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와 한수원 등은 연내에 신규 원전 부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2년부터 5년간의 원자력 정책을 총괄하는 원자력진흥종합계획도 연내에 확정될 예정이다. 또 경상북도는 원자력 관련 시설을 경상북도에 유치한다는 이른바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며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원자력을 규제하기 위해 새로 설치된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사실상 원자력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이 위원장으로 취임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가 아직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원자력 확대'로 치닫는 한국의 상황은 분명 기형적이다. 오히려 가속도가 붙고 있는 한국의 원자력 정책 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
원자력진흥종합계획 "후쿠시마 사고, 위기를 기회로"
최근의 원자력 확대의 정책 기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현재 한국원자력학회가 추진 중인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이다. 지난 20일에는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제3차 공청회가 서울에서 열렸으나 원전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러나 공청회 무산과 관계 없이 종합계획 수립 절차는 그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원자력학회 측은 공청회를 재개하지 않고 바로 계획안을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자력학회 관계자는 "공청회를 다시 열 계획은 없고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단계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2012~2015년 5년간의 원자력 발전 정책을 구상한 이 계획안은 올해 안에 정부 부처간 협의를 거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리는 원자력 위원회에서 심의, 의결될 예정이다. 대체적인 기조는 국내 전력 생산량 중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높이고 동시에 원자력 산업을 수출 지향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전면 확대'다.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은 이를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다"고 표현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꾸준한 기술 개발을 해온 것처럼 후쿠시마 사고를 도약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것. 이들이 내세운 구체적인 과제는 △미래형 원자력 시스템 개발 △ 기술경쟁력 확보 △중소형 원전 및 첨단 방사선 기술 확보 등이다.
이중 '미래형 원자력 시스템 개발'이란 한 마디로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나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파이로 프로세싱 공정을 개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재처리 한 사용후 핵연료를 쓰는 원자로인 소듐냉각고속로를 개발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말하는 '순환핵연료주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 기술 모두 개발에 성공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두 기술은 모두 연구 개발의 초기 단계로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상용화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종합계획에서는 '2025년 파이로 프로세싱 실용화 시설 건설. 2028년 소듐냉각고속로 원형로 건설·운영을 목표로 삼고 있으나 이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시각이 많다.
파이로프로세싱. 가능성 희박-핵확산 우려
'건식 정련 기술'로 불리는 파이로 프로세싱은 사용후 핵연료를 녹여 전기분해를 통해 우라늄계 원소를 추출하고 고속로용 핵연료를 제조하는 방식이다. 습식 재처리 기술은 프랑스, 일본, 영국 등에서 시행되고 있으나 사용후 핵연료에서 고순도 플로토늄이 추출된다는 점에서 '핵 확산'을 우려한 국제사회의 규제를 받게된다.
원자력계에서는 현재 개발중인 파이로 프로세싱은 플로토늄과 여타 우라늄계 원소가 섞여 나오기 때문에 '핵확산 저항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이로프로세싱 역시 이 혼합물로부터 플로토늄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핵 확산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원자력계의 주장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가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플로토늄 추출 기술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모순이 있다.
지난해 한미 원자력 개정 협상에서 논쟁이 되어온 재처리 문제, 즉 파이로프로세싱 개발 문제를 결국 '10년간 한미 공동 연구'로 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우려 때문이다. 미국의 핵비확산론자들은 한국 원자력계의 주장과 달리 파이로 프로세싱 또한 플로토늄을 추출하는 핵 확산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0년에 아르곤국립연구소(ANL)가 파이로 프로세싱을 개발한 이후에도 이 기술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테러 등의 위험을 고려할 때 재처리 이후에 나오는 핵연료의 방사능 수치보다 재처리를 하지 않은 사용후 핵연료의 방사능이 더 높기 때문에 재처리를 하지 않는 편이 핵비확산성이 더 우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 파이로프로세싱 개발 연구설비. ⓒ한국원자력연구원 |
사고에 사고, 돈먹는 하마 '소듐냉각고속로'
설사 파이로 프로세싱을 통해 핵연료를 추출해 낼 수 있다고 해도 이를 사용할 소듐냉각고속로의 상용화가 가능할 지는 여전히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소듐냉각고속로는 냉각재로 쓰이는 소듐(나트륨)이 공기 중의 수분과 만나면 화재를, 물과 접촉하면 폭발하는 성질 때문에 사고 위험이 높고 사고 시 복구가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이 때문에 보통 소듐냉각고속로에는 아르곤가스를 채워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한다.
지금까지 개발했던 고속증식로의 실험로 및 원형로는 모두 소듐의 유출로 폭발 및 화재사고가 있었다. 1995년 12월 일본의 고속증식로 원형로인 몬쥬에서 일어난 폭발·화재 사고가 바로 이러한 사고다. 당시 40%의 출력으로 시험 운전중이었는데 냉각재로 쓰이던 소듐이 배관파이프 온도계의 틈새로 새어나와 폭발,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의 복구에는 14년 5개월이 걸렸고 재가동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인 2010년 8월 26일에 또다른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몬쥬는 0.3%의 출력 상태였다.
