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공장 한 곳을 방문했을 때였다. 담당 임원이 최근 공정 한 부분의 처리 시간을 70% 개선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그런데 부연설명을 들어보니, 얼마 전 윤종용 부회장이 방문했을 때 지적받아서 개선 방식을 찾은 결과라고 했다. 70%씩이나 개선할 정도라면 윤 부회장이 지적하기 훨씬 전에 현장 임원들이 알아서 개선했어야 할 터이다. 지시를 받기 전에는 알아서 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례다."
"윗사람 지시 없으면 머리 안 쓰는 문화"
인텔에서 펜티엄4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팀을 이끌었던 신 박사가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지난 2003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신규사업 개발 담당 전무가 그가 맡은 새 역할이었다. "삼성전자가 훗날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을 하면서, 그는 가끔 깜짝깜짝 놀랐다.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문화, 현업 담당자가 자율권을 갖기 힘든 문화가 몹시 낯설었던 게다. 윗사람이 지시하기 전에는 공정 처리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궁리를 하지 않았던 것은 한 사례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삼성 생활이 불만스러웠을까. 이달 초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개인의 자율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의사결정이 발 빠르게 이뤄지는 미국식 기업 문화가 꼭 좋지만은 않다는 점 역시 그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의 성공을 낳은 기업 문화가 앞으로의 성공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나친 통제로 억눌려 있는 임직원들의 창의성을 북돋우는 문화를 마련하는데 실패한다면, 삼성의 미래 역시 밝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기업에서 '관리자'가 되지 않고서도 '성공'할 수 있는 역할 모델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말도 곁들였다. 모든 사람이 관리자를 꿈꾸도록 유도하는 기업 문화는 비생산적이라는 뜻이다. 그가 고문으로 있는 한국기술산업(KTI) 회의실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현재의 성공 낳은 조건이 미래의 실패를 잉태한다"
"삼성에 와서 놀란 점 가운데 하나가 결재 속도였다. 인텔에서는 실무 책임자가 결재하면, 바로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반면, 삼성에서는 구조본의 결재가 날 때까지 사업 추진을 미루는 일을 종종 봤다. 실무자들은 최종 결재가 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실무자들이 최종 결재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고려해서 기획안을 올리곤 한다고 했다. 이런 점을 알고부터는 나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여러 단계의 결재를 거치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실무자들은 해당 분야를 벗어나는 시야를 갖기 어려운데, 상급자가 다양한 시각에서 사업을 검토하는 것은 사업의 실패 가능성을 줄여준다."
꼼꼼한 관리와 신중한 검토. 신 박사는 이런 문화가 삼성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공은 여기까지다. 지금까지 성공했던 방식이 계속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기업의 세계에서는 '성공의 역설'이 상식으로 통한다. 과거 성공을 낳았던 조건이 새로운 실패를 낳는 조건이 되는 일이 흔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으로, 그는 '불연속 이노베이션'을 꼽는다. 과거 관행과 근본적으로 단절하면서(불연속), 끊임없이 혁신(이노베이션)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무자의 자율성을 키워주지 못하는 기존 삼성 문화 속에서는 '불연속 이노베이션'이 불가능하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창의성보다 충성을 유도하는 구조
▲ 신용인 전 삼성전자 전무. ⓒ프레시안 |
기존 방식을 유지하면서 혁신을 도모하는 일은 데이터만 잘 분석해도 가능하다. 하지만 창조는 그렇지 않다.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인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런 인재는 자율적인 문화 속에서만 능력을 꽃 피울 수 있다. 창의적인 인재일수록 감독 받기를 싫어한다는 점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삼성전자 문화는 임직원의 창의성을 고양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구조적인 이유가 있었다. 삼성전자에서는 기술자나 과학자로 성공하기보다 부하 직원이 많은 조직의 부서장이 되는 것을 선호하는 문화가 역력했다.
그래서인지, 고작 몇 명밖에 안 되는 부하 직원을 데리고 일하는 과장급들도 관리인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승진에 필요한 고과를 상사가 주관적으로 정하도록 돼 있는 점도 문제다. 직원들이 자신의 창조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직속 상사에게 충성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물론, 이런 구조는 삼성에만 있는 게 아니다. 거의 모든 한국 기업이 이런 식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꼭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글로벌 기업이라 해도, 본사를 둔 나라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 기업에 비해 유럽 기업들이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네덜란드 기업인 필립스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이 회사에는 유럽 문화가 깊이 녹아 있었다. 이렇게 보면, 삼성·LG·현대 등이 한국적 특징을 짙게 띠고 있는 게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들 기업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치려면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문화를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특히 삼성은 LG 등 경쟁 기업에 비해서도 외국인 임원의 비율이 적은데, 이 점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건설적인 대항' vs '상명하복'
그와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나서, 내심 기대했던 게 삼성의 핵심 부서에서 일했던 고위 임원의 속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삼성 비리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대답은 간결했다. "잘 모른다"거나 "그럴 리 없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해서도 "존경한다"고 했다.
