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 특별법이 번갯불에 콩 볶듯 추진되고 있다. 행정통합법은 대구경북, 대전충남, 광주전남 각 지역별로 300여개 조항이 있는 300쪽짜리 초대형 법안이다. 그런데 발의된지 약 열흘만에 모두 초고속으로 상임위를 통과했다. 정부여당은 내일(24일)까지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졸속' 법안에 영리병원 허용까지 들어있다는 데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대구경북이다. 대구경북시장이 '글로벌미래특구'를 세우면 그 지역은 일순간 각종 생명과 안전에 대한 규제가 풀리며 심지어 영리병원까지 설립할 수 있는 지역이 된다.
우리 사회가 영리병원을 금지해온 이유는 무엇이었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데도 국민 다수가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이 나라 의료비 상위 50개 병원 중 49개가 영리병원이라는 통계가 나온 바도 있을 정도로 미국 의료비 상승을 주도하는 것은 영리병원이다. 영리병원은 투자자의 투자·배당을 허용하는 '주식회사형' 병원이다. 주주 이익 극대화에 골몰해 의료비를 높이고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의료보다 돈 되는 진료만 골라 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의료인력을 감축해 의료 질이 떨어지고 사망률도 높다. 미국에서 영리병원이 모두 비영리병원으로 전환하면 한 해 1만2천명을 살릴 수 있다는 추산도 나왔다.
지자체 권력이 누구에게 주어지든, 영리병원 설립을 손쉽게 하는 법안은 제정되어선 안 된다. 그런데 심지어 TK다. 윤석열 쿠데타 이후로 노골적 극우가 된 정당이 여전히 세를 떨치는 지역에서, 행정통합법이 통과되면 이진숙·추경호 같은 자들 손에 영리병원 개설권이 쥐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영리병원은 단순히 지역 사안이 아니다. 하나라도 설립되면 '한국의 모든 병원은 건강보험 진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허물어 버린다. 작은 구멍 하나가 큰 둑을 무너뜨리듯이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몇년 전 원희룡이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짓겠다고 했을 때 제주도민 뿐 아니라 전국민의 분노를 산 이유였다. 그런 위험천만한 규제완화를 하고, 그 권한을 위험천만한 자들에게 '이양'하는 것이 정부여당이 말하는 '지방분권'이란 말인가?
비단 대구경북 법안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광주전남, 대전충남 법안들도 지자체장이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는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개발계획 변경과 관련한 다양한 권한을 줬다. 행정통합법 모두 이 나라에 영리병원 설립 가능성을 높인다.
애초 행정통합의 명분은 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 위기 극복이었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앞장서 추진하는 행정통합법을 보면, 규제를 완화해 의료 같은 공공 서비스든 뭐든 가리지 않고 부자와 기업주에 돈벌이 기회를 주면 지역이 살아날 거라고 보는 듯하다. 영리병원이 돈을 잘 벌어 부를 창출하면 지역이 살아날까?
정말이지 영리병원이 설립되면 누군가는 큰 돈을 벌 것이다. 미국 최대 영리병원 체인 HCA healthcare 그룹은 지난해 매출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9조 원, 순이익은 10조 원에 달했다. 그런데 지역 주민들은 이익은커녕 높은 의료비와 의료 공백에 시달린다. 영리병원은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뱀파이어 효과'를 일으킨다. 영리병원이 하나 들어서면 주변 병원들이 모두 경쟁적으로 이윤추구 행태를 띠어 지역 전체에서 응급, 분만 같은 의료서비스는 줄고 의료비가 더 오른다. 영리병원의 수익이 가진 자들을 더 부유하게 할지는 몰라도, 그 이익이 결코 아래로 흐르지는 않는 것이다. 오히려 지역민의 삶을 더욱 팍팍하고 위험하게 만든다.
