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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3일 천하', 민주당이 갈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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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손학규 3일 천하', 민주당이 갈 길은?"

[우석훈 칼럼] "'FTA 밀실협약'…민주당, '지는 게임' 시작"

지난 대선에서 유시민이 한국의 50년은 조선왕조 500년과 같다는 말을 했다. 맥락을 떠나서, 유시민이 했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고, 정말 센스 있는 말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BBK 정국, 촛불 집회 직전 대통령의 방미와 부시 대통령의 개인 농장 방문 그리고 지난 재보궐 선거, 정말 이게 같은 한국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변화도 자주 생겼고, 변화의 폭도 크다.

이제 누구도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시점, 바로 그 순간이 있었다. 분당에 한나라당이 아닌 국회의원이 생길 리가 없다는 모두의 판단을 뒤로 하고, 손학규 대표는 그 사지에서 살아왔다. 이제 다음 총선을 넘어 대선까지, 세상은 손학규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그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흐름이 있었다. 그게 손학규의 3일 천하다.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박지원 원내대표이지만, 이상한 사람 한 명 있어 세상 망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표로서, 그리고 이제 원외에서 원내로 들어온 국회의원 손학규로서, 국회 절차를 여는 순간 한나라당이 날치기 할 걸 몰랐을 것도 아니고, 그 뒤에 어떤 흐름이 생길지를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5월 한·EU FTA, 6월 한·미 FTA, 그렇게 순차적으로 통과시켜 준다는 게 손학규-박지원이 원래 생각한 국정 운영 일정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원칙대로 하자면, 이제 손학규는 가장 유력한 야당 대선주자로서, 두 개의 FTA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정부 수반으로서 손익을 차분하게 따져보고 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필요하면 폐기를 하거나, 부분 수정을 위한 재협상을 하겠다고 말해도 된다. 한·EU FTA의 경우는, 지역의 소상인들과 재래상권 등과 관련해서 원 포인트 재협상 정도도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미 FTA의 경우는 더 하다. 계속해서 지적된 ISD(투자자-국가 소송제) 등 독소조항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손학규 대표가 지금 서 있다. 게다가 미국 의회를 통과할 때 쇠고기 전면 개방을 조건으로 달고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이걸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도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서 그대로 통과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다.

자, 문제는 이런 것에 대한 재검토 내용이 야당과의 연대에 공식적 합의 조항으로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연대라면 이런 걸 사인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이 민주당은 집권하자마자, 예전에 그랬듯이 자기 맘대로 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소한 합의문은 필요하다는 것 아니냐? 물론 박지원-손학규는 그 합의문을 보기 좋게 깨주었다.

이제 골치 아프게 된 사람은 단일화를 가장 앞장 서서 끌고 나갔던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대표이다. 그 전날,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농성 중이었다. 최소한 자신의 당선에 1등 공신이었던 사람이 농성 중에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속 마음은 어떤 음흉한 생각을 할지라도, 그래도 시늉 정도는 해서, 아직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당선 환호의 함성이 귓전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그렇게 하는 건 진짜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이제 이정희 의원은 책임을 지고 대표 사퇴를 하라는 무형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정희 대표가 뭘 엄청나게 잘못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을 도저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사퇴라도 해야 민주당의 밀실파들이 다시는 이런 밀실협의를 한나라당과 주고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정책 연대를 넘어 야3당 합당을 외쳤던 사람들도 곤란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상황은 이런데, 진짜로 보궐선거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한 게 한나라당 쪽이다. 4선이지만 정치 지도력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는 황우여 원내대표의 당선은, 민주당으로 치면 천정배보다도 더 왼쪽에 있는 무명이 원내대표가 된 것과 마찬가지 사건이다.

그가 당선되자마자 한 얘기는, FTA에 관한 야당의 불만을 재검토하는 것, 추가 감세는 안 하겠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임기 중에는 날치기를 안하겠다는 것이다.

FTA에 관해서는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과 소장파는 최소한 박지원-손학규보다는 왼쪽으로 와 있다. 손학규는 지난 분당 선거 중, 아파트 증축을 포함한 희한한 리모델링 법안에 찬성하고,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공사 중 재산세 면제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런 손학규의 감세 정책에 비하면, 황우여는 벌써 더 왼쪽으로 와 있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가? 청와대에서 날뛰겠지만, 황우여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르는 '위탁 입법'은 안하겠다고 했다.

당분간은 주요 정책에서 여당과 야당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갈등의 형태로 언론을 장식할 것 같다. 민주당이 선거 승리에 취해서 어영부영하는 동안에, 한나라당 공식 지도부가 민주당보다 왼쪽으로 사정없이 치고 들어왔다.

현재 정책 기조만으로 보면, 민주노동당-한나라당-민주당-선진당-청와대, 이런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황우여의 한나라당은 손학규보다는 왼쪽에 있다. 리모델링 재산세 면제를 공약으로 내건 손학규, 추가감세 중지를 내건 황우여, 정책적으로는 이미 그렇게 되었다.

당연한 게, 수도권에서 전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도 사정없이 더 왼쪽으로 파고드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기업, 투기꾼,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겠지만, 그들도 정치인이라서 자신의 재선까지 포기하면서까지 대기업들을 챙겨줄 처지가 아니다.

20대와 대학생의 표를 받아올 수만 있다면, 반값 등록금을 넘어 대학 무상교육까지 지금 한나라당이 받을 기세이다. 설마?