공채 출신으로 평사원에서 출발한 경우가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가여서 그룹 내부의 은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역시 외부 영입 전문가였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은 외부에서 영입한 인물들이 기술이나 마케팅 등 특정 분야에 전념하도록 할 뿐, 핵심 경영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었다. '충성심'이 조직 운영의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통하는 문화 탓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외국 기업에서 오래 일했던 그에게 '충성심'을 강조하는 기업 문화가 어떻게 비쳤을까.
"인텔에서 일할 때, 자주 들었던 말이 '건설적인 대항(constructive confrontation)'이다. 회의 때마다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고 비판하는 문화를 뜻하는 말이다. 인텔에서는 '회의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면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서로 엇갈리는 의견이 격렬하게 충돌하다 결국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상급자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아랫사람이 '동의하지 않지만 따르겠다(I disagree but commit)'라고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다.
반면, 삼성에서는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가 견고하다. 그래서 회의가 열려도 윗사람만 이야기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급자가 자기 의견을 내는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다. 물론, 하급자들의 윗사람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은 아닐 게다. 회의가 끝난 뒤, 실무자들끼리 모여 불평하는 모습을 간혹 봤다. 게다가 구조본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구조본의 지시에 절대 복종해야 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런 문화가 강점으로 작용했다. 외국의 선진기업을 모방하는 단계에서는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효율적이다. 하지만 선발주자가 된 지금부터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윗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은 향후 삼성의 성장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선발주자 된 삼성, '위험 감수' 문화 익혀야"
물론, 내가 인텔에서 일하다 삼성으로 옮겼기 때문에 삼성의 이런 특징이 더 도드라져 보였을 게다.
인텔은 '위험 감수'를 회사가 추구하는 공식적인 가치로 내세운 회사다. 반도체 D램 사업을 접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 뛰어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반면, 삼성에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문화가 있다. 삼성이 후발 주자였던 시절에는 이런 문화가 힘을 발휘했다. 선발주자는 위험 감수가 중요한 성공요인이지만, 선발주자를 벤치마킹해야 하는 후발주자는 위험 회피를 주요 전략으로 삼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삼성 문화는 위험 회피에 걸맞게 진화해 왔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전자 업계에서 후발 주자의 입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특허 보호가 강화되고 있고, 상품의 수명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선발주자들끼리 뭉쳐 후발주자를 견제하는 구조 역시 견고해졌다. 후발주자 시절의 관성을 버리고, 선발주자에 어울리는 문화를 체득하는 게 삼성전자의 과제가 됐다."
"'글로벌 기업' 자처하는데…한국인만 적응할 수 있는 대기업 문화"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누리는 위상에 걸맞은 조직 문화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지적은 이미 낯설지 않다. '글로벌 기업'이 됐으면,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임직원들이 무리 없이 조직에 동화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군대식 조직문화가 낯선 이들은 국내 대기업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뜻. 이래서는 해외 인재를 폭넓게 등용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신 박사는 삼성이 야심차게 구성한 미래전략그룹을 예로 들었다. 해외 유명 대학에서 MBA를 마친 이들을 파격적인 대우를 하며 선발해 구성한 그룹이다. 삼성은 이들에게 조직 내부 컨설팅 업무를 맡겼는데, 기대에 비해서는 성과가 크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삼성 등 국내 대기업이 '선발주자다운 조직문화'를 익히지 못해서 생긴 문제 가운데 하나로 '신규 사업 발굴에서 애를 먹는 것'을 꼽는 이들이 많다. 새로운 투자처, 이른바 신수종사업을 찾아내기에 적합하지 않는 조직문화라는 지적이다. 신 박사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선발주자를 따라잡는데 골몰하던 시절에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성공한 제품을 더 싸게 만드는데 힘을 집중하면 됐기 때문. 하지만, 전인미답의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다. 기존 사업은 수명이 다해가고, 새로운 사업은 찾지 못한 상태에서 길을 찾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학문 간 벽 허물어야 길이 열린다"
▲ 신용인 전 삼성전자 전무. ⓒ프레시안 |
삼성종합기술원 바이오 실험실(Bio lab)에서 바이오칩(세포 속의 단백질이 가지는 전기적 성질을 응용한 소자)에 관한 연구를 오래 진행해 왔는데, 경제적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또, 나노센서 등도 유망한 사업 기회를 준다고 본다.
