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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비준…540만 자영업자, 이제 기댈 정당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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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비준…540만 자영업자, 이제 기댈 정당이 없다"

[인터뷰]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공동회장

지난 2년간 중소상인들은 길바닥에서 울고 웃었다. 대형 유통회사들의 공격적인 골목 상권 공략이 시작되면서 생계의 위협을 느낀 그들은 혹한에, 땡볕에 밤을 새워가며 기업형 슈퍼마켓(SSM) 앞을 지키며 입점을 막아왔다. 여론을 의식한 대기업들이 주춤하자 이번엔 외교통상부가 한·EU FTA 비준을 명분으로 규제법 마련에 '딴죽'을 걸고 나섰다.

여야 합의가 몇 번이나 틀어지고 난 뒤 국회에서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안이 통과된 게 지난해 11월이다. SSM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아낼 최소한의 조치였다. 이후에도 법망을 피해가는 편법 개점 사례가 발생하면서 법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듯 SSM 규제는 끝이 아닌 시작에 가까웠다.

ⓒ프레시안(김봉규)

하지만 현재 상황은 정반대다. SSM 규제의 진정한 해법이 국내법 개정이 아닌 한·EU FTA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교통상부 통삽교섭본부는 유럽 주요국의 대형마트 입점 제한 조치를 인정하면서도 한국은 유통시장에 대해 완전 개방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한·EU FTA 비준 이후에는 국제법인 협상문이 국내법보다 앞서 효력을 갖기 때문에 유통법과 상생법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상인들의 2년간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고, 이후에는 규제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더구나 민주당이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2일 유통·상생법 강화를 전제로 FTA 본회의 상정에 합의하면서 배신감은 더 커졌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물론 일부 민주당 의원까지 반발하고 나서면서 앞장섰던 박지원 원내대표도 한 발 물러섰지만 중소상인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그리고 4일 밤, 한·EU 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서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됐다.

"민주당이 힘센 정부여당과 싸우라고 만든 야권 공조를 무너뜨리면서 야합을 했다는 점에서 상인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대로 한·EU FTA가 통과된다면 상인들은 목숨 걸고 저항할 겁니다."

한·EU FTA 비준을 위한 본회의 개최를 놓고 국회가 갈등을 빚던 4일 오후,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공동회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하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3일 본회의 개최에 합의하기까지 한·EU FTA에 가장 민감한 이해당사자들인 중소상인의 의사를 무시해왔다는 게 이유다.

"작년 한 해 동안 싸워서 어렵게 만들어 낸 유통법과 상생법입니다. 그런데 이게 통상법에 따르면 FTA 비준에 따라 무효가 된다고 해요. 이런 식으로 통과돼서는 안 됩니다. 유럽 측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대형마트 입지 선정 시 경제적 수요심사를 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가도록 재개정 하던가, 자국법을 존중한다는 문구 정도는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 가장 화가 나는 건 민주당이 상인들의 문제, 민생문제를 당사자들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당에서 전화가 와서 짧게 사안을 묻고, 의견을 얘기하면 끊고 자기들끼리 논의하는 식으로 이뤄져 왔어요. 그런 깊이 없는 과정을 보면서 정말 민생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공청회 요청도 들어주지 않았고, 어제가 돼서야 정책위의장을 만날 수 있었는데, 버스 지나가고 손 흔드는 꼴 아닙니까."

민주당은 국회 통과 이후 재개정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인 회장은 "믿을 수가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유통법·상생법 개정 과정에서 여러 차례 드러난 여당의 말 바꿈,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저항 과정'을 고려했을 때 "민주당이 또 한 번 한나라당에 속은 것"이라는 게다.

"한나라당은 작년에도 유통법과 상생법을 분리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김종훈 본부장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을 법사위에서 막았죠. 당시 김 본부장은 '조약이 통과되면 이 개정안 자체가 무산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약이 체결돼도 제소당할 우려가 없다고 말을 뒤집었어요. 믿을 수가 없는 거죠.

·EU FTA 조항을 보면 한번 개방하면 다시 원래 규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래칫(역진방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요. 비준이 되도 재개정을 해서 규제안을 넣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지금 비준이 안 된 상태에서도 재협상을 못하는 통상 관료들이 통과되고 나면 어떻게 고치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때문에 양당이 비준의 전제로 강화된 유통법과 상생법을 통과시키기로 한 것도 상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인 회장은 "전통시장 반경 2킬로미터까지 입점을 막는 게 목표였는데 개정안의 1킬로미터 규제안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셈"이라면서도 "하지만 이 개정안도 FTA 비준이 되면 제소 대상이 되고 소용이 없어지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 회장은 마지막으로 국회에 하고 싶은 말을 던졌다.

"농민이 300만, 자영업자가 540만 명입니다. 이들을 희생양 삼아서 재벌 경제만 키우면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FTA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된다면 엄청난 저항을 하게 될 겁니다. 민주당이 제정신 차리지 못하고 자기 정체성을 혼돈하면 상인들도 지지를 거둘 겁니다. 야당 공조를 이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목숨 걸고 막아내야 하지 않겠어요?"

한·EU FTA 비준, 김종훈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19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EU FTA 비준 동의안이 발효되면 유통법·상생법과 불합치되는 부분이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도 "영국의 투자회사를 비롯해 영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서 분쟁을 고려하는 것은 없고 오히려 우리 쪽을 이해하고 있어 상생을 도모해보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내 SSM 규제를 FTA 대상국의 '호의'에 기대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드러나는 '증거'를 보면 상황이 다르다. 외교통상부가 국회에 제출한 EU측의 서한을 보면 한결 같이 한국의 SSM 규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중 일부 더 제한적 조치 도입을 제시하고 있는 개정안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세계무역기구 서비스무역에 관한 협정을 통해 합의된 자유무역시장 규범을 위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2009년 11월 17일, 마틴 우덴 주한영국대사)

"소매업과 같이 인지도가 높은 분야에서의 무역 제한조치는 한-EU FTA의 비준을 열렬히 기대하고 있는 영국기업들에게 그릇된 시그널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 조치들이 한국의 GATS 양허에도 위배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2009년 12월 6일,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한국은 WTO에서 유통서비스 자유화를 강하게 지지해왔기에, 한국이 이처럼 자명한 제한 조치를 도입하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행정지침을 통해 위탁형 프랜차이즈를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WTO/GATS 규범 위반의 위험이 있습니다."(2010년 8월 31일, 브라이언 맥도널드 주한EU대사)


이러한 서한은 외교통상부가 SSM 규제법 통과를 반대하던 당시 근거로 든 바 있다. 하지만 지금 단지 김 본부장의 '말'을 믿고 유럽의 SSM 규제법 제소 가능성을 낮게 보는 입장에 오히려 반대하는 '증거'가 됐다. 중소상인 입장에서는 유통법·상생법이 한-EU FTA에 대한 반대를 잠재우는 '허수아비 법안'으로 쓰였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힘든 이유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는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서 각 회원국이 FTA를 포함한 협정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국내법에 대해 적어도 해마다 서비스무역이사회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중대한'이라는 문구의 해석이 모호해 먼저 국내법을 통보하는 건 오히려 상대방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고려하면 김 본부장이 스스로 SSM 규제법이 현재 협정문 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 한·EU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EU 협정문에 의해 무력화되게 된 유통법과 상생법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처방은 협정문에 대한 국회 비준 전에 재협상을 시작하거나, 최소한 관련 국내법제에 대해 잠정발효가 제한되도록 EU측에 통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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