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안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원자력계가 추구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후쿠시마 핵사고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전혀 없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기획안에 포함된 구호처럼 "후쿠시마 사고를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3번째 발생한 대형 핵발전소 안전사고이다. 이 사고로 인하여 일본은 국운이 기울 정도의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였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도 이 사고의 영향으로 방사능 오염의 위험에 처해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 사고를 계기로 전 세계는 핵발전의 위험을 깨달아 가고 있으며, 이 깨달음이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이미 탈핵을 향하고 있었으나 사고 이후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핵산업계는 아무런 영향도 없이 오히려 후쿠시마의 위기를 국내 핵산업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음이 이번 제4차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통하여 드러난다.
수명연장·출력증강…'핵 사고' 위험 높이는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제4차 원자력진흥계획안을 살펴보면 이러한 정부와 핵산업계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계획안에서 보여주는 몇가지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가동원전의 수명연장이 전면적으로 추진될 계획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후쿠시마1호기는 수명을 연장한 원전이며, 이 1호기가 가장 먼저 폭발했다. 또한 후쿠시마에 있는 10개의 핵발전소 중 나이순으로 1,2,3,4호기가 폭발하였다. 30년이 지난 발전소들만 골라서 폭발한 것이다. 이 사실은 수명이 오래된 발전소가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런 사실을 보면서도 수명연장을 계획하는 것은 국내의 핵산업계가 안전성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과 일본의 사고를 보면서도 배우는 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진흥계획안이 보여주는 것은 한두개의 핵발전소 수명연장이 아니라 2030년까지 수명을 다하는 12개의 원전 전체를 수명연장 하겠다는 계획이다. 수명연장, 즉, 계속운전이 핵사고의 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국내 핵산업계는 전혀 모르고 있거나, 혹은 알고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신규원전 건설에 필요한 신규 부지 2~3개소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영덕, 울진, 삼척이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고 이중에서 가능한 모든 곳이 신규부지로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후쿠시마 핵사고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원자력르네상스 정책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셋째, 이 계획안에는 고리, 울진 3,4호기 출력최적화 적용 및 가동원전 출력최적화 종합계획을 수립한다고 되어있다. (출력최적화는 출력증강을 의미한다.) 이 6기의 핵발전소 이외에도 2030년까지 가동원전 20기에 대한 출력증강으로 발전용량 500MWe 증대, 연간 40억 kWh 전력을 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거의 모든 국내 핵발전소를 출력증강 하겠다는 계획으로 볼 수 있다. 출력증강은 배기량이 정해진 자동차를 더 빨리 운전하기 위해서 가속페달을 밟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당연히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지만 원자력계는 이런 안전에 관한 사항은 전혀 관심이 없다.
넷째, 경수로핵연료 생산능력을 최대 700톤/년으로 증대시키기 위해서 350톤/년 규모의 신규 성형가공 시설 증설한다는 계획이다. 핵연료의 가공시설 역시 환경오염의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위험한 시설이다. 이런 시설의 확대도 핵사고의 위험성을 증가시킨다.
다섯째, 파이로 건식처리 기술개발과 소듐냉각고속로 실증로 설계 및 검증자료 생산 등 핵재처리시설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핵재처리는 한미원자력협정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북한의 핵재처리도 국제사회의 비난과 우려는 낳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핵재처리 역시 핵확산 금지를 위해서 미국이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런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핵재처리를 시도하기 위해서 제4차 원자력진흥계획 안은 나름대로 몇 가지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우선, 파이로건식처리는 핵확산저항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방식으로 핵을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이 순수하게 뽑히지 않고 다른 방사능 물질들이 섞여서 추출되기 때문에 핵확산저항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오염물질들이 섞인 상태로는 핵무기를 그대로 생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미국과 세계를 설득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한·미 원자력협력 선진화를 위한 대미협력활동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겠다는 의욕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지난 20일 열린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서울 공청회에 지역 주민들이 올라와 항의하고 있다. ⓒ프레시안(채은하) |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는 두 번째 전략은 이름도 낯선 소듐냉각고속로이다. 이 시설의 원래 이름은 소듐고속증식로이다. 그러나 플루토늄이 많이 생산되는 '증식'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름을 고친 것이 바로 '소듐냉각고속로'인 것이다. 소듐냉각로는 핵반응로(원자로)의 냉각을 물(경수, 혹은 중수)를 사용하지 않고 액체 소듐(나트륨, Na)을 사용한다. 냉각제 역할과 감속재 역할을 하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 감속재 역할이 없는 액체소듐을 사용함으로써 핵반응의 속도를 고속으로 높일 수 있다. 이런 고속로를 사용하면 플루토늄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국내 원자력계는 이 소듐냉각고속로를 이용하여 플루토늄을 생산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려 한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전기를 생산할 목적이라면 이런 소듐고속로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우선 핵연료만 해도 재처리된 핵연료는 천연연료보다 5배나 비싸고, 재처리의 위험 뿐 아니라 지구상에 있는 어떤 핵시설보다 더 위험하다고 알려진 소듐고속증식로의 위험까지 감수해야한다. 소듐고속증식로가 전기생산 목적이 아니라는 다른 증거는 이 계획서 자체에 기술되어있다. 이 계획서를 보면 소듐냉각고속로를 이용하여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시 최종 처분 폐기물의 방사성 독성감소기간을 30만년에서 300년으로 줄이고, 우라늄자원 이용률을 기존 경수로 대비 100배 향상 가능하다고 기술되어있다. 플루토늄의 증식 없이 어떻게 이론적으로라도 우라늄 이용률을 100배 향상시킨단 말인가?