이런 사업을 하는데 장애물이 있다면, 학문 간 벽이 견고한 문화를 들고 싶다. 전자공학 연구자와 생명과학 연구자가 소통하기 힘든 문화, 공학 전공자와 경영학 전공자가 어울리기 힘든 문화가 걸림돌이라는 뜻이다. 대학과 기업에서 다양한 지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어울리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통섭'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대학들이 학문간 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라고 본다.
또 다른 키워드를 꼽으라면 '넓은 시야'를 들고 싶다. 로슈 등 해외 유명 제약회사들은 '신규 아이디어 탐색 부서'를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매순간 쏟아져 나오는 논문과 기술 자료를 살피고, 다양한 창업 사례를 검토하는 부서다. 제약회사들과 달리, IT 회사들은 이런 부서를 따로 두지 않거나 두더라도 힘을 실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IT, BT, NT가 융합하면서 생겨나는 다양한 사업 기회를 발굴하려면 신규 아이디어 탐색 작업 자체에도 인력과 돈을 충분히 투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기술과 경영을 두루 아우르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
"전문가로 나이드는 기업 문화가 부럽다"
이야기하는 내내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 '불연속 이노베이션'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역시 정답은 없지만, 요령은 있다. 천재가 아니어도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는 요령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네 가지 요령을 제시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장벽을 허물고 이질적인 분야를 뒤섞기', '뜬 구름 잡는 꿈꾸기', '응용 못하고 있는 이론 다시 살펴보기', '전통적인 금기에 도전하기' 등이다. 그런데 이런 네 가지는 관료적인 문화에서는 모두 시도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관리'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문화를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인텔에서는 '비서 한 명만 두고 일하는 기술 임원'을 부러워하는 문화가 있었다. 굳이 관리자가 되지 않더라도,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라는 이야기다. 이런 문화가 있으면, 관리자가 지나친 권력을 누리는 일이 줄어든다. 그래야 전문적인 식견과 통찰력 있는 의견이 존중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미국 기업들은 '이중 출세 방식(dual ladder career)'을 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관리자로 성공하는 경로와 전문가로 성공하는 경로를 동등하게 대접하는 방식이다. 한국 기업들도 이런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엔지니어들이 적절한 성장 경로를 찾지 못해서 고민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한창 엔지니어 업무에 자신이 붙을 나이에 관리자 역할을 요구받는 문화 때문이다. 관리자 업무가 적성에 맞고 본인도 원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억지로 관리자 업무를 맡아야 한다. 한국 기업에서는 많은 부하직원을 거느리는 관리자가 돼야만 성공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적절한 시기에 관리자로 전환하지 않으면 이른바 사오정(45세 정년)에 걸려서 도태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문화는 바꾸는 게 옳다고 본다. 외국 기업에서처럼 백발이 성성한 엔지니어가 실무를 담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야 직원들도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을 게다."
일관성 없는 벤처 정책…"AT&T가 직원 잘랐을 때는 벤처가 늘었는데…"
나이 먹은 엔지니어도 충분한 실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 그의 표정이 빛났다. 그리고 잠시, 무슨 질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궁리했다. 그래서 꺼낸 말.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가 폐지됐는데…."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게다. 하지만, 이왕 없어졌으니 다른 관련 부처가 충분히 제 구실을 해줬으면 싶다. 기업에서 일한 입장에서 정부의 정보통신정책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굳이 이야기해야 한다면, '일관성'을 건의하고 싶다. 예컨대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대학과 연구소에 있는 이들이 벤처기업을 세우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쏟아졌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로 바뀌자마자 정책기조가 바뀌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연구원들이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라는 정책이다.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나는 정부가 연구원들의 벤처 창업을 지나치게 독려하는 것도, 반대로 너무 무관심한 것도 모두 잘못이라고 본다. 경영 훈련이 돼 있지 않은 연구원들이 창업해서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특히 한국 환경에서는 더 그렇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또, 과학기술 연구원들이 경영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장치도 필수적이다. 이런 장치 없이 연구원들더러 창업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미국 방식이 늘 바람직하지는 않다. 하지만, 벤처 생태계가 활성화돼 있다는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과거 많은 벤처기업가들이 실패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벤처기업들이 계속 생겨나고 자랄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최근 나는 <삼성과 인텔>이라는 책을 냈는데, 이 책을 쓰는 동안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여러 번 만났다. 당시 크리스텐슨 교수가 내게 했던 말을 잊기 힘들다. 'AT&T가 구조조정 했을 때는 벤처가 늘어났는데, 삼성이 직원을 줄였을 때는 식당이 늘어났다.' 대기업과 벤처생태계가 모두 활성화되도록 하는 신수종 사업. 그걸 찾는 게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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