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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탈원전 선언 배경에는…"

[토론회] "시민사회가 정부에 정치적 결단 내리게 압박해야"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 전력자본, 전문가, 언론, 지방자치단체, 원전 유치 주민조직의 헥사곤(7각형)이 비판자들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원자력촌'에서 추방시켰다. 일본의 원전 개발 체제가 자정 능력과 긴장감이 결여된 채 파국으로 치닫는 배경에는 이러한 요인이 있었다."

국제관계 전문가이자 일찍부터 일본 내 원전 정책을 반대해 온 안자이 이쿠로(安齋育郞) 리츠메이칸대 명예교수가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를 일으켰던 일본의 원자력 정책에 대해 내린 평가다.

도쿄대 원자력공학과를 1기로 졸업했지만 1972년 제1회 원전 문제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원전 정책을 정면으로 반박한 뒤 업계의 따돌림을 당한 바 있는 이쿠로 교수는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부산시가 21일 부산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주최한 '동북아 미래와 가능성' 국제 심포지엄의 기조연설을 맡아 이같이 말했다.

이쿠로 교수는 "일본의 원전은 계획적으로 폐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라며 "(원전의) 안전과 저비용 신화는 너무도 허위에 가득 차 있고, 방사성 폐기물을 관리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미래에 넘기는 비윤리적인 일을 절대 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핵'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커지고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했고 일본에서도 원전 반대 시위가 거세다. 정부가 원전을 새로운 수출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는 한국에서도 원전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로 하여금 원자력을 포기하게 하려면 결국 성숙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게 이날 심포지엄의 결론이다.

독일 탈(脫) 원전 뒤에는 40년 역사의 시민 운동

이러한 결론은 현재 탈 원전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봐도 확인된다. 이날 발표에 나선 박진희 동국대 교수(에너지전환 대표)는 독일 역시 한때 원자력에 전력 생산의 약 4분의 1을 의지하던 국가였으며 지난해에도 원전 수명을 늘리기로 하는 등 원자력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독일이 '탈 원전'이라는 큰 기조를 뒤집지 않았던 것은 4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독일 시민 사회의 반핵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부터 태동한 독일의 반핵 운동은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와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거치면서 전국적 운동으로 번졌다.

독일 시민사회가 반대 시위만 벌이며 정부에 원전 폐기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 에너지 연구를 자체적으로 진행했고, 원전 찬성파의 주된 논거인 에너지 수요 증가를 반박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 절감 캠페인을 전개했다. 또 기성 정당이 탈 원전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79년 녹색당을 출범시켜 의회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는 1998년 독일 사민당과 녹색당이 연정을 이루면서 탈핵 운동이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결실을 맺었다. 2000년 6월 독일 정부는 거대 전력회사와의 조율을 거쳐 빠르면 2021년에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하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2005년 집권한 기민당-자유당 연정이 지난해 원전 수명을 최장 2032년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하며 탈 원전 정책을 거꾸로 돌리려 시도했지만 지난 3월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면서 시민사회의 거센 분노가 다시 일었다. 결국 지난 6월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겠다고 발표해 기존의 합의 방향으로 돌아갔다. 시민 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성과다.

"日 방사선 측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월계동 방사선 검출 소식 듣고…"

후쿠시마 사고는 이웃나라 한국에서도 독일과 같은 시민운동을 모색하는 단초가 됐다. 정부의 정보 제공 부족 등으로 원자력의 진실이 드러나기 이전까지 원전 문제에 무관심했던 이들이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한순간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이날 토론자로 나온 이현민 부안시민발전소 소장은 지난달 말 지인들과 일본 도쿄(東京)및 사이타마(埼玉) 현, 군마(群馬) 현에 다녀온 이야기를 전해줬다. 이 소장 일행은 동경 하네다 공항에서부터 후쿠시마 남서부 군마현까지 방사선량을 측정했고, 최대 0.97 마이크로시버트(μSv)까지 방사선이 검출되는 것을 목격했다. 후쿠시마에서 떨어진 지역에서도 방사선이 검출되는 것을 확인한 일행들은 현지 농산물로 만든 음식에 손쉽게 손을 대지 못했다고 한다.

