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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선호도 1위 삼성전자, 막상 입사해 일 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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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취업 선호도 1위 삼성전자, 막상 입사해 일 해보면…

[인터뷰] 전직 삼성전자 연구원이 밝힌 '무노조 삼성'의 근로조건

이달 초 한 취업포털 사이트는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기업으로 8년째 삼성전자가 꼽혔다고 발표했다. 응답자들은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이미지와 근무환경, 국가경제 기여도와 경력개발 기회까지 모두 삼성전자를 첫 손에 꼽았다. 이 취업포털이 실시한 다른 설문조사를 보면 구직자들은 입사 지원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연봉을 든다. 초과이익분배금(PS) 제도를 운영하는 삼성의 높은 급여 수준까지 더하면 국내 기업 중 직장이라는데 이견을 드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막상 삼성에 입사하는 꿈을 이룬 '삼성맨'들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는 삼성에서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직자들이 바라보는 삼성의 강점이 조직 내에서도 구현되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 언론 보도에는 '삼성 반도체 신화'에 대한 찬사가 여전하지만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찾을 수 없다. 삼성맨의 '속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개별 노동자의 '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34살의 A씨는 지난해 6년간 다니던 삼성전자에서 나와 외국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A씨가 이직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을 상대로 지난해 PS를 월할 정산해 달라는 진정을 제기한 것이었다. 이 진정이 기각되자 그는 재차 삼성전자가 초과근무 수당을 부정하게 지급해왔다며 시정명령을 요청했다.

9일 저녁 기자와 만난 A씨는 "초과수당 몇 푼이 아쉬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6년간 일하면서 느꼈던 실망감과 함께 개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변칙적으로 지급되는 보상이 부당하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은 격화되는 경쟁을 들며 10년 뒤의 미래를 경고했지만, A씨는 '사람'보다는 '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재 삼성의 경영방식이 더 큰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삼성에 기업문화는 없다"

A씨는 지난 2004년 외국에서 물리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전자 채용 담당자가 현지로 와 채용 설명회를 열었는데 "PS를 (연봉의) 30%까지 보장해 입사 초봉이 5000만 원을 넘는다"며 입사를 권했단다. 국내 1위 전자기업이라는 위상과 근무여건이 마음에 들어 반도체 메모리사업부 연구직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하지만 A씨는 이후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경쟁사로부터 이직 제의도 받았던 A씨는 결국 영업·마케팅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특유의 조직문화에 드는 실망감은 여전했고 결국 2년 반을 더 보낸 뒤 이직을 결심했다.

"삼성 조직이 기업문화가 강하다고 하는데, (내세울 만한) 기업문화는 없어요. 조직문화만 있죠. 승진도 업무 성과보다는 충성심과 줄서기가 우선이에요. 군대문화와 유교문화가 얽혀있죠. 반도체 가격이 곤두박질 칠 때도 생산을 줄여야 한다고 간언하는 사람이 없어요. 찍히니까요. 조직에 '노(No)'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거죠. 심지어 엔지니어인데 회의에 어떤 상사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글씨 폰트가 달라져야 한다며 같은 보고서를 여러 개 만들라는 지시도 받았어요. 그런 조직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고 소통될 수가 없죠."

"사내 메신저에 '노동조합'이라는 말만 써도 부서장 면담 호출"

삼성전자 직원의 근속연수가 7~8년에 불과하다는 최근의 조사도 나왔지만, 전자업종의 근속연수가 짧은 경향이 있기에 단순하게 '문화' 탓으로 돌리기도 힘들다. 하지만 A씨가 느꼈던 실망감은 조직문화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삼성은 최고 수준의 임금과 복리후생이 있다고 하잖아요? 한 때는 정말 좋았다고 해요. 글로벌 기업이 아니었던 10여년 전에는 사람 키우는 법을 알았다고 그러더라고요. 당시 반도체가 '초대박'을 치면서 부실을 어느 정도 털어낸 이후에는 모든 걸 시스템화하려 했던 게 시작이었다고 봐요. 이직을 앞두고서야 조직 내 성과보상 체계를 놓고 크게 싸웠어요. 그 전까지는 감히 인사팀에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어요. 사내 메신저에 '노동조합'이란 단어만 써도 다음날 부서장에게 면담하러 오라는 호출을 받던 시절이었서요. 나설 수가 없었던 거죠."

"PS는 보상이 아니라 시혜성 금품?"

A씨가 처음 입사당시 들었던 급여 조건은 어떻게 됐을까? A씨는 "입사하자마자 당시 그 말을 했던 직원은 퇴사해버렸다"고 했다. 채용 설명회 당시 배포했던 문서 자료도 끝난 뒤 수거돼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6년 된 전자우편함을 다 뒤져봐도 관련 내용은 없었다. 그는 "일단은 사탕발림으로 꼬드겨놓고 증거를 안 남긴 후 잡아떼는 거 아니냐"라고 씁쓸해했다. 무조노 기업인 삼성에서 노조를 대체하는 노사협의회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PS도 월할 정산하고 위로금도 줬는데 (제가 나갈 때는) 규정에 없다고 잡아떼더라고요. 취업규칙 가져와보라고 했어요. 사내 인트라넷에 올라와있는 취업규칙? 오타투성이에 해당 내용도 없어요. 인사팀이 챙겨온 취업규칙도 PS에 대해 명확한 문구가 없더라고요. 노사협의회에 3번을 찾아갔는데 면담도 못했고 취업규칙을 비치해놓지도 않아서 포기했어요. 어용노조만도 못하다고 생각했죠."