정부여당이 지역 소멸과 위기 문제에 정말 진지하다면 공공의료를 해답으로 내놓았을 것이다. 지역에 인구가 줄어드는 큰 이유는 믿을만한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역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민간병원이 들어서지 않는데 정부가 공공병원을 짓지도 않으니 응급, 분만 등 기본적 의료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떠나면 민간병원은 더더욱 들어서지 않고, 기존 민간병원도 문을 닫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지역 주민들도 이를 잘 안다. 지난 12일 KBS가 발표한 지방선거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원, 경남, 충남 지역 주민들이 뽑은 지역 시급 현안 1위는 '공공의료 확충'이었다. 다른 지역 조사에서는 선택지에 없어 확인할 수 없었을 뿐, '공공의료 확충'이 객관식 보기에 있는 지역은 모두 지역주민들이 그것을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았다.
아마 지금 행정통합이 논의되는 대구경북, 광주전남 지역 주민들도 선택지가 주어졌다면 '공공의료'를 꼽았을 것이다. 대구경북은 코로나19 1차유행의 직격을 맞은 곳이다. 당시 수많은 환자들이 입원도 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단 하나 있는 지방의료원인 대구의료원이 대응의 중심에 섰지만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광주는 더 심하다. 광역시·도 중 울산과 함께 유이하게 공공의료원이 없다. 그래서 코로나 환자가 늘어날 때마다 다른 지역 공공의료원에 병상을 내어 달라고 사정 사정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행정통합법에는 공공의료에 대한 내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국가와 지자체가 공공의료 확충에 지원할 수 있다'는 있으나마나한 선언 뿐이다. 반면 병원들이 더 쉽게 상업적 돈벌이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의료 공공성을 파괴하는 규제완화는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정부여당은 행정통합법을 만들면서 왜 이토록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행정통합법을 보다 자세히 뜯어보면 불행히도 이것을 단순히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보건의료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통합법은 노동, 교육, 환경 부문에서도 기업의 무분별한 돈벌이를 허용하면서, 우리 사회가 그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최소한 이것만은 준수해야 한다고 정한 사회적 합의를 허물어 버린다. 예컨대 대구경북 '글로벌미래특구'는 기업이 노동자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 제조업 노동자 파견을 허용해서 불안정 일자리를 만드는 것, 고령자와 장애인에 대한 의무고용 책임을 어기는 것을 허용한다. 환경보존 의무도 무력화해, 정부의 인허가 없이 오로지 지자체장 권한만으로 기업의 난개발을 허용한다.
기업과 부자들이 평소 거추장스러워하던 사회적 규제를 '국가 균형발전'이나 '지방분권'의 이름으로 철폐하는 것이 행정통합의 본질이라고까지 보인다. 법안들 모두 핵심 목표를 "규제자유화의 추진"으로 두고 있고, "외교·국방·사법 등의 국가존립사무를 제외한" 모든 것에서 중앙정부의 개입과 관여를 멈추겠다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국가의 공적 책임을 방기하고 지방을 '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겠다는 이런 '방임적' 분권화는, 새로운 외피를 썼을 뿐 자본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빗장을 푸는 구태한 신자유주의에 다름 아니다.
이른바 '역차별론' 때문에 특정 지역에 무분별한 규제완화를 허용하면 전국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크다. 국민의힘이 대전충남 행정통합법을 반대한다고 나서는 본질적 이유는 대전충남 법안에 기업주와 부자들을 위한 규제완화 특례가 가장 적기 때문이다. 강원도지사 김진태가 강원도는 왜 소외시키냐며 삭발까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다. 한번 잘못된 지역 규제완화에 발을 내딛으면 바닥을 향한 경주의 서막이 될 수 있다.
지역 소멸은 지역의 정주 여건을 향상시키고 고용을 창출할 공공 사회서비스 인프라가 너무나 취약하다는 데서부터 비롯한다. 유럽처럼 공적 보건의료 체계와 지역사회 돌봄이 잘 갖춰져 있으면 누가 어디에 살든 기본적 사회안전망을 누릴 수 있고, 그러한 사회서비스의 특성상 고용을 매우 풍부하게 창출하기 때문에 지역경제가 이처럼 처참히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방향은 거꾸로다. 공공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을 복원하기는커녕 오히려 파괴하는 식의 '행정통합', 개발논리에 따라 지역을 자본의 돈 놀음터로 만들어 주는 이 같은 '지방분권'은 결코 지역을 살리지도 못할 뿐 아니라 이 나라 모든 시민의 건강과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박탈하는 길을 열게 될 공산이 크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