감면 해택을 주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룬다. 석유 국유화 조치를 되돌리고 석유 사업의 민영화를 촉진하는 이 모델은 현재 전 세계 석유시장 거래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의 인접 산유국들은 정부보다 외국 기업에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준다는 이유로 PSAs 모델을 거부한 바 있다.
포스트카본(Post-Carbon) 연구소의 톰 휘플은 이라크 정부가 더 많은 돈을 벌길 원하는 외국 석유자본과 힘든 협상을 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서방 업체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싱가포르 기업들까지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군의 이라크 점령 기간 동안 이뤄진 석유 개발 계약들은 이라크 의회의 승인도 필요없이 시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민주주의 절차를 훼손하고 있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이러한 계약들은 이라크 국민들의 반발을 감안해 서방 대형 회사들과 맺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와 평등이 '석유 전쟁'에서 가장 큰 패배자가 됐음을 보여준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또 미군이 떠난 이라크에서 정치·인종·부족간 갈등이 점점 더 폭력적인 양상으로 번지면서 형성되는 불안정성이 석유 개발의 변수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방송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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