이 소장은 "한국 정부가 정한 방사선 노출 기준치인 연간 1밀리시버트(mSv, 1000 μSv)를 적용해도 1시간에 0.11μSv를 넘기면 위험하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귀국길 신문에서 서울 노원 월계동에 1.4~2.5μSv의 방사선이 검출됐다는 기사를 보고 일본에서 내내 마음 졸이며 '우리나라는 안전하지'라고 생각했던 일행들 모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국제방사선방호협회(ICRP)나 유럽방사능위험위원회(ECRR)의 권고 기준을 생각하면 현재 일본 정부가 정한 피난지역 바깥에도 사람이 거주하기 힘든 지역은 매우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라며 "ICRP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후쿠시마에 있는 거의 모든 학교에 학생들을 등교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현재 방사선이 검출되는 현상을 단순히 기준 미달이라고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지난 3월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전 앞 바다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보트를 타고 '노후 원전 폐쇄', '신규 원전 건설 반대' 등을 주장하며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日 시민들이 자발적 절전운동 벌인 이유, 원전 반대하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을 수출하겠다며 원자력을 새로운 녹색성장 동력으로 선전하고 있다. 반면 수명연장 논란을 빚고 있는 고리원전 등 안전이 우려되는 조치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현실이다.

진상현 경북대 교수는 "원전은 수십년 전부터 사양산업이 됐지만 한국은 1987년 미국 원전 업체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은 후 유가 폭등과 기후 변화 문제의 해법으로 원전을 내세우고 있다"며 "기후 변화의 해법으로서 원전의 필요성보다 현재 국내 신규 건설을 추진 중인 원전 11기가 들어설 곳이 국내에서 가장 낙후된 강원 삼척, 경북, 울진, 경북 영덕이라는 문제부터 집고 넘어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수희 에너지정의행동 부산지역 활동가는 "한전은 고리원전을 지을 당시 안전 문제를 우려해 1972년 이 지역을 그린벨트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인구가 몰리지 않기 위해 취한 조치지만 주민들은 그 사실을 몰랐고 이는 정부의 정책이 모순적이고 부당한 행위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사실상 낙후 지역 주민들에게 보상을 미끼로 원전 건설을 밀어붙였고, 원전의 안정성 검증을 요구하는 민주적 요구는 묵살당해 온 셈이다. 이를 극복하고 독일과 같이 정부가 탈 원전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반대가 아닌 조직적인 시민 운동이 요구된다는 게 심포지엄 참가자들의 견해다.

김제남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운영위원장은 "막대한 이윤을 독점하는 원자력산업계와 관료, 학계, 보수 언론이 카르텔을 형성해 시민에게 핵발전을 강요해 왔다"라며 "이를 깨기 위해서는 탈핵에 동의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시민과 소통해 내년 선거 국면에서 탈핵 이슈를 정치공론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시민들이 에너지 문제에 대해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을 갖고 원자력이 없는 사회에서 에너지를 정상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독일의 시민 운동처럼 원전의 단계적 폐쇄와 저탄소 에너지 시스템 창출, 전기 절약 운동 등 핵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 보도와 달리 실제로 지난 여름 일본에서 원전 54기 중 13기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전력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원전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민주적 절전 운동을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사태를 경험한 일본 시민들이 원전 없는 일본의 전력 수급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는 한 예다.

하승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탈핵 의지를 모으고 단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합의된 목표 시점을 정해야 한다"라며 "탈핵을 핵심 의제로 삼고, 정치라는 공간에서 탈핵 로드맵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지지율이 6.7%에 불과한 독일 녹색당이 의회에서 탈 원전을 주도한 점을 볼 때 한국에서도 소수정당이 의제를 관철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석균 실장은 "후쿠시마 사태는 한국 국민들이 원자력 발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했으며 이는 앞으로도 중요한 대중운동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독일에서의 탈핵 선언이 가지는 중요한 시사점은 탈핵운동이 노동운동 및 진보적 정치운동과 결합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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