파이로건식처리와 소듐냉각고속로는 그 이름을 아무리 바꾸고 전기생산이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핵재처리시설, 즉, 플루토늄 생산이 목적인 시설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외교적 마찰 뿐 아니라 위험성을 감수해야할 계획인 것이다.
소듐고속증식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핵시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핵폐기물)에는 약 1% 정도의 플루토늄이 섞여있다. 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과정을 핵재처리라고 한다. 핵재처리를 하면 사용후핵연료의 양이 줄어드는 것처럼 정부와 원자력학회는 선전하고 있으나 플루토늄을 추출한 뒤에도 약 98%의 사용후 핵연료는 남게 된다. (이 남은 것이 바로 열화우라늄이다.) 대부분의 핵재처리는 습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제4차원자력진흥계획안에 포함된 파이로건식처리는 핵재처리 방식 중 건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파이로건식처리는 플루토늄 추출방식의 하나인 핵재처리시설이고, 소듐고속증식로는 플루토늄 생산을 최대화 하기위한 시설이다.
또한 이 두가지 핵시설들은 서로 연관성이 있는데, 파이로건식처리 과정에서 생산된 금속성질의 플루토늄이 소듐고속증식로에 사용되는 이상적인 핵연료가 된다. 이런 핵재처리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우려를 자아내서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클 뿐 아니라 그 위험성 또한 크다. 1957년 구소련의 키시팀 사고는 핵재처리시설 사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사고는 1957년 9월 29일 구소련의 마야크 재처리 공장에서 일어난 방사능 오염 사고로서 미국의 스리마일섬 사고보다 등급이 높은 6등급사고로 기록이 되어있다. 일본의 도카이 핵재처리시설에서도 1997년의 화재사고, 1999년의 방사능 피폭사고 등 많은 사고가 있었고, 주변 환경에 방사능을 오염시킨 일이 많았다. 핵재처리 시설의 위험성은 이렇게 핵발전소의 위험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핵재처리 시설도 위험하지만 소듐고속증식로는 이보다 더 위험한 핵시설이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소듐고속증식로는 사고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핵시설이다. 냉각재로 사용되는 액체소듐은 공기와 닿으면 화재를 일으키고 물과 닿으면 폭발을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소듐이라는 냉각재가 누출되면 곧바로 대형사고로 이어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국내 원전에서 냉각재 누출사고는 수십 번에 달할 정도로 흔했는데, 냉각재가 누출될 때마다 이런 화재나 폭발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사고가 흔하고 규모도 클 것인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이 소듐고속증식로를 포기한 이유도 모두 이러한 위험성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경우 피닉스라는 소형원자로와 수퍼피닉스라는 상업용 규모의 대형원자로를 건설, 운영하였으나 수퍼피닉스의 경우 이용률이 고작 1% 정도에 그쳤고, 그나마 1998년에 폐쇄가 결정되었다. 최근인 1995년에 일본이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몬쥬라는 불교의 보살 이름이 별명으로 붙은 소듐고속증식로를 쯔루가 시에 건설하여 운영하였으나 역시나 소듐 누출에 의한 화재사고 등이 끊이지 않아서 정상적으로 가동되었던 시기보다 고장과 사고의 뒷수습하는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 심지어는 십년 이상 걸려서 수리한 후 재가동한 지 한시간만에 다시 사고가 발생한 일도 있었고, 최근에는 핵연료 운송에 사용되는 몇 톤짜리 부품이 원자로 안에 떨어지는 사고도 겪었다. 이를 다시 수리하여 재가동을 시도하고 있으나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의 반대 때문에 가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사태가 이정도이면 소듐고속증식로는 가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핵시설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제4차 원자력진흥계획안에는 소듐냉각고속로를 이용하여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시 최종 처분 폐기물의 방사성 독성감소기간을 30만년에서 300년으로 줄이고, 우라늄자원 이용률을 기존 경수로 대비 100배 향상 가능하다고 기술되어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원자력유토피아를 꿈꾸는 비-현실적인 몽상가들의 상상력을 만족시킬 뿐이다. 이들의 몽상적 만족감을 위하여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고,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옳은 일이 될 수 있겠는가?
위험한 모험주의…일본을 그대로 따라가고?
제4차 원자력진흥계획은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 위험한 계획들로 꽉 차있다. 국내 모든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계획도, 거의 모든 핵발전소의 출력을 증강시키겠다는 계획도, 핵재처리 계획도 모두 너무나 위험한 발상들이다. 한국이 핵사고로 인하여 국운이 기울게 된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으려면 위험한 모험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핵발전소의 안전성 확보에 더욱 많은 예산을 투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핵발전소의 숫자를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계획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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