원자로 내부에서 핵연료를 교환하는데 사용하는 중계 장치가 원자로 안에 떨어져버린 것. 떨어진 중계 장치는 직경 46cm 길이 12m에 무게가 3.3톤이나 되는 거대한 구조물인데 약 10개월이 지난 올해 6월 24일에야 겨우 빼냈다. 이로 인한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일반 경수로의 3분의 1정도인 25만키로와트의 몬쥬에 약 1조엔(약 13조원)이라는 비용을 투입했다. 그러나 아직도 시험 가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며 내년쯤에야 17년 전과 비슷한 40%의 출력의 시험 운전을 재기할 예정이다.
▲ 일본의 고속증식로 원형로인 몬쥬에서 소듐 누출로 폭발, 화재 사고 이후 원자로 건물 내부를 촬영한 동영상의 한 장면. |
또 일본의 또다른 고속증식로 실험로인 '죠요'도 2007년에 사고가 발생해 아직도 수리 중으로 정지되어 있다. 역시 소듐을 냉각재로 쓰는데 냉각재 속에 직경 0.6cm, 길이 1.3cm의 핀 6개가 빠지는 사고가 일어난 것.
일견 단순한 사고이지만, 소듐은 불투명하기 때문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다. 또 일반 원전의 경우 물을 빼면 내부를 쉽게 수리할 수 있지만 소듐냉각고속로는 소듐을 빼내는 작업도 어렵고 내부의 소듐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역시 폭발과 화재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수리가 더욱 어렵다. 지난 2008년 당시 수리에 4년, 총 100억 엔의 비용이 든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장정욱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는 "죠요는 실험로이기 때문에 그나마 정도는 적겠지만 이런 사고에서 핀과 같은 이물질이 냉각계통을 막는 일이 발생하면 핵폭주(핵폭발) 사고가 일어난다"면서 "특히 고속로의 경우 플로토늄을 혼합한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경우 일반 원전보다 배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원자력계는 안전성 문제는 기술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한국원자력학회장을 맡고 있는 장순흥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외사례를 보면 사고라기보다는 고장에 가깝고 가동을 중단한 건 주로 정치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고속증식로는 사용후 핵연료를 60~100배 활용할 수 있고 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 기술적인 부분만 보완하면 안전성도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페기물이 20분의 1로 줄어든다, 진짜?
이러한 폭발, 화재사고의 위험과 엄청난 비용에도 굳이 파이로 프로세싱 재처리와 소듐냉각고속로를 개발하려고 하는 것은 현재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의 양이 원전 내 저장 시설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후 핵연료는 각 원전 부지 내에 있는 임시 시설에 저장되고 있으나 영광은 2016년부터, 울진은 2017년, 월성은 2018년부터 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계획은 '파이로프로세싱을 이용하여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할 경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 공간을 100분의 1로, 폐기물량을 20분의 1로 저감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방사능 독성 감소기간이 30만년에서 300년으로 줄어들고 우라늄 자원 이용률이 100배 향상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를 위해서는 '마이너액티나이드(MA)'라 불리는 넵투늄(Np), 아메리슘(Am), 퀴륨(Cm) 등 독성이 강한 핵종을 100% 분리 추출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한지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장정욱 교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 공간은 방사성 폐기물의 발열량에 크게 좌우되는데, 이를 100분의 1로 줄인다는 것은 MA원소를 100% 제거했을 때를 상정한 이론적 결과"라며 "아직 100% 분리 추출은커녕 일부의 MA원소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재처리 이후에도 재처리 과정에서 뽑아낸 세슘과 스트론튬 등의 독성이 강한 방사능 물질을 별도로 처분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또 재처리 기술만이 아니라 이를 태울 고속로를 개발해야 방사능 원소의 반감기를 줄일 수 있다. 또 파이로프로세싱에 쓰인 장치. 용융염, 세척수 등이 대량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배출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파이로프로세싱 보다 급한건 '중간저장시설'?
오히려 포화상태에 이르는 사용후 핵연료와 재처리 기술 간의 관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필요한 '중간 저장 시설'이다. 핵연료 재처리를 위해서는 원자로에서 꺼낸 사용후 핵연료를 3~5년 정도 일정 시간 냉각 저장할 저장수조가 필요하다.
진흥계획에도 "사용후 핵연료 중간 저장시스템"과 "심층처분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의 로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에는 3000톤 규모의 자체적인 저장 수조가 있다.
문제는 이른바 '중간 저장 시설'은 사실상 고준위 방폐장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따르는 주민들의 반발 등을 우회하는 '꼼수'로 중간저장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어쨌든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에서 빼내 중간 저장 시설로 옮기기 시작하면 한동안 원자력 발전은 계속 운영될 수 있다. 이를 처리해야 할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세대로 넘어간다.
이와 관련 최근 위키리크스를 통해 알려진 미 국무부 비밀 전문에는 한국 정부가 '경북 경주에 재처리 시설을 건설 할 수 있다'고 밝힌 내용이 있다. 장 교수는 "경주에는 이미 주민들이 저준위 방폐장 건설을 받아들인데다 경수로보다 사용후 핵연료를 많이 발생시키는 중수로가 있는 월성 원전 근처이기 때문에 중간저장시설이나 핵재처리 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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