▲ 노사협의회 위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뉴시스
A씨가 퇴직 후 처음 제기한 PS 월할 정산 진정은 기각됐다. 근로기준법상 월할 정산 거부가 명백하게 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근로감독관의 설명을 들었다. 삼성의 PS는 경영목표에 초과하는 이익을 내부 구성원과 함께 나눈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A씨는 PS가 결정되는 기준의 모호함에 의문을 제기했다.

"PS는 직원이 제공한 근로의 보상이 아니라 시혜성 금품이라는 얘긴데요, 줘도 되고 안 줘도 그만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채용 과정에서부터 떳떳하게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채용 당시에는 PS를 급여에 당연히 포함되는 걸 전제로 경쟁사보다 연봉 수준이 높다고 홍보하고 있어요. PS에 대한 기준도 없다. 경영성과에 대한 보상이라는데 연초 잡은 경영 계획인지, 그것을 다시 조금씩 수정한 실행 계획인지 정해놓은 게 없데요. 비공개랍니다."

근거를 알 수 없는 연봉 책정 방식

PS가 시혜성 보상이라면 이를 제외한 삼성전자의 연봉은 어느 수준일까? 2007년 기준으로 4년차에 접어든 A씨의 연봉은 기본급 166만8000과 능력급107만1000원에 12개월을 곱한 뒤 설날과 추석에 각각 기본급 100%로 지급되는 보너스를 합쳐 3286만8000원이었다. 다음해 그의 연봉은 100만 원 가량 올랐고, 그 다음해에는 120만 원 가량이 올랐다. 이직 직전 연봉은 4560만 원으로 약 20% 올랐지만 이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 PS가 연봉의 1.4%까지 떨어지면서 이직이 늘어나자 내놓은 궁여지책이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2007년 PS가 29%, 2008년에 11%, 2009년 1.4%가 나왔고 지난해가 돼서야 다시 50%가 나왔어요. 2009년에는 이것저것 붙여서 연봉이 4100만 원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이게 정말 동종업계 대비 높은 임금 수준일까요?"

"회사에 '이건 노동법 위반'이라고 얘기 못하는 이유는…"

A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초과근무수당 변칙 지급 의혹을 제기했다. 삼성전자은 2007년부터 초과근무 사전결제제도를 도입해 기본급에 38만 원의 고정시간외수당을 포함시켜 왔다. 하지만 A씨는 이 수당이 2007년 이전에 지급했던 자기계발비가 이름만 바꿨을 뿐이라며 삼성이 사실상 직원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근로기준법에 보면 초과근무수당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하지만 삼성은 고정수당이 있다는 이유로 초과근무 신청분에 대해 시간당 5000원씩 교통비 명목으로 지급해 왔어요. 임금채권 시효가 살아있는 지난 3년 치만 해도 그런 식으로 못 받은 임금이 거의 2000만 원이에요. 삼성전자 전체로 보면 수천억 원의 초과근무수당이 지급되지 않은 셈이죠."

고정시간외수당은 보통 근무시간이 불규칙한 직종이나 법정근로시간(8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도입된 일종의 특례 조항이다.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니지만 고정수당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노사가 연봉계약서에 관련 조항을 명기해야 한다. 하지만 A씨는 "연봉계약서에 관련 설명은 전무하다"며 "5000원의 교통비는 사실상 초과근무수당 지급액을 낮추기 위한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왜 재직 당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을까?

"회사에선 늘 두렵고 움츠러들었어요. 회사 다닐 당시에는 이렇게 조금씩 조정되는 금액에 신경을 못쓰는 부분도 있고, 감히 인사과에 '이건 노동법 위반'이라고 얘기하겠어요? 얘기하는 순간, 회사 다니기 고달파지는 거죠. 나와서도 이야기를 잘 안 해요."

삼성의 노무관리는 언제까지 '비밀'로 남아있을까?

지난 200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삼성SDI는 홍역을 치렀다. 그해 6월, 30대 초반의 노동자가 월 10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삼성의 노무관리가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나섰고 표면적으로 삼성의 장시간 근로는 사라졌지만 일부 노동계에서는 "이제는 초과근무가 아닌 '노력봉사'라는 명목으로 초과근무 사실을 감추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삼성 백혈병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삼성 반도체·LCD 출신 노동자들도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 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이 시간외 근무를 해도 시간외 수당으로 지급되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교통비 명목으로 돈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며 "생산직 노동자의 경우 잔업이 너무 많아서 법으로 허용하는 근로시간을 넘어가면 별도 항목으로 수당을 줬다는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 백혈병 의혹'을 가리는 핵심은 반도체 라인 내 화학물질 누출 가능성과 함께 삼성의 강도 높은 장시간 근로가 있었는지 여부다. 생산량을 위해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면서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킬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올해 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 LCD 사업주 엔지니어 김주현 씨의 유족들도 김 씨가 입사 후 최대 하루 15시간까지 근무를 하는 등 격무에 시달린 게 자살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유족은 이러한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관할 노동청에 삼성전자의 취업규칙 공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삼성과 유족들이 합의하고 진정을 철회하면서 장시간 근로에 대한 의혹은 또 한 번 묻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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