세계사적으로 원래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우파들이 내건 것이었고, 우리의 경우도 국민보험 등의 복지정책의 기본 틀 역시 군사정권 시대에 생긴 것이다.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보수주의 정치인들도 얼마든지 복지를 받을 수 있다.

박지원-손학규의 밀실행정 그리고 한나라당의 복지 쇄신, 이 두 가지로 인해서 손학규의 민주당은 결국 3일 천하가 된 것이다. 물론 아직 레이스가 끝난 것은 아니다. 총선까지도 1년여 남았고, 대선까지는 진짜 까마득한 시간이 펼쳐져 있다. 그 동안에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어떤 방식의 정개개편이 생겨날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에 호의적인 계기가 그냥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여야 모두 원내대표를 교체하게 되는데, 한나라당은 이미 황우여라는 최고의 카드를 집었다. 그러나 돌아서 민주당 원내대표 후보들을 보자. 강봉균, 김진표, 대표적인 모피아 계열들이고, FTA 열성 찬성론자들이다. 누가 민주당의 원내대표가 되든, 이 게임에서 민주당은 이미 한나라당에게 졌다. 그리고 그 약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한나라당은 '복지 쇄신' 같은 개념을 내걸고 더 사정없이 왼쪽으로 파고들 것이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이미 총선과 대선, 민주당이 힘쓰기는 어렵다. 야권연대라고 하지만, 이미 한 번 배신한 민주당에게 힘을 모으자고, 연대론자들이 지금보다 더 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한 번 배신하고 또 배신하는 건 아주 쉽다. 게다가 손학규의 근본을 믿어 달라고,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자, 이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밀실행정, 밀실야합, 이런 걸 하지 않는 게 근본적인 얘기이지만 이 경우에는 정답이다.

사태를 이렇게까지 끌고 온 박지원 원내대표는 사태의 심각함을 생각해서, 정계은퇴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한 때 한국 정치의 맨 앞에 서 있는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은퇴하는 건 슬픈 일이다. 이순신도 했던 백의종군, 그런 걸 하는 게 어떨까 싶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이 너무 소통을 안 한다고 지적을 하지만, 소통을 안 하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자기들은 하려고 하는데, 방송이나 언론에서 너무 안 다루어준다는 불만이 있다는 건 안다. 어차피 KBS, MBC, 다음 대선 때까지는 완전히 막혀서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건 우리 모두 아는 일 아닌가? 신문? 보수신문의 언로 막기가 하루 이틀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토론회도 하고 공청회도 하고, 필요하면 광장에서 설명회도 하고, 법적으로 허용된 공간 내에서 가능하면 많이 시민들을 만나고, 듣는 자리를 갖는 게 좋다. 언로가 막혔다면 활로를 뚫으면 되는 거 아닌가?

무슨 정책을 할 것인지, 어떻게 토건사회로부터 탈토건을 끌어낼 것인지, 중산층들에게 어떤 복지 체계를 제시할 것인가, 하나하나 토론회를 통해서, 아주 많이 그리고 아주 상세하게 대화를 시작해라. 그리고 결정되고 나서, 적당히 언론에 흘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마시길.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방향이 맞아…."

이런 고독한 지사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으로 우리는 충분히 겪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 자신이 맞을 수도 있지만, 지켜보는 국민들이 수긍하지 못하면, 그건 방법론상으로 이미 틀린 것이다.

이번에 박지원이 한·EU FTA를 자기 혼자의 생각으로 한나라당과 합의해준 게, 대표적으로 고독한 지사형 결정이다. 이건 민주당만이 아닌, 다른 모든 정치인들에게 마찬가지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다른 곳으로 넘어갔고, 소통을 넘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생각하는 단계에 가 있다. 시민들은 이미 그곳으로 갔는데, 지금 박지원-손학규, 이런 사람들만 사람들을 못 따라오는 셈이다.

고독하게 정치하지 마시라. 국민의 절반 이상은, 이명박 통치를 정리하고, 이 아수라장을 마무리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니 국민을 믿고, 토론회장을 아주 많이 만들어서 직접 얘기하고, 듣는 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좋다.

그리고 절대로, 미리 결정하지 마시라. 그런 고독한 결정이 시대정신인 시대는 끝났다.

민주당 3일 천하는 끝났지만, 총선과 대선으로 가는 긴 레이스는 이제 시작이다.

텔레비전과 언론은, 그냥 막혔다고 포기하고,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시민들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시라. 정책을 놓고 의논하고 토론하면서, 우리의 정책이 생기고, 그게 바로 사회적 의제가 되는 길을 가시라.

의제선정 능력이 KBS에는 있고, 조선일보에는 있고, 한나라당에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에게는 없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의를 만들고, 시대정신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아직 열려 있다.

이 관제언론의 포위망을 시민들과 함께 뚫고나갈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2010년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게 된다. 이번의 박지원-손학규 밀실협약 같은 일이 한 번만 더 반복되면, 그 땐 우리 모두의 미래가 너무 어두워진다. 그렇게 못하면, 아니 안하면, 이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통합하라는 새로운 시민의 목소리가 터져나올 것이다.

▲ 한·EU 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재벌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진출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은 무력화됐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분노는 정부여당뿐 아니라 민주당을 향해서도 쏟아진다. 540만 자영업자는 믿고 기댈 정당이 사라졌다. ⓒ프레